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화폭에 담은 화가, 윌리엄 워터하우스

찰스 팀(Charles Timm)
2023년 12월 5일 오후 10:11 업데이트: 2024년 02월 5일 오전 11:28

신화와 고전을 사랑한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문학에 대한 연구와 애정을 그림으로 표현한 예술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1849~1917)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났다. 화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예술적 재능을 보였고, 영국 런던으로 이주해 영국 왕립미술학교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예술 활동을 시작했다.

‘카프리에서’(1890)의 일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캔버스에 오일 | 공개 도메인

학교에서 교육받으며 당시 미술학계가 좋아하던 형식과 내용을 주로 그림 소재로 삼았지만, 윌리엄은 점점 예술적 감성이 황폐해짐을 느끼며 관습적인 교육과 그림에 환멸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이탈리아에서 유년기를 보낼 때 주로 접했던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 르네상스 시기의 예술이 진정한 삶과 예술의 표현이라고 깨닫게 되었다. 이후 윌리엄은 한층 높은 차원의 예술을 추구하고자 그리스·로마 신화, 고대·중세 문학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면서 신화를 자신이 그리는 그림의 주요 소재로 삼았다.

‘판도라’

그리스·로마 신화에 대한 윌리엄의 관심은 그의 작품 ‘판도라’에서 잘 나타난다. 판도라는 그리스·로마 신화 속 최초의 인류 여성으로 하늘의 신 제우스가 만들어낸 인물이다. 그녀의 이름은 ‘모든 선물을 받은 여인’이라는 뜻을 지녔다. 그녀는 창조주인 제우스에게서 상자를 선물 받는다. 제우스는 그녀에게 상자를 절대 열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호기심을 이겨내지 못한 판도라는 상자를 열어 버렸고 그 속에 있던 질병, 가난, 슬픔, 전쟁, 증오 등의 악들이 세상으로 쏟아져 나왔다.

‘판도라’(1896),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캔버스에 오일 | 공개 도메인

윌리엄은 판도라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1896년, 상자를 열어보는 판도라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림 속 상자는 황금빛이 선명하고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판도라는 그 상자를 조심스러우면서도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과 손짓으로 열어본다. 상자의 열린 틈에서는 악의 기운인 잿빛 연기가 세상으로 뻗어 나오고 있다.

아서 왕 전설

윌리엄은 고대 전설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에서도 영감을 받았다. 영국의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1809~1892)은 빅토리아 시대의 계관시인이다. 알프레드의 작품은 아름다운 조사와 운율로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의 작품 중 ‘샬롯의 여인’은 아서 왕 전설에서 영감을 받아 쓴 것이다.

알프레드의 시 ‘샬롯의 여인’은 아서 왕 전설 속 여인 일레인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일레인은 에스톨렛의 왕 버나드의 딸이다. 그녀는 사람을 직접 마주하게 되면 저주를 받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렇기에 그녀는 모든 사람을 거울로 쳐다봐야만 했다. 저주를 피하고자 탑에 갇혀 생활하던 그녀는 랜슬롯 경을 만나게 되고, 그를 거울을 통해 처음 만나는 순간 사랑에 빠져 그만 몸을 돌려 그를 직접 보게 된다. 그 즉시 일레인은 저주받고 생명을 점점 잃어간다. 그녀는 랜슬롯이 사는 카멜롯으로 가 숨을 거두길 원했고, 딸의 청을 거부하지 못한 버나드 왕은 작은 배 한 척에 그녀를 태워 강물에 흘려보낸다.

‘샬롯의 여인’

‘샬롯의 여인’(1888),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캔버스에 오일. 런던 테이트 갤러리 | 공개 도메인

‘하루가 끝날 무렵 그녀는 사슬을 풀고 누웠다.
넓은 시냇물이 그녀를 멀리 데려갔네, 샬롯의 여인.’

– ‘샬롯의 여인’의 일부. 알프레드 테니슨 –

윌리엄이 1888년에 그린 작품 ‘샬롯의 여인’은 알프레드의 비극적인 시의 마지막 부분을 묘사한 것이다. 이 작품은 윌리엄의 대표작으로 꼽히기도 한다.

배를 타고 카멜롯으로 향하는 일레인은 절망과 슬픔에 가득 찬 표정이다. 그녀는 부두에 배를 묶었던 사슬을 풀고 사랑하는 이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그림 속 왼쪽의 제비는 불길한 징조를 예고하고 있다. 꺼져버린 촛불은 그녀에게 죽음이 임박했음을 암시한다.

문학과 고전을 사랑한 예술가

‘오필리아’(1894),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캔버스에 오일 | 공개 도메인

윌리엄은 이 외에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 속 인물인 오필리아를 소재로 한 그림과, 호메로스의 고대 장편 서사시 오디세이 속 이야기를 소재로 한 그림도 즐겨 그렸다.

자연 풍경을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답게 묘사하고, 특히 이야기 속 여인의 모습을 매혹적으로 표현했던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그는 예술의 근원과 탄생 배경, 문화에 대한 학문적 탐구를 바탕으로 아름답고 가치 있는 작품을 대거 탄생시켜 지금까지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Charles Timm은 뉴저지 출신의 창의적인 작가로 미술과 전통 문화에 대한 글을 즐겨 쓴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기사화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