[기획연재] 북송자 모집에 학교·日 지식인 동원…“北, 지상낙원”으로 소개

재일교포 북송사업의 실체 ⑤
이윤정
2022년 11월 25일 오후 6:02 업데이트: 2022년 11월 25일 오후 11:59

재일교포 북송사업’은 1959년부터 1984년까지 9만3340명의 재일교포를 북한으로 송환한 사건이다. 1959년 북한과 일본이 체결한 ‘재일교포 북송에 관한 협정’에 따라 이른바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민족의 대이동’이라고 불리는 북송사업이 시작된 이후 25년 동안 총 187회에 걸쳐 북송선이 일본 니가타항에서 북한의 청진항으로 향했다. 당시 북송선을 타고 북으로 이주한 재일 한인 9만3340명 중 재일교포의 98%는 고향이 남한이었고, 일본인 아내 등 일본인 6800여 명도 포함돼 있었다.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이 2022년 발간한 ‘지상낙원으로 간 그들은 어디에? : 기만적 북송사업과 강제실종’은 그 실체를 규명한 보고서다. 에포크타임스코리아는 북한인권시민연합의 도움을 얻어 보고서를 바탕으로 재일교포 북송사업 실체를 분석한 특집 기획을 마련했다.

조선학교, 어린 학생들 세뇌해 부모·가족 북송 유도

조총련은 북송자를 모집하기 위해 조선학교를 적극 활용했다. 조선학교를 이용한 북송자 모집은 두 가지 측면에서 유용했다. ▲비교적 세뇌하기 쉬운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점 ▲학생을 통해 가정과 재일교포사회로 침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조선학교는 북한이 대남·대일 공작을 위해 막대한 돈을 투자한 기관으로, 조총련의 철저한 통제하에 있다. 일본에 있는 모든 조선학교는 학교법인에서 운영하며 이 학교 법인의 책임자인 이사장의 인사권은 조총련에 있다. 학교에 배치되는 교원도 대부분 조선학교 출신이며, 교원의 배치는 조총련중앙의 교육국에서 전담한다.

조선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 역시 조총련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교과서 제작은 조총련의 교과서편찬위원회가 맡고 있으며, 집필진은 조선대학교 교수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조총련에서 교과서를 제작하면 평양으로 가지고 가서 김형직사범대 등에서 내용을 확인하고 조정해 수정·배급하는 형식으로 교과서가 배포된다. 이렇듯 조선학교는 실제로 북한의 지시를 받는 조총련의 학교였다.

이에 북한은 교육기관인 학교를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조선학교에서 북송자 모집을 얼마나 정치적으로 다뤘는지는 ‘불꽃’이라는 잡지에 잘 나타난다. ‘불꽃’ 잡지는 조선중고등학교에서 1959년 7월 10일 발간한 6·25 기념호 잡지다. 이 잡지에서 북송사업 관련해 “이 문집은 귀국 결기 운동과 미제를 우리 남반부에서 축출시키는 6·25사업의 일환으로 설정됐던 계획의 하나였다”고 밝혔다.

북한이 대규모 북송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시기부터 조총련은 조선학교를 통해 조직적으로 재일교포를 북송선으로 유인하기 시작했다. 먼저 조총련은 조선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북송자 모집 활동을 교실 안팎에서 진행했다. 또한 학생이나 부모님을 설득하는 특별 교육 및 활동을 전개했다.

당시 고보(현재 중·고등학교에 해당) 1학년 학생이었던 서양자는 “1959년 6월 7일 가나가와 회관 제5차 청년대회, 6월 10일 방과 후 귀국집단 학습회, 6월 11일 귀국 실현으로 자전거부대 환영, 6월 14일 재일본조선청년동맹 제5차대회 참가, 6월 15일 가나가와 회관에서 학생귀국궐기대회에 참가했다”고 일기에 적었다.

조선학교 출신 증언자 A는 “학교에서 날마다 북송사업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탈북한 북송자 B는 “학급에서 북송선을 타기로 결정된 학생들이 있으면 담임 선생님이 불러서 앞에 세우고 칭찬해 줬다. 다 같이 박수도 쳐주고”라고 증언했다.

북송자 수가 줄어든 이후부터는 더 공격적인 선전 활동을 펼쳤다.

조선학교는 좀 더 조직적인 학생모집을 위해 학생귀국집단을 조직했다. 김일성 생일 기념으로 다수의 학생을 모집해 북한으로 보내기도 했다. 이 같은 조선학교의 북송사업에 대한 지지는 아직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어린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증언자 C는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안 돼. 내가 어떻게 엄마랑 떨어지면서까지 북송선에 올랐는지. 내가 열렬한 조총련 분자도 아니었는데. 아마 9년 동안 조선학교에 다니면서 그런 사상이 주입됐기 때문에 그런 힘이 나온 것 같다”라고 증언했다.

선전 사업은 학교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학교 밖으로까지 확장됐다. 학생들이 가정에서 부모를 설득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세뇌당한 지식을 그대로 부모에게 전달하며 가족들의 북송 결의를 유도했다.

학생들이 부모에게 북송사업에 동참할 것을 전파하는 내용은 ‘불꽃’ 잡지에 심심찮게 등장한다. 리종수 학생의 “나는 절대로 신청서를 내게 하고 귀국하게끔 아버지와 어머니께 계속 이야기해 볼 예정이다” 발언이 한 사례다.

