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페르세포네의 귀환’

이본 마르코트(Yvonne Marcotte)
2023년 11월 30일 오후 10:51 업데이트: 2024년 02월 5일 오전 11:28

사계절의 기원

만물을 얼게 만드는 겨울 추위는 자연의 시간도 더디 흐르게 만든다. 혹독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지구 위 많은 생명은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된다. 고대인들은 신이 지구상의 모든 것을 관장한다고 믿었다. 특히 그리스인들은 계절 또한 신이 우리에게 내려준 산물이라 믿었다. 그들은 자연의 여신 데메테르와 그녀의 딸 페르세포네의 이야기를 통해서 봄이 오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설명했다.

신들의 이야기

‘데메테르의 흉상’(기원전 4세기 경), 작자미상. 국립 로마박물관 | 공개 도메인

대지와 수확의 여신 데메테르와 하늘의 신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페르세포네는 절세미녀였다. 그녀는 많은 신들로부터 구애와 유혹을 받았고, 어머니 데메테르는 딸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시칠리아섬에 그녀를 숨겼다. 

그러나 페르세포네는 그녀의 미모에 반해 쫓아온 죽음과 지하계의 신 하데스에게 납치돼 하계로 끌려간다. 하데스는 페르세포네를 강제로 아내로 맞이했다.

‘하데스의 납치’(1621), 지안 로렌조 베르니니. 대리석에 조각 | 공개 도메인

데메테르는 사라진 딸을 찾으러 온 그리스를 돌아다녔다. 아무리 애를 써도 딸을 찾지 못한 데메테르는 슬픔에 잠겼다. 푸르렀던 대지는 슬퍼하는 여신에 의해 생기를 잃었고, 식물들은 모두 시들어버렸다. 페르세포네의 맑고 밝은 웃음소리가 사라진 땅 위는 슬픔만이 가득했다.

하늘의 신 제우스는 변해버린 자연으로 인해 굶주리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아우성과 딸을 잃은 데메테르의 원성을 외면할 수 없어 하데스를 찾아가 페르세포네를 지상으로 돌려보내길 명령했다. 이에 하데스는 페르세포네를 일 년의 절반은 지상에서, 절반은 지하에서 보내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페르세포네가 지상에서 지내는 동안, 대지는 다시 초록으로 물들고 나무에는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지하로 내려가면 데메테르의 슬픔에 지상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이렇게 사계절이 생겨난 것이다.

‘페르세포네의 귀환’

‘페르세포네의 귀환’(1830), 프레드릭 레이튼. 캔버스에 오일. 영국 리즈 미술관 | 공개 도메인

19세기 영국의 화가 프레데릭 레이튼(1830~1896)은 조각가로서도 활동했던 예술가이다.

프레데릭은 사실적이면서도 따뜻하고 아름다운 색채와 질감의 그림을 주로 그렸다. 당대에 실력과 재능을 인정받았던 그는 1896년에 화가로서는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남작 작위를 받기도 했다.

프레데릭은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와 관련된 주제를 주로 다뤘다. 그의 작품 ‘페르세포네의 귀환’은 페르세포네가 지하 어둠 깊은 곳에서 벗어나 어머니가 있는 아름다운 지상 세계로 돌아오는 순간을 보여준다.

‘페르세포네의 귀환’의 세부(1830), 프레드릭 레이튼. 캔버스에 오일. 영국 리즈 미술관 | 공개 도메인

어머니 데메테르는 지하 세계의 입구에 서서 딸을 향해 두 팔을 뻗고 있다. 데메테르가 입은 환한 적갈색 옷은 자연의 기운과 수확의 계절을 상징한다. 또한 딸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사랑을 의미하기도 한다.

데메테르 뒤편의 구름 가득한 하늘은 그녀의 밝고 애정이 넘치는 기운을 반사해 반짝인다. 빛과 사랑을 듬뿍 품은 그녀는 지하 세계 입구에 가능한 한 가까이 다가선다. 반가움과 슬픔, 많은 감정이 복합적으로 몰려온 데메테르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딸을 향해 상체를 기울인다. 그녀 발아래 피어난 분홍빛 아몬드꽃은 봄이 왔음을 예고한다.

‘페르세포네의 귀환’의 세부(1830), 프레드릭 레이튼. 캔버스에 오일. 영국 리즈 미술관 | 공개 도메인

어둠에서 이제 막 벗어난 페르세포네는 어머니를 향해 손을 뻗는다. 오랜 지하 세계의 생활로 그녀의 피부에는 온통 서늘하고 시퍼런 기운이 서려 있다. 대지를 밝혔던 사랑스러운 그녀의 온기는 온데간데없고 희미하고 창백한 빛이 그녀를 감싸고 있다. 그녀의 팔과 얼굴, 온 신경은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름다운 고향을 향해 있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두 팔을 애원하듯 어머니를 향해 뻗은 그녀는 따뜻함과 빛을 그리워한다.

제우스의 명으로 하데스에게서 페르세포네를 땅 위로 데려온 전령의 신 헤르메스는 그녀를 안전하게 지상으로 인도한다. 그는 날개가 달린 붉은 모자를 쓰고, 제우스의 사자임을 나타내는 지팡이 ‘카두세우스’를 한 손에 들고 있다. 그는 딸을 그리워한 어머니의 얼굴을 애틋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예술과 신화, 자연의 만남

빅토리아 시대에 유명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프레데릭 레이튼의 그림은 당시 빅토리아 여왕도 구입할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고대 전통 예술에 대한 높은 관심을 작품 속에 풀어낸 그는 예술 속에 신화 속 이야기를 우아하게 녹여냈다. 레이튼은 ‘페르세포네의 귀환’을 통해 페르세포네의 귀환과 납치가 대지에 풍요와 가뭄, 성장과 소멸을 가져오는 계절의 순환을 묘사했다. 지상과 지하, 탄생과 죽음이 반복되며 점점 토지가 더욱 비옥해지고 열매가 더 크게 맺히는 것처럼 생명과 죽음은 순환 관계를 이루고 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기사화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