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의 힘…영·정조가 꿈꾼 ‘탕평(蕩平)’

류시화
2023년 12월 11일 오후 10:42 업데이트: 2024년 02월 5일 오전 11:28

국립중앙박물관, ‘탕탕평평-글과 그림의 힘’ 특별전 개최
영·정조의 어필, 서화 등 역사적 의미 담은 작품 다수 전시

국립중앙박물관은 2024년 영조 즉위 300주년을 맞아 ‘탕탕평평(蕩蕩平平)-글과 그림의 힘’ 특별전을 지난 12월 8일부터 개최하고 있다. 이번 특별전은 영조와 정조가 쓴 어필(御筆)과 궁중 행사를 담은 의궤 등 18세기 궁중 서화의 품격과 장중함을 대표하는 54건 88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탕평한 세상’을 위한 영조와 정조의 노력

“치우침이 없고 무리 지음이 없으면 왕도가 탕탕하고
무리 지음이 없고 치우침이 없으면 왕도가 평평하다.
(無偏無黨 王道蕩蕩 無黨無偏 王道平平)”
– ‘서경(書經)’의 홍범(洪範) 중.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3개월여 이어지는 이번 특별전은 조선 후기 제21대 왕 영조(재위 1724~1776년)와 그의 손자이자 제22대 왕 정조(재위 1776~1800년)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간다.

‘바위 그림’(1764/영묘어필첩 제 29,30편), 영조. 종이에 먹.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 류시화/에포크타임스

영조는 조선 역대 왕 중 가장 오랫동안 왕위에 있었던 인물이다. 그는 탕평한 세상을 이루고자 글과 그림을 활용해 신하와 백성들과 소통하려 노력했다. 왕세자로 책봉되고 즉위하는 과정에서 왕위 계승을 문제 삼는 신하들의 의혹을 타개하고자 영조는 ‘황극탕평(皇極蕩平)’을 추진했다. 이는 ‘임금이 표준을 바로 세우면 만백성이 그것을 자신의 표준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오직 백성과 나라를 위해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영조의 포부를 나타낸다.

‘규장각도’(1776년 추정), 김홍도. 비단에 색 | 류시화/에포크타임스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는 1762년 생부 사도세자(후일의 장헌세자, 고종 때 장조로 추존됨)가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후 왕위에 오르기까지 정통성 문제로 많은 고난을 겪었다. 정조는 아버지에 대한 큰 아픔을 가슴에 품은 채 갖가지 개혁 정책 및 탕평책을 펼쳤고, 규장각을 설치해 인재 육성에도 힘썼다. 효와 예를 강조해 자신의 왕위 계승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한편,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복권을 위해 다방면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왕에 버금가는 존호를 올릴 수 있었다.

‘정조가 즉위 날 내린 윤음’(1776/국조보감 권69), 정조. 종이에 목판인쇄. | 류시화/에포크타임스
’장조 추상존호 금인’(1795). 구리 합금에 금도금, 9.9×9.9×8.5cm,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보물·세계기록유산 | 류시화/에포크타임스

탕평의 길로 질서와 화합을 이루다

영조와 정조가 글과 그림을 활용해 탕평을 이루고자 했던 방법에 주목한 이번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 ‘탕평의 길로 나아가다’에서는 탕평의 의미와 의지를 전하고자 했던 그림과 글귀들을 전시한다.

‘탕평비 탑본’(1742), 영조. 종이에 탑본. 한신대학교 박물관 | 류시화/에포크타임스

제2부 ‘인재를 고루 등용해 탕평을 이루다’는 영·정조가 글과 그림을 통해 지지 세력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임금이 신하를 아끼는 마음을 친밀히 전하는 시를 쓴 어필, 아꼈던 신하의 제문을 정조가 친히 쓴 내용 등을 만날 수 있다.

‘강세황 초상’(1783), 그림 이명기, 글 정조, 글씨 조윤형. 비단에 색, 진주 강씨 백강공파 종친회 소장(국립중앙박물관 기탁), 보물. | 류시화/에포크타임스

제3·4부는 ‘왕도를 바로 세워 탕평을 이루다’와 ‘질서와 화합의 탕평’을 주제로 영·정조가 정당한 왕위 계승자임을 강조하고, 이후 탕평 정치를 통해 정치권 통합을 이룬 정조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대중에 처음 공개된 ‘삽살개’

‘삽살개’(1743), 김두량. 종이에 엷은 색, 35x45cm, 개인 소장(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 류시화/에포크타임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작품은 ‘삽살개’다. 영조가 총애했던 조선 후기의 화가 김두량(1696~1763년)이 삽살개를 그리고 영조의 글을 더한 작품이다. 그간 책으로만 소개돼 오다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그림 속 글귀는 영조가 탕평을 따르지 않는 신하를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는 삽살개에 비유한 것으로, 탕평을 따르라는 뜻을 전하고 있다.

(왼쪽) ‘박문수 분무공신 전신상’(1728년 추정), 진재해(추정). 개인 소장, 보물. (오른쪽) ‘박문수 분무공신 반신상’(1750년), 작자 미상. 개인 소장, 보물. | 류시화/에포크타임스

이번 특별전에는 영조의 탕평책을 뒷받침해 준 조선 후기의 문신 박문수(1691~1756년)의 초상화 두 점이 나란히 걸려 눈길을 끈다. 38세 때와 60세 때의 초상화를 함께 배치해 세월의 변화에 따른 얼굴 모습과 섬세한 표현의 차이를 한눈에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다.

(왼쪽) ‘박문수 분무공신 전신상’(1728년 추정)의 세부, 진재해(추정). 개인 소장, 보물. (오른쪽) ‘박문수 분무공신 반신상’(1750년)의 세부, 작자 미상. 개인 소장, 보물. | 류시화/에포크타임스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특별한 장치도 마련됐다. 2021년 MBC 인기 사극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영조를 연기한 배우 이덕화의 음성으로 녹음된 영조의 글이 전시장 곳곳에서 재생돼 글과 작품을 감상하는 몰입도를 높여준다. 또한 관람 중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안내 앱의 음성 안내를 통해서도 이덕화 배우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관객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 류시화/에포크타임스

이번 특별전을 통해 서화의 예술적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한편 글과 그림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 전시는 2024년 3월 10일까지 열린다. 12월 17일까지는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