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국제적십자, 북송사업 참여…“北·조총련 거짓 선전 믿게 만들었다”

재일교포 북송사업의 실체 ⑧
이윤정
2022년 12월 17일 오후 9:31 업데이트: 2022년 12월 17일 오후 9:31

재일교포 북송사업’은 1959년부터 1984년까지 9만3340명의 재일교포를 북한으로 송환한 사건이다. 1959년 북한과 일본이 체결한 ‘재일교포 북송에 관한 협정’에 따라 이른바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민족의 대이동’이라고 불리는 북송사업이 시작된 이후 25년 동안 총 187회에 걸쳐 북송선이 일본 니가타항에서 북한의 청진항으로 향했다. 당시 북송선을 타고 북으로 이주한 재일 한인 9만3340명 중 재일교포의 98%는 고향이 남한이었고, 일본인 아내 등 일본인 6800여 명도 포함돼 있었다.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이 2022년 발간한 ‘지상낙원으로 간 그들은 어디에? : 기만적 북송사업과 강제실종’은 그 실체를 규명한 보고서다. 에포크타임스코리아는 북한인권시민연합의 도움을 얻어 보고서를 바탕으로 재일교포 북송사업 실체를 분석한 특집 기획을 마련했다.

북한을 지상낙원으로 선전해 10만 명에 이르는 재일교포들을 북한으로 유인한 북송사업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북한 정부와 조총련에 있다. 하지만 북한과 조총련의 선전이 대중의 신뢰를 얻고 대규모 북송이 가능했던 건 북송 사업에 중개자로 참여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영향이 컸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1959년 8월 11일 “북송을 실현하기 위해 북일 적십자사 간에 체결한 ‘캘커타 협정’ 초안 작성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아울러 국제적십자위원회는 북송 신청자의 북송 결정에 대한 자발적 의지를 점검하는 최종 의사 확인 심사 절차에 대한 책임도 맡았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은 보고서에서 “국제적십자위원회는 북송 사업 관련 실태를 관리·감독·확인해야 하는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고, 북송사업의 정치적 성격을 인지하고도 이를 방관했다”며 “심지어 북송자들이 이후 북한에서 차별·착취 등으로 힘든 상황에 놓인 것을 알고도 북송사업을 중단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ICRC, 北 실상·日 약속 이행 여부 확인했어야

보고서는 “국제적십자위원회는 북송사업의 중개자로서 태만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우선 “북한이 선전하는 북한의 실상이 현실과 부합하는지 확인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아울러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일본 정부를 전적으로 신뢰하기보다 독자적으로 더 깊이 관련 실태를 조사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국제적십자위원회는 북송사업에 관여하는 조건으로 일본 당국에 7개의 중요한 조건에 대한 보증을 요청했다. 조건은 △일본 당국은 일본에 머물기로 한 조선인의 지위가 어떻게 되는지 설명하고 재일조선인에게 알릴 용의가 있는가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이와 관련한 조치에 대해 사전에 통보받을 수 있는가 등이었다. 일본 적십자회를 통해 해당 조건을 전해 들은 일본 정부는 모든 조건에 동의했다.

1952년 일본 국적을 박탈당한 재일교포들은 일본에 영구 거주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이를 알리는 것은 불안정한 위치에 놓인 재일교포들에게 “북송이 유일한 선택지가 아님”을 알리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일본 당국으로부터 일본의 노동기준법·고용안정법·실업보험 등에 의거해 재일교포에게도 모든 권리를 보장해 줄 것이라는 확언도 받았다.

그러나 이 모든 법과 제도는 재일교포가 누릴 수 없도록 구성돼 있었다. 이에 국제적십자위원회는 7개의 조건을 걸어 재일교포들에게 북송에 대한 진정한 선택권을 부여함과 동시에 일본에서의 거주권과 복지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일본은 관련 조건들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았고, 국제적십자위원회의 조건은 공허한 공약이 되고 말았다.

북송자 최종 의사결정을 진행했던 특별실 구조도(국제적십자사 소장자료) | 북한인권시민연합 제공

ICRC, 북송사업 정치적 동기 알고도 방관

보고서는 이어 “휴머니즘 정신으로 인도주의 원칙을 고수해야 하는 국제적십자위원회는 북송사업의 정치적인 성격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관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제적십자위원회는 1959년 9월, 북송사업을 포기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결국 현 상황에서는 위원회가 완전히 철수할 수 없다는 쪽으로 의견 일치를 봤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조총련이 북송사업에 얼마나 크게 관여하고 있는지에 대해 고지받았다. 당시 일본 적십자사 외교부장으로 임명된 일본 외교관 이노우에 마스타로(井上益太郞)의 소개로 진행된 일본 경찰청 고위 간부들과의 회의를 통해서다. 이를 통해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재일교포가 부당한 처우를 받을 수 있음을 인지했지만,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

보고서는 “북송사업에 숨겨진 정치적 동기를 인지한 국제 적십자 위원회는 적어도 북송 절차만은 중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철저한 관리·감독 및 확인 역할을 수행했어야 했다”면서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북송 신청자의 실제 북송 진행 과정 전반 확인 ▲조총련이 아닌 정당한 권한을 가진 독립 주체에 의해 북송 신청 창구가 운영되고 있는지 감독 ▲적십자 창구에서 ‘귀국지도서’에 관한 내용이 북송 신청자에게 잘 전달되고 있는지 관리・감독 ▲북송 신청자가 귀국지도서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자유의지로 북한 이주를 선택했는지 확인

북송 재일교포들, 북송 과정 안내 못 받아

북송 안내서인 ‘귀국지도서’에는 신청에 대한 원칙, 거주지 선택의 자유 및 선택에 따르는 책임, 북송 준비에 필요한 사항 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됐다. 귀국지도서 배포는 국제적십자위원회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던 부분 중 하나였다.

