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日 정부, 재일교포를 사회문제로 인식…北 인권 유린 용인·방조

재일교포 북송사업의 실체 ⑦
이윤정
2022년 12월 10일 오후 2:09 업데이트: 2022년 12월 10일 오후 3:05

‘재일교포 북송사업’은 1959년부터 1984년까지 9만3340명의 재일교포를 북한으로 송환한 사건이다. 1959년 북한과 일본이 체결한 ‘재일교포 북송에 관한 협정’에 따라 이른바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민족의 대이동’이라고 불리는 북송사업이 시작된 이후 25년 동안 총 187회에 걸쳐 북송선이 일본 니가타항에서 북한의 청진항으로 향했다. 당시 북송선을 타고 북으로 이주한 재일 한인 9만3340명 중 재일교포의 98%는 고향이 남한이었고, 일본인 아내 등 일본인 6800여 명도 포함돼 있었다.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이 2022년 발간한 ‘지상낙원으로 간 그들은 어디에? : 기만적 북송사업과 강제실종’은 그 실체를 규명한 보고서다. 에포크타임스코리아는 북한인권시민연합의 도움을 얻어 보고서를 바탕으로 재일교포 북송사업 실체를 분석한 특집 기획을 마련했다.

대규모 북송, 누가 책임져야 하나

북한을 지상낙원으로 선전해 10만 명에 이르는 재일교포들을 북한으로 유인한 북송사업에 대한 일차적이고 중대한 책임은 북한 정부와 조총련에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 정부, 일본 적십자사, 국제 적십자 위원회 같은 조력자·공모자가 없었다면 북송사업이 이 정도로 성공적이거나 광범위하게 추진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북송사업의 책임 주체들은 “당시 북한의 실태를 파악할 수 있었던 방법이 없었으며, 정보가 부족했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아울러 “재일교포들이 전쟁이 끝난 후 ‘자발적으로’ 북한행을 선택했다”면서 “북송사업은 순수한 인도주의적 목적에서 행해진 귀국운동”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인권시민연합 보고서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북송사업의 실상을 흐리고 책임 주체를 모호하게 만들며, 피해자인 북송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며 “만약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피해자들을 위한 정의가 구현되기는커녕 이들의 피해 사실이 잊혀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북송사업으로 일본에서 북한으로 ‘귀국한’ 사람들에게 자유 의지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의 귀국 결정은 ‘지상낙원 본국 송환 운동’을 기획·추진한 책임자들에 의해 합리적인 선택인 것처럼 조작됐다.

북한을 ‘지상 낙원’과 같은 희망의 땅으로 보이게 하는 선전 사진 등을 게재한 천리마 잡지 | 북한인권시민연합 제공

일본 정부, 북송 사업 조장·방조 책임

일본 정부는 재일교포들에게 불안한 사회적 환경을 조성해 북송을 조장한 책임이 있다.

1952년 일본 정부는 재일교포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고 일본 국적을 박탈했다. 재일교포의 불안정한 법적 지위는 사회적 차별, 가난, 교육 및 경제적 기회의 제한 등으로 이어졌다.

일방적 국적 박탈 결정이 일본의 헌법과 국제인권법을 위반한다는 국내외 비판에도 불구하고 일본 대법원은 이를 승인했고, 재일교포들은 기본적 정치적, 법적 권리마저 박탈당했다.

지방선거 투표권조차 없었던 재일교포들은 소수집단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지역 사회에 반영할 수 없었다. 의무적으로 지문을 등록해야 했고, 외출 시에는 외국인 등록 증명서를 소지해야만 했다. 재일교포의 공공 부문 고용은 법으로 금지됐으며 공공주택 및 연금제도의 혜택도 받지 못했다.

이처럼 불안정한 사회적 지위로 인해 재일교포들은 일본 사회 내 사회적, 인종적 차별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 양질의 교육이나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재일교포들은 생활고를 겪었으며 불법적인 사업에 연루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재일교포에게 안정적 일자리와 교육, 공동체적 유대감을 제공했던 조총련은 자연스럽게 재일교포 생활의 구심점이 됐다.

재일교포를 골칫거리로 인식…日 국회 “치안 위협, 재정 부담”

일본 정부에 재일교포 문제 해결은 시급한 현안이었다. 당시 조총련이 일본 전역에 공산주의를 확산시키는 것처럼 보인 데다 무직자인 재일교포의 생활보조비 지급 등으로 인한 재정적 부담이 가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 외무성이 작성한 제안서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무도 재일교포의 ‘귀환’을 논의하지 않았던 1955년 12월, 일본 외무성 아시아국 5분과는 이와 관련한 계획을 다룬 최초의 제안서인 ‘북한으로의 귀환희망자 송환문제 처리방침(北鮮への帰還希望者の送還問題処理方針)’ 초안을 작성하기도 했다.

이 문서에는 ‘송환절차요강(안)’이 포함됐고, 조직적 ‘귀환’사업의 실행 계획이 논의돼 있다. 예를 들어 북송사업 대상자와 북송 절차, 캠페인 계획 등과 같은 사항들이 담겨 있다. 이는 1959년 조총련이 북송사업 실행 이전부터 일본 정부가 조총련의 협력을 구해 빈곤한 재일교포를 대상으로 대규모 송환사업을 기획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후지야마 아이치로(藤山愛一郎) 외무상은 “일본 정부가 국제 규범인 국가 선택의 자유를 존중해 가능한 한 신속하게 재일교포의 송환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진정한 의도는 따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테사 모리스-스즈키(Tessa Morris-Suzuki) 호주국립대(ANU) 일본 역사 전공 명예교수의 연구에 인용된 자료에 따르면 후지야마 외무상은 1959년 초반 주일 미국 대사에게 재일교포 문제에 대한 우려를 밝혔다.

