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마르크스, 中 드라마서 함께 산책…“황당하지만 習사상 반영”

정향매
2023년 12월 26일 오후 3:12 업데이트: 2023년 12월 26일 오후 4:15

카를 마르크스(1818~1883)와 공자(B.C 551~479)는 서로 2000년 이상 떨어진 시대에 살았지만, 지난 10월 중국 국영 방송사가 방영한 드라마에서는 두 사람이 중국식 서원에서 함께 산책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한 화가 지망생이 마르크스와 공자를 모델로 초대했다. 두 철학자는 햇살이 내리쬐는 대나무 숲속에서 포즈를 취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은 특히 중국의 고속철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초상화가 완성되자 두 사상가는 옷을 갈아입고 재 등장한다. 당나라 복식을 착용한 마르크스와 양복에 넥타이를 맨 공자는 서로의 모습에 놀라지만 두 사람 모두 행복해 보인다마르크스가 중국어로 “나는 중국에 온 지 백 년이 넘었다”고 하자 공자는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나도 중국인이 된 지 오래됐다”며 “양복에 긴 머리를 하면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사람은 시대에 따라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며 웃었다. 

올해 10월 중국 후난라디오방송국 도시채널에서 방영한 시리즈 ‘마르크스가 공자를 만나다’에 나오는 장면이다. 중국 후난성 공산당위원회 선전부, 라디오방송국, 라디오·텔레비전방송국이 공동제작했다. 30분짜리 에피소드 5편으로 구성된 드라마 속에는 장궈줘(張國祚) 중국문화소프트파워연구센터 소장, 자오둥메이(趙冬梅) 베이징대 교수, 궈지청(郭繼承) 중국정법대 부교수, 중쥔(鍾君) 후난사회과학원 원장, 천위샹(陳宇翔) 웨리(嶽麓)학원 당서기, 장밍밍(張明明) 중국석유대학 마르크스주의학원 원장, 왕레이(王磊) 선양교육연구소 역사학 연구원 등도 등장한다. 

중국 영화 평론 사이트 ‘더우반(豆瓣)’에 관련 댓글이 약 100개 달렸는데 대부분 “속이 메스껍다” 등 부정적인 댓글이다.

마르크스와 공자, 중국과 독일의 두 중요한 사상가의 만남은 흥미로운 발상으로 보이지만 시청자들은 감명받기는커녕 모순이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평등을 옹호했기 때문에 계급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투쟁을 강조했다. 공자가 가르친 유교 사상은 기회의 평등과 차별 없는 교육도 옹호하지만 장유유서 등 질서를 주장한다. 마르크스와 공자의 철학은 거리가 멀다.

황칭룽(黃清龍) 대만 ‘신민양안(信民兩岸)연구협회’ 이사장은 에포크타임스 자매방송 대만 엔티디 아태방송국 시사 프로그램에서 중국 당국이 이런 드라마를 제작한 이유는 시진핑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는 “중국 당국은 2018년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으로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시진핑은 심포지엄에서 마르크스주의 기본 원칙을 중국 전통문화 및 중국의 현실과 결합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를 강조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황 이사장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이 신봉하는 공산주의는 중국에서 형성된 철학이 아니라 서구에서 전해진 이념이다. 중국인 수천만 명이 공산주의 이념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초기에 중국 공산당은 민족주의를 부정하며 공산주의를 강조했다. 1978년 개혁개방이 시작되자 공산주의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으면서 시장 경제를 발전시켰다. 공산주의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중국 당국은 민족주의를 되살리기 시작했다. “이런 이유로 시진핑은 중국문화, 마르크스주의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목적은 외국 공산주의 체제의 정당성을 유지하는 데 있다”고 황 이사장은 설명했다. 

그는 이 시점에서 이러한 융합을 추진하는 데는 또 특별한 배경이 있다고 했다. 바로 경기침체다. 개혁개방 이후 오랜 기간 중국 공산당은 더 이상 과거의 소위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경제 발전을 정권 정당성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3년 동안의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중국 경제는 침체하기 시작했다. 지난 10년을 통틀어 최악의 한 해로 기록된 2022년이 향후 10년을 통틀어 최고의 한 해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될 정도다. 올해의 상황은 이러한 예측이 맞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경제가 좋지 않기 때문에 중국 당국은 우선 기본적인 통치 이념을 강화하는 게 더욱 필요했다. 

황 이사장은 “이렇게 좌충우돌하는 상황에서 중국 당국은 이른바 ‘마르크스주의 시진핑사상’을 내놨다. 이는 중국 공산당이 마르크스주의를 중국화한 새로운 시도”라며 “따라서 이런 우스꽝스러운 드라마가 탄생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