驚蟄, 잠자던 생명이 놀라 깨어나다…천둥소리에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

강우찬
2024년 03월 8일 오후 5:21 업데이트: 2024년 03월 9일 오전 9:46

24절기 중 세 번째 절기인 경칩(驚蟄)은 겨울잠 자던 생물이 깨어나는 시기다.

태양이 황경의 345도에 도달해 날씨가 따뜻해지고 봄 천둥이 울리기 시작하면서 겨우내 동면하던 생물들이 깨어난다. 풀과 나무들도 경쟁하듯 기지개를 켜며 온화한 계절을 반긴다. 올해 경칩은 지난 5일이었다.

중국 원나라 때 24절기를 풀이한 책 ‘월령칠십이후집해(月令七十二候集解)’에 따르면 “2월에는 만물이 진(震)에서 나오는데, 진(震)은 천둥이다. 따라서 경칩이라 한다. 숨은(蟄) 벌레들이 놀라서(驚) 나온다”고 적었다.

경칩은 다시 5일씩 세 가지 시기로 나뉜다. 첫 5일은 복숭아꽃이 피고, 그다음 5일은 꾀꼬리가 울며, 마지막 5일은 제비가 날아온다.

기상학적으로 경칩 전후에 날씨가 따뜻해지기 시작하고 강우량이 점차 증가해 대부분 지역이 봄 농사철에 들어간다.

천둥이 자주 치는 것은 비가 내린다는 의미도 된다. 옛 문인들의 시를 살펴보면, 경칩 시기에 천둥 현상을 언급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24절기 중 두 번째 절기인 경칩(驚蟄). 겨울잠 자던 동물들이 따스한 봄 기운과 천둥 소리에 깨어나는 시기다. 한반도에서는 개구리 알을 건져 먹었다는 풍속도 전해진다. | 일러스트=다슝(인스타그램@daxiongart)

중국 동진, 송나라 시기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은 “중춘(仲春·2월)에 때맞춰 비 내리니, 첫 우레가 동쪽 끝에서 울린다 /겨울잠 자던 무리들 저마다 놀라 깨고, 초목은 사방으로 싹을 틔우는구나”라고 썼다.

송나라 시인 추원(秋元)의 시 ‘경칩날 천둥(驚蟄日雷)’도 경칩을 다룬 작품이다. 이 시는 경칩 이후 세찬 비바람과 천둥, 번개에 초목이 싹트고 대지에 봄이 돌아오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한밤중에 서쪽에서 천둥소리 울리더니, 벌레가 숨은 굴이 꽃 피듯 열렸네/ 들바람 세차게 불어 촛불 꺼뜨리고, 번갯불이 급히 창을 두드린다/ 문득 풀과 나무가 정신을 차리고, 날씨를 묻는 인사말이 절로 나오누나/ 의연한 것은 돌거북과 나무 기러기요, 돌아오는 봄을 흔들림 없이 맞이하네(坤宮半夜一聲雷, 蟄戶花房曉已開. 野闊風高吹燭滅, 電明雨急打窗來. 頓然草木精神別, 自是寒暄氣候催. 惟有石龜並木雁,守株不動任春回).”

경칩은 사람들에게 봄 농사의 시작을 의미했다. 고대에는 좋은 날씨를 기대하며 뇌신(雷神·천둥의 신)을 우러렀고 집마다 뇌신의 그림을 붙이고 제사를 드렸으며, 사찰에서는 향을 올리며 공양했다. 다들 올해에는 별 재난 없이 무사하게 보낼 수 있기를 기원했다.

경칩의 원래 명칭은 ‘계칩(啟蟄)’

곤충은 겨울이 되면 땅속에서 들어가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며 꼼짝하지 않았다. 옛사람들은 이를 ‘칩(蟄)’이라고 불렀다.

그 앞에 ‘열다’라는 뜻의 ‘계(啟)’ 자를 사용해, 봄이 오고 기온이 올라가 땅이 부드러워지면 숨어 지내던 곤충들이 봄의 햇살을 느끼고 동면(蟄) 상태를 깨뜨리고(啟) 밖으로 나온다는 의미를 나타냈다.

계칩이 경칩으로 바뀌게 된 데에는 전한(前漢, 기원전 206년~기원후 8년)의 여섯 번째 황제인 경제(한경제)의 이름과 비슷한 것을 피하기 위해 ‘계’ 대신 ‘경(驚)’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송의 관리이자 역사학자인 왕잉린(王應麟)은 자신의 책 ‘곤학기문(困學紀聞)’에서 “계를 경으로 바꾼 것은 경제 황제의 이름을 피휘(避諱)하기 위해서”라고 썼다. 피휘는 황제나 왕, 성인의 이름, 연호와 같거나 비슷한 글자를 다른 글자로 대치하는 관습을 뜻한다. 공경을 나타내는 고대의 방식이다.

한경제 시절 바뀐 것은 이름뿐만이 아니다. 이전에는 24절기의 순서가 입춘-경칩-우수-춘분-곡우-청명이었으나, 경제 황제 이후에는 입춘-우수-경칩-춘분-청명-곡우로 경칩과 우수의 순서가 서로 바뀌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나라 이후에는 더는 ‘계’를 피할 이유가 없어져서 ‘계칩’이란 용어가 다시 사용되기도 했지만, 그대로 ‘경칩’이라고 쓴 당시 문헌도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지금도 계칩(게이치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경칩과 관련된 풍습

중국에서는 경칩이 되면 뱀과 벌레 같은 해충들이 깨어난다고 여겨, 집 네 귀퉁이에 향과 쑥을 피워 해충을 쫓기도 했다. 석회를 문지방 바깥에 뿌려 개미 같은 벌레들의 접근을 막기도 했다.

한반도에서는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와 도롱뇽이 번식을 위해 웅덩이나 연못에 낳은 알을 먹으면 허리 통증을 낫게 하고 몸을 보양할 수 있다고 믿어, 경칩날 냇가에서 개구리알이나 도롱뇽 알을 건져 먹는 풍속도 있다.

경칩날 벽을 바르면 빈대가 없어진다고 해서 흙벽을 바르거나,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해서 일부러 벽을 바르거나 담을 쌓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리싹의 성장 상태를 보고 한 해의 풍흉을 점치기도 했다. 위장병을 고치려 단풍나무나 고로쇠나무의 수액을 마시는 지역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