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속에 피어난 아름다움…천상의 목소리 ‘파리넬리’

앤드루 벤슨 브라운 (Andrew Benson Brown)
2024년 03월 16일 오후 4:59 업데이트: 2024년 03월 17일 오전 5:12

역사적인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간혹 한 개인의 고통이 전 세계에 아름다움을 전파하기도 한다. 만약 이런 고통이 비윤리적인 의도가 야기한 것이라면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지만, 그 고통이 예술로 승화했을 때 타인에게 영감을 주기도 한다.

역사상 위대한 오페라 가수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진 파리넬리는 고통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움의 상징이기도 하다.

비극에서 파생한 운명

‘카를로 브로스키의 초상’(1734), 바르톨로메오 나자리 | 공개 도메인

파리넬리의 본명은 카를로 브로스키(1705~1782)이다. 그는 이탈리아 태생으로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가난한 귀족 집안이었던 그의 가족은 그를 카스트라토(Castrato·남성 거세 가수)로 키우기 위해 사춘기 이전에 거세하기로 결정했다.

당시에도 거세는 비윤리적인 불법행위였기에 그들은 카를로가 낙마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위장해 시술을 거행했다. 그 결과 카를로는 성인이 되어서도 높고 맑은 목소리를 유지하며 성공한 가수로 경력을 쌓게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는 교회 합창단 소년들의 성악 경력을 연장하는 방법으로 거세를 택하기도 했다. 이후 17세기에는 오페라의 부흥과 함께 카스트라토 가수를 양성하는 게 유행했다.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은 카스트라토가 낼 수 있는 높은 음역대를 주로 사용하는 곡을 다수 작곡했다. 18세기에 최고조에 달했던 이 관행은 다행히 19세기에 이르러 사라졌다.

12세의 카를로는 거세의 고통을 견뎌낸 후에도 많은 고통과 억압에 시달렸다. 그는 매일 엄청난 양의 음악 훈련을 받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각각 한 시간씩 음계를 부르고 악보를 읽었다. 이후 한 시간 동안 거울 앞에서 표정을 관찰하며 노래 연습을 했다. 오후에는 음악 이론과 대위법을 배웠고, 호흡·억양·리듬·기교 등을 조절하기 위해 늦은 밤까지 거의 쉬지 않고 연습했다.

전설적인 가수가 되다

몇 년간 매일같이 혹독한 훈련을 거친 그는 1720년, 16세에 오페라 가수로 데뷔했다. 카를로의 예명 파리넬리는 그의 첫 번째 후원자 파리나 가문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한 이름이다이후 파리넬리는 유럽 전역에 이름을 널리 알리며 전설적인 가수로 사랑받았다.

18세기 영국의 음악사학자 찰스 버니(1726~1814)는 파리넬리가 인간에서 음악의 신으로 추앙받기 시작한 순간에 대해 기록했다. 17세 때 로마에서 오페라 공연을 진행하던 파리넬리는 노래 도중 트럼펫 연주자와 서로 더 높은 음역을 소리 내는 대결을 시작했다. 버니는 “파리넬리와 연주자가 저마다 심폐력을 힘껏 드러내며 화려한 경기를 펼쳤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계속해서 높은 음을 안정적으로 내는 파리넬리에게 트럼펫 연주자는 패배했고, 청중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그의 승리를 격려했다.

‘펠리페 5세의 초상’(1720), 조셉 비비안 | 공개 도메인

파리넬리는 스페인 국왕 펠리페 5세를 위해 궁정 가수로 전환하면서 더는 공개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 이후 그는 22년 동안 궁정에 머물며 노래했고, 78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예술 속 파리넬리

고통에서 파생된 파리넬리의 신비로운 삶은 수 세기에 걸쳐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줬다. 그들은 파리넬리의 삶에서 신화적 특징을 포착하려 했다. 많은 문학과 음악, 심지어 영화에서도 그는 계속해 회자하며 가치를 인정받았다.

파리넬리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시인 카를로 프레소니(1692~1768)는 그에 대해 ‘해변을 따라 백조와 세이렌(그리스 신화 속 님프)은 경이로움에 가득 찬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사랑스러운 이탈리아 무대의 신동의 탄생에 감탄했다’라며 시를 남겼다.

오늘날에도 파리넬리에 대한 문학 작품이 계속 나오고 있다. 미국 뉴멕시코주에 거주하는 변호사이자 시인인 브라이언 얍코는 지난해 고전시인협회 국제 콩쿠르에서 ‘파리넬리’라는 작품으로 1위를 차지했다. 총 48행으로 구성된 이 시는 노인이 된 파리넬리의 독백으로 채워졌다.

작품 속 파리넬리는 “불 옆에 앉아 나무가 타오르며 내는 음악을 감상하라. 한때 살아있던 나뭇가지가 재로 변하는 불꽃을 지켜보라”고 독백한다. 작품 속 파리넬리는 자신의 화려했던 삶이 타오르는 불꽃과 같다고 여긴다. 타는 나무처럼 고통과 각고의 노력에서 피어난 영광은 한때 유럽 전역을 열광하게 했지만, 점점 사그라든다.

파리넬리는 회고록을 남기지 않았기에 실제로 그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작품 속 파리넬리의 독백은 인간 본성에 대한 진실을 드러낸다. 정의롭지 않은 사회에서 그를 덮친 비극적 운명은 그의 자유를 송두리째 앗아갔다. 그는 비록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했지만, 평생을 고독과 슬픔에 시달렸을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에게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전설로 남다

18세기 유럽을 풍미했던 파리넬리는 음악의 아버지 헨델의 뮤즈이기도 했다. 평생을 화려함 속에 살았던 그는 은퇴 후에도 모차르트 등 많은 음악가에게 영향을 줬다. 1782년 그는 죽기 전 자신의 모든 재산을 하인과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세상을 떠났다. 비극적인 운명을 아름답게 승화한 그의 삶과 음악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 깊은 감동과 영감을 주고 있다.

앤드루 벤슨 브라운은 미국 미주리주에 거주하는 시인이자 저널리스트입니다. 그는 음유시인 부엉이 출판사의 편집자이자 미국 혁명에 관한 서사시인 ‘자유의 전설’의 저자입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