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역사책 검열 강화…“정권 위기 반영”

닝하이중(寧海鐘)
2023년 12월 4일 오후 3:03 업데이트: 2023년 12월 4일 오후 3:45

역사학자 이중톈(易中天)이 저술한 중국 역사서 ‘이중톈 중화사(易中天中華史, 2007년 출판)’가 최근 판매 금지됐다. 판금(販禁) 조치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당국이 삼국지 인물 원소(袁紹)에 빗대 시진핑을 풍자한 것으로 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최근에는 공식적으로 편찬한 역사서도 검열에 걸려 출판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중국 당국이 역사학계를 단속하고 학술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공산당 통치가 위기에 빠졌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이중톈의 역사책, 시진핑 풍자했다는 이유로 판매 금지

신랑재경(新浪財經)은 11월 29일 ‘이중톈 중화사’를 출판한 과맥문화(果麥文化)의 관계자를 인용해 “과맥문화가 2022년 이미 자체 심사를 통해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이중톈 중국사’를 거둬들였고 현재 수정 중”이라고 전했다.

대만 중앙사(中央社)는 11월 30일 소식통을 인용해 “‘이중톈 중화사’를 회수한 것은 출판사의 자발적인 조치가 아니라 주무부처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며 저자의 역사 인식이 문제가 된 것 같다고 전했다. 같은 시기에 인터넷에는 판매 금지 통지문으로 보이는 문서가 떠돌았다.

이중톈은 후난성 창사 출신으로 샤먼대학교 인문대학 중문학과 교수이자 박사 과정 지도교수를 지냈다. 그는 관영 중앙방송(CCTV)에서 삼국지를 강의하기도 했다.

네티즌들은 그의 책이 금서가 된 것은 그가 동한(東漢) 말기 군벌 세력 중 하나인 원소를 평가한 대목이 시진핑의 심기를 건드린 것으로 보고 있다.

X 플랫폼에 올라온 관련 동영상에서 이중톈은 원소를 이렇게 평가했다.

“나는 그를 너무나 잘 안다. 야심이 크고, 지혜가 적고, 행동이 포악하고, 담력이 작고, 매몰차고 의심이 많으며, 대인관계가 좋지 않은 것이 그의 특징이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근시안적이었고, 군사적으로는 지략이 부족했으며, 조직 운영 면에서는 무능했다. 그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은 집안의 정치적 자원을 이용하고 아버지 대(代)의 업적을 밑천 삼은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 대에서 닦아놓은 기반 위에서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능가하는 명성과 지위를 얻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어리석고 고집스럽고 오만한 모습을 보여줬다.”

X 플랫폼에 올라온 이중톈의 원소를 평가하는 영상(왼쪽)과 판매금지 통지문(오른쪽) 캡처. | 인터넷 이미지

미국의 중국계 문화학자 우쭤라이(吳祚來)는 11월 30일 에포크타임스에 “(많은 사람이) 이중톈의 작품이 금지된 것은 그가 역사 속의 군주를 비웃고 조롱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현 권력자가 자신을 빗댄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우쭤라이는 현대 중국 문학의 거장으로 추앙되는 루쉰(魯迅, 1881~1936)을 예로 들었다. 루쉰의 작품 중 상당수는 당시 북양정부(1912년부터 1928년까지 베이징에 존재한 중화민국 정부)를 비판했다. 그래서 당시 공산당은 그를 좌파 작가로 분류했다. 하지만 지금은 루쉰의 작품도 교과서에서 많이 삭제됐다.

우쭤라이는 “(공산당 지도부는) 루쉰이 당시 국민당 정부를 비판할 때는 좋아했지만, 이제 그것을 자신들의 행위에 비춰보니 자신들은 훨씬 검다는 것을 깨닫고 루쉰의 작품도 일부 금지했다”고 했다.

호주 시드니공대 펑총이(馮崇義) 교수는 11월 30일 에포크타임스에 “과거에는 개인이 역사를 쓰는 데 상대적으로 관대했는데 시진핑이 집권한 이후에는 이른바 역사 허무주의를 단속하기 시작했다”며 “이중톈이 쓴 책은 당국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서 금지됐다”고 했다.