후지야마 외무상은 “높은 범죄율, 정치적 선동과 노동시장에 미치는 압력을 고려해 ‘재일교포들을 일본에서 퇴거시켜야 한다’는 전망이 큰 호평을 받고 있다”며 “일본의 좌익과 우익세력 모두 재일교포의 북송을 지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북송을 추진해야 할 또 다른 이유로 “일본 사회보장제도 전반을 통틀어 재일교포 극빈자들에 지출되는 총액이 약 25억 엔에 육박한다”는 점을 제시하기도 했다.

후지야마 전 외무상은 1957년 한국의 유엔 가입 문제와 관련, 한일 간 국교 정상화 미수립 등을 이유로 일본이 공동제안국으로 참석해 달라는 미국의 요청을 거부하려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은 2008년 12월 22일, 상기 내용이 이날 공개된 외무성 외교문서에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마쓰다이라 당시 유엔대사가 재검토를 요청해 일본은 공동제안국이 됐지만, 당시 한국의 유엔 가입은 이뤄지지 않고 1991년 9월 남북 동시가맹 때까지 보류됐다.

일본 당국은 표면적으로는 순수한 인도주의적 조치로서 재일교포의 본국 송환을 지원했지만, 사실 자국 내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깊은 관심이 있었다. 일본 국회에서도 재일교포들이 불법을 자행하고 치안을 위협한다는 우려를 표출하기도 했다.

1954년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는 “재일교포들이 사회보장법을 적용받기 위해 지방 촌장들을 위협했고, 그 결과 과도한 수의 재일교포가 복지 수혜자가 돼 재정적 부담이 크게 늘어났다”며 “그런데도 제3국인(재일교포)을 본국으로 송환하지 않고 있다”며 일본 정부를 비난했다.

모리스-스즈키 교수는 2010년 5월 28일 한국 서울대학교에서 개최된 서울대 일본연구소 기획 특강 ‘봉인된 디아스포라: 재일조선인의 ‘북한행 엑소더스’를 다시 생각한다(Exodus to North Korea Revisited: The Repatriation of Ethnic koreans from Japan)’에서 발표한 논문을 통해 “수십만 재일조선인을 북한으로 귀국시킬 것을 먼저 제안한 주체는 분명히 일본이었다”고 주장했다.

테사 모리스 스즈키 호주 국립대 교수(왼쪽) | 연합뉴스

日 정부, 일본·국제 적십자에 송환 업무 위탁해 책임 회피

일본 정부는 재일교포의 송환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대신 일본 적십자사가 송환을 주도하게 했다. 또한 북송신청자의 최종 의지를 확인하는 일을 국제 적십자 위원회에 맡김으로써 추후 제기될 책임을 회피했다.

모리스-스즈키 교수는 국제 적십자 위원회의 기밀 해제 문서를 인용해 “당시 일본 적십자사 외교부장으로 임명된 일본 외교관 이노우에 마스타로(井上益太郞)는 일본 적십자사를 정부의 대리기관으로 만들었다”며 “조총련이 본국 송환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3년 전부터 이미 재일교포들의 송환에 대한 지지를 얻고자 국제 적십자 위원회를 상대로 로비활동을 펼쳤다”고 밝혔다.

이노우에는 1956년 국제 적십자 위원회와의 회의에서 “필요하다면 북한으로 가고 싶어 하는 개인적 요구를 자극해서라도 재일교포들을 송환하기로 결정했다”고 언급했다. 이는 곧 일본 정부가 재일교포의 송환에 적극적 의지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만 일본 정부가 개인적 요구를 자극하기 위해 취한 방법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1955~1957년 중반까지 재일교포에 대한 정부 차원의 복지가 크게 줄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기간에 재일교포 생계 보호 수당 수혜자는 11만7073명에서 약 8만1000명으로 감소했다. 이 과정에서 재일교포들은 사회적으로 완전히 소외당했으며, 북한으로 이주하는 것은 더욱 매력적인 선택지가 됐다.

일본 정부는 북송자들이 마주할 북한의 현실을 확인하는 데 큰 관심이 없었다. 일본 정부의 주요 관심사는 북송될 재일교포의 복지와 안위가 아니었다. 오로지 문제로 여겨지는 집단을 자국 영토에서 내보내는 것이 최대 관심사였다. 일본 정부의 묵인하에 북한을 낙원으로 포장한 거짓 선전이 일본 전역에 퍼졌다.

일본의 많은 출판물, 신문, 예술 작품 및 영화가 북한을 찬양했고, 재일교포들의 북송 신청을 지속해서 장려했다. 또한 ‘재일조선인귀국협력회’를 통해 본국 송환 프로젝트에 깊이 관여한 일본의 유명인과 정치인의 홍보활동은 귀국 운동의 신뢰성을 증가시켰다.

보고서는 “일본 정부는 일본 내 재일교포의 지위를 보호하고, 북송사업의 착수 전후로 북한의 실태를 확인함으로써 사업을 중지시킬 수 있었음에도 의도적으로 우려 사항을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조총련의 북송사업 선전을 도움으로써 북송 재일교포 9만3340명의 인권을 유린하고, 나아가 ‘귀국자’들에 대한 북한 정권의 인권 침해 행위를 용인한 것으로 판단한다”며 “일본 정부는 북한 정부의 북송자 노예화와 강제 이주를 지원하고 방조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