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감정·극적인 플롯…낭만주의 오페라에 담긴 전통의 미학

아리아네 트리브스웨터(Ariane Triebswetter)
2024년 04월 17일 오전 10:27 업데이트: 2024년 04월 17일 오전 10:27

18세기 후반 미국 혁명 소식이 유럽 전역에 퍼지면서 개인의 자유, 민족주의에 대한 사상이 등장해 예술을 비롯한 사회 전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시대의 흐름에 힘입어 이전 고전주의 형식의 제약에서 벗어나 낭만주의 사조(1830~1900) 음악이 탄생했다. 이러한 낭만주의 음악의 선봉에는 오페라가 자리했다.

모차르트, C.W. 글루크가 정립한 고전주의 오페라에 뿌리를 두고 새로이 자라난 낭만주의 오페라는 루트비히 반 베토벤(1770~1827) 등의 예술가들이 이끌었다. 그들은 문학 작품이나 역사적 사건에서 얻은 영감을 소재 삼아 오페라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또한 당대의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1813~1901),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 등은 아름다운 음악을 사용해 음악적 표현 영역을 확장했고, 강렬한 감정을 표현하며 오페라 음악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자유의 찬가

나폴레옹이 유럽 대륙을 장악하면서 음악가들은 오페라에 새로운 형식과 활기찬 정신을 도입했고, 낭만주의 오페라가 등장했다.

1814년 ‘피델리오’ 공연 극본 | 퍼블릭 도메인

베토벤의 작품 ‘피델리오’는 그가 완성한 유일한 오페라 곡이다. 이 곡은 고전 오페라에서 낭만주의 오페라로의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 그는 단순한 아리아(독창곡), 듀엣곡, 대사, 웅장한 피날레를 혼합해 인간의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완성했다. 베토벤의 자유에 대한 위대한 찬가인 이 오페라는 나폴레옹이 황제 작위를 받고 1년 후인 1805년에 초연됐다. 나폴레옹이 패망한 1814년에 두 번째 공연이 열렸고, 그는 ‘빈의 영광’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독특한 서사

낭만주의 오페라가 유럽 전역에서 번성하며 나라마다 고유한 형식의 음악적 서사가 정립됐다. 당대 작곡가들은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부터 역사, 초자연적 이야기까지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탐구했다.

당대 많은 작곡가는 인간 영혼의 심오함을 탐구하기 시작했고, 오페라는 강력한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궁극적 수단이 됐다. 이탈리아의 작곡가 조아키노 로시니(1792~1868)는 셰익스피어의 문학 작품에 기반한 오페라 ‘호수의 여인’(1819), ‘오셀로’(1816) 등 인간의 내면과 감정에 대한 작품을 만들었다.

벨칸토 창법의 탄생

당시 작곡가들은 새로운 화성 형식과 관현악 기법을 연구해 독특한 가창 기법을 만들었다.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벨칸토’ 창법이다.

‘로시니의 초상’(1830), 빈첸초 카무치니 | 퍼블릭 도메인

벨칸토(Bel canto)는 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 노래’를 뜻한다. 이 창법은 로시니가 처음 세상에 소개한 것으로 단순한 화성 구조를 화려한 기교와 부드럽고 아름다운 음색으로 꾸미는 것이다. 그는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1816) 중 ‘방금 들린 그 목소리’에 이 창법을 차용했다.

낭만주의 시대의 이상에 따라 벨칸토 창법은 인간의 목소리로 서사를 호소력 있게 전달한다. 당시 많은 이탈리아 작곡가는 이 창법을 사용한 곡을 다수 탄생시켰다.

로시니의 후계자로 여겨지는 작곡가 가에타노 도니체티(1797~1848)는 ‘람메르무어의 루치아’(1835)에서 비극적 상황을 전달하는 데에 벨칸토 창법을 사용했다. 유려한 선율로 유명한 작곡가 빈첸초 벨리니(1801~1835)는 오페라 ‘노르마’(1831)의 솔로곡 ‘정결한 여신’에서 이 창법을 통해 강렬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을 전달했다.

벨칸토 창법은 19세기 중반 이후 쇠퇴했으나, 20세기 중반 이후 부활해 인기를 얻고 있다. 미국 뉴욕에 기반을 둔 세계적인 예술단인 션윈 예술단 또한 전통적인 벨칸토 창법을 활용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베르디와 바그너

낭만주의 오페라는 베르디, 바그너와 함께 절정에 달했다. 두 작곡가 모두 오페라에 새로운 차원을 부여하고 후대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

베르디는 벨칸토 창법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그 깊이와 섬세함을 한층 더 발전시켰다. 그는 가사와 스토리에 깊은 심리적 통찰력을 더하고 작곡 기법을 통해 시대에 관한 정치적 논평을 가미함으로써 오페라에 담긴 의미를 고차원으로 끌어올렸다.

그는 극적 상황에 진실성을 부여하고 음악을 통해 등장인물의 본질을 포착했다. 그의 걸작 ‘리골레토’(1851), ‘라트라비아타’(1853), ‘아이다’(1871) 등에는 그만의 깊이가 담겨있다.

리하르트 바그너 | 퍼블릭 도메인

베르디가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적인 면을 발전시킨 반면, 바그너는 독일 민족주의의 이상을 구현하는 새로운 양식을 창조했다. 그는 북유럽 중세 신화의 배경을 차용해 권력, 사랑, 절망, 죽음이라는 낭만주의적 주제를 표현했다.

바그너는 오페라의 기본 관습인 낭송과 독창곡 대신 ‘시도 동기(示導 動機·음악에서 인물의 특정한 감정을 상징하는 연속된 음)’를 도입해 감정을 표현했다. 아울러 오페라의 흐름에 관현악단을 새롭게 배치해 곡을 다채롭게 구성했다.

낭만주의 오페라는 오늘날까지도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강력한 예술 중 하나로 남아있다. 복잡한 화음과 서정적 선율, 대규모 관현악단, 극적인 플롯으로 낭만주의 오페라는 지금까지도 음악 전문가와 대중 모두를 매료시키고 있다.

아리아네 트리브스웨터는 현대 문학과 클래식 음악에 대한 배경지식을 갖춘 국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입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