테사 모리스-스즈키(Tessa Morris-Suzuki) 호주국립대(ANU) 일본 역사 전공 명예교수는 조선학교에 대해 “사전 지식이 거의 없는 태반의 재일교포 아이들이나 그 부모들에게 북한의 생활에 관해 아주 자세히, 눈이 번쩍 뜨일 것 같은 환상을 곁들여 보여주면서 장밋빛을 짙게 띤 거짓 정보의 홍수를 부어대며 북송을 권했다”고 평가했다.

초청외교…日 지식인·언론·정치인, 북한 찬양

조총련의 대대적인 선전 활동이 여러 방면에서 이뤄졌지만, 북한의 전위단체인 조총련의 선전에 의심을 표하는 재일교포도 많았다. 이들의 마음을 흔든 결정적 요인은 북한을 지상낙원으로 소개하거나 북송자들의 삶을 미화한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이었다.

재일교포들은 외국인인 일본인이 북한을 편향적으로 소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일본 지식인들의 일방적인 북한 예찬은 철저하게 계산된 북한 ‘초청외교’의 결과였다. 초청외교는 북한이 일본 지식인을 초청해 극진한 대접을 하고 보여주고 싶은 면만 보여줌으로써 북한의 객관적인 상황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초청외교의 일환으로, 일본 공산당 정치인 데라오 고로는 1958년 북한 수립 10주년 기념식의 사절단으로 방북했다. 이후 그는 북한 방문기인 ‘38도선의 북쪽(38度線の北)’이라는 책을 저술해 북한을 지상낙원으로 소개했다.

증언자 D는 이 책이 재일교포의 북송행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그는 “데라오 고로가 쓴 ‘38도선의 북쪽’을 안 읽고 간 귀국자가 없다. 나도 읽고 갔으니까. 그 책을 보고 북한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다음은 데라오 고로에 대한 북송 재일교포의 억울함이 잘 나타나는 일화다.

데라오 고로는 1960년 8월, 조선해방 15주년 경축일조일협회 사절단의 비서장으로 방북했다. 이때 그가 머물고 있던 평양 호텔로 북송 청년 수십 명이 들이닥쳐 “데라오, 나오라”며 소동이 벌어졌다. 8월 27일 청진으로 향하는 급행열차 안에서도 ‘38도선의 북쪽’을 읽고 북으로 왔다는 3명의 남자에게 둘러싸여 “당신이 데라오인가, 드디어 만났구나. 이 북조선이 지상낙원이라고. 당신은 이곳에 여러 번 드나들었으니 이곳 현실을 잘 알 것이다.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그런 거짓말을 늘어놓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소동이 발생해 청년 수십 명이 사회안전원에게 체포됐다고 한다.

아사히, 마이니치, 요미우리, 교토통신 등으로 구성된 기자단이 방북 후 발행한 ‘북한기록(北朝鮮の記錄)’ 같은 출판물은 6·25전쟁 후 북한의 급속한 경제발전과 인도주의적 모습을 부각하며 재일교포들의 북송을 독려했다. 아사히 신문 등 일본의 주요 신문들도 북한 주민들의 생활 개선과 급속한 경제 회복에 대해 보도했다.

북송의 긍정적인 부분만 묘사한 예술 작품과 영화들 역시 재일교포들의 북송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와중에 1958년 11월에는 일본 공산당, 사회당을 비롯해 80여 명의 정당·단체 대표들은 ‘재일 조선인귀국협력회(이하 귀국협력회)’를 구성했다. 이 귀국협력회에는 하토야마 이치로 전 총리, 고이즈미 준야 등 일본의 영향력 있는 정치인들이 대거 참여했으며, 이는 북송에 대한 신뢰를 높여주었다.

조총련은 ‘귀환보고’라는 강연사업도 조직했다. 방북한 일본 국회의원들이 조선 학교를 순회하며 북한을 찬양했다.

1960년 3월 이와모토 노부유키(자민당 중의원 의원, 귀국협력회 대표위원), 호아시 게이(사회 당 중의원 의원, 귀국협력회 간사장)를 중심으로 한 일본국민사절단이 북송자들의 생활을 시찰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했다. 일본으로 돌아온 후 ‘마치 천국에 간 듯한 귀국자들’ ‘조선은 정말 훌륭하다’ ‘ 귀국자 수용 완벽’ ‘귀국자에게 상상 이상의 대우’ ‘영국보다 앞선 보건 제도’ 등의 문구로 북한을 찬양했다.

일본의 사회당, 공산당과 일조협회, 북한(조총련)의 밀접한 관계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냉전 시기의 시대 상황상, 일본 사회당과 공산당은 북한을 지지했다. 일조협회는 시민 단체를 표방했지만, 재일교포가 일본 공산당 소속으로 활동했던 시대와 결별하고 조총련을 결성함에 따라 이에 대한 일본인 측의 연대 운동 단체라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친북 성향을 강하게 내세웠다.

일본 사회당, 공산당, 일조협회 모두 친북 성향이 짙은 정당·단체였으며, 북한이 초청한 많은 일본 지식인들은 사회당 의원이자 일조협회 회원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재일교포들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일본 지식인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었다.

증언자 E는 “일본 사람들 때문에 북한으로 간 사람이 많다. 조총련이 아니고 일본인들이 하는 말이니까 의심을 안 했다”라고 증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