1959년 8월 27일, 마르셀 주노 국제적십자위원회 부위원장은 일본 적십자사에 보낸 편지에서 “귀국지도서는 창구에서 승선까지 그림으로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어 북송자들에게도 유익하다. (귀국지도서를 통해) 당사자들은 자신을 기다리는 것이 어떤 것이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언제든지 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며 귀국지도서를 가능한 한 널리 배포하고 북송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북한인권시민연합의 연구에 참여했던 탈북 북송자 중 각 지방 창구에서부터 북송선에 오르기까지 이 귀국지도서에 관해 설명을 듣거나 본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북송 신청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전혀 안내받지 못했다. 이는 일본적십자 창구가 일본 지자체 관청 안에 협소하게 존재했고, 창구 관리자 대부분이 적십자의 기본 원칙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지자체 관리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 역시 국제적십자위원회에 보고됐지만,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형식에 그친 자발적 의사 확인 절차

북송 신청은 본인이 직접 서류를 접수하는 게 원칙이었지만, 북한과 조총련에 의해 절차가 무시되고 있었음에도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

북송자의 승선 업무와 관련해 국제적십자위원회는 니가타 일본적십자센터에서 재일교포 개인이 진정 본인의 의지대로 북한에 가는 것인지, 아니면 본인 의사 없이 누군가에 의해 강제 송환되고 있는지를 면밀히 감시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재일교포들이 북송선을 타기 위해 니가타 일본적십자센터에 머무는 3박 4일 동안 이뤄진 감시 절차는 가구당 의사를 간단히 확인하는 것에 그쳤고, 이마저도 의사 확인 장소, 내용 등 많은 부분에서 부족했다.

니가타 적십자센터의 도면(국제적십자사 소장자료) | 북한인권시민연합 제공

문을 일부러 떼어내 철저한 보안이 보장되지 않는 ‘특별실’에는 국제적십자위원회 대표 한 명과 통역자, 북송 신청자들이 한 가구 단위로 입실했다. 보고서는 “방 안에서의 대화를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상황에서 북송 신청자들이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에는 제약이 있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이 인터뷰한 북송 재일교포들에 따르면 국제적십자위원회 대표는 “본인의 의지대로 북한으로 가는 것입니까?”라는 형식적인 질문만 했고 “예”라고 답하면 의사 확인 절차는 바로 종료됐다. 이들은 ‘귀국지도서’ 등과 같은 게시문을 잘 이해했는지에 대한 질문은 전혀 받은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윤 씨라는 재일교포가 특별실에서 전혀 말을 하고 있지 않다가 북송선을 타기 전 국제적십자위원회 대표에게 쪽지를 전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는 쪽지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내 권리는 무시당했다. …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내 마음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표현할 다른 방법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 꼭 이해해 줄 것이다.”

북송 신청자들은 국제적십자위원회 대표단을 막연히 러시아인 아니면 미국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만큼 ICRC 대표단이 니가타 일본적십자센터에서 존재감이 없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니가타 일본적십자센터에 있는 국제적십자위원회 대표는 22명이었다. 이 중 5명이 일본에서 채용됐지만, 모두 한국어와 일본어를 구사할 줄 몰랐으며, 동북아시아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다.

이들은 항상 일본 적십자사에서 고용한 통역자와 함께 다녔으며, 단 몇 분 만에 끝나는 최종 의사 확인 시에만 재일교포와 만났다. 니가타센터에서 북송 신청자들의 고충에 귀를 기울이고, 의견 대립이 있는 사례가 있으면 재결정을 내리는 등의 활동은 전혀 없었다. 의사 변경자들이 조총련에 의해 북한으로 가는 것이 강제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았다.

보고서는 더욱 심각한 문제로 국제적십자위원회가 첫 북송선이 출발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북송자들이 북한 사회의 곤궁한 환경과 차별 및 착취로 인해 힘든 상황에 놓인 것을 인지하고도 북한을 ‘지상낙원’으로 홍보하는 조총련의 선전 활동에 제재를 가하거나, 북송사업을 중단하거나, 북송자들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등의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는 점을 꼽았다.

1960년 효고현의 공안조사국 직원은 조총련을 감시해 얻은 정보를 국제적십자위원회 맥스 젤러 대표에게 전했다. 여기에는 “시간이 갈수록 북한에서 북송자들의 삶이 힘겨워지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듬해 이와 관련한 논의도 수 차례 진행했지만,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1967년까지 북송사업에 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