그는 또 “중국인들은 현 정권을 고대 제왕과 비교하지만 사실 공산당 총서기는 황제보다 훨씬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 과거 황제의 권력은 현(縣)까지 닿았지만, 공산당 권력자는 전 세계로 손을 뻗치고 있다”고 했다.

“공산당의 민간 역사서 금지는 통치 위기 반영”

비슷한 사례로 명나라 역사 전문가 천우퉁(陳梧桐)이 쓴 ‘숭정: 부지런히 정사를 돌본 망국의 군주(崇禎: 勤政的亡國君)’라는 책이 지난 10월 판매가 금지됐다. “패착을 반복하고 연거푸 실수했다. 열심히 할수록 나라가 망해갔다”는 표지 문구가 시진핑을 연상시킨다는 게 이유라는 분석이 나온다.

펑총이는 이 책이 시진핑을 ‘망국의 군주’에 빗대 그가 “열심히 일할수록” 잘못된 방향으로 더 멀리 가고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16일, ‘숭정: 부지런히 정사를 돌본 망국의 군주(崇禎: 勤政的亡國君)’라는 책의 표지와 판매 금지 통지서. | 인터넷 캡처

우쭤라이는 중공이 민간에서 출판한 역사책을 금지하고 민간의 학술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공산당의 통치가 위기에 빠졌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중공의 정치적 신념은 이미 무너졌고 경제도 파탄 나고 있다. 옛날이었으면 전국 각지에서 봉기가 일어났을 것이다. 지금 공산당은 첨단 기술을 동원해 통제를 강화하면서 수명을 연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가 불안해지면서 이 정권은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한 후 일부 군대가 들고일어나면 정권은 무너질 것이다.”

그는 구소련 붕괴를 예로 들었다. 그는 격변이 있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고 중공도 그러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당국이 편찬한 역사책도 ‘검열’

학자들이 저술한 역사책뿐만 아니라 당국이 편찬한 역사책도 ‘정치심사(政審)’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중공 당국이 20억 위안(약 3600억원)을 투자해 20년에 걸쳐 편찬한 청나라 역사서 ‘청사(清史)’가 2년 동안의 ‘정치심사’ 끝에 결국 통과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유는 “해외에서 새로 나온 청나라 역사관의 영향을 지나치게 받았다”는 것이다.

예일 로스쿨 교수인 장타이쑤(張泰蘇·Taisu Zhang)는 11월 초 이 소식을 공개하면서 “20억 위안이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가 정치적 올바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산됐다는 사실에서 중공의 학술 심사제도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8월 25일 몽골어-중국어판 ‘몽골족통사(蒙古族通史)’ 발행을 일시 중단한다는 안내문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안내문에서 내몽골도서잡지출판협회는 “역사 허무주의에 반대한다”며 회원사들은 랴오닝민족출판사가 출판한 ‘몽골족통사’의 출판을 중단하고 이미 유통 중인 책은 즉시 판매를 중단하라고 고지했다.

시진핑은 6월 7~8일 내몽골을 시찰할 때 이른바 중화민족의 공동체 의식을 강화할 것을 제안했다. 이번에 ‘몽골족통사’가 금지된 것은 이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펑총이는 “중국은 정부 기관이 역사서를 편찬하는 전통이 있고, 과거에는 몇 가지 다른 관점의 역사서가 전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중공이 역사를 날조하고 있기 때문에 시진핑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그냥 폐기된다”고 했다.

우쭤라이는 지난 2년 동안 시진핑이 여러 차례 언급한 ‘역사적 자신감(歷史自信)’이 학술과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역사적 관점’은 공산당 지도부를 불편하게 하는 역사관을 잘못된 것으로 규정하고 타격하기 위해 사용하는, 공산당의 상투적인 표현이자 ‘정치적 올바름’에 입각한 용어다. 그래서 문화대혁명이나 반우파 운동 당시에는 비판하고 말았던 문제를 이제는 직접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는 그들이 근본적으로 자신감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