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공산당 선거 개입, 되레 역효과…민진당 승리에 기여”

강우찬
2024년 01월 15일 오전 10:23 업데이트: 2024년 01월 15일 오후 3:42

선거 개입 역대 최고조, 막판까지 군사적 위협
어려움 속 민주주의 선거 절차 지켜낸 건 수확
中 공산당 압박 더 거세질 것…청년 민심도 숙제

대만 민진당이 13일 총통 선거(대선)에서 승리해 3기 연속 정권을 잡게 됐다. 라이칭더(賴淸德) 총통 당선인은 오는 5월 20일 정식 취임할 예정이다.

이번 대만 대선은 미중 관계 악화와 대만해협의 정세 긴장을 배경으로 치러지며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선거 결과가 대만 내정, 양안, 미중관계, 미-대만 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두 전문가의 견해를 들어봤다.

시드니공대 부교수 펑충이(馮崇義)는 “이번 선거 결과는 대만 정세를 주시하던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줬다”며 “대만 인민의 현명한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펑 교수는 “중국 공산당(중공)이 원치 않는 선거 결과가 나왔다”며 “중공은 허위정보 유포, 군용기 대만 영공 비행, 정치인 뇌물 제공 등 군사적 위협과 여론 조작을 병행하는 상투적 수법을 동원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정찰풍선 같은 새로운 방법도 사용하고, 대선 당일에도 항공기와 군용 선박을 출동시켜 군사적 위협을 가하는 등 막판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이런 움직임이 역효과를 냈다. 대만 인민들은 선거 결과를 통해 공산당 정권의 지배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점을 드러냈다”며 “다만, 대만은 중공이 전방위적 위협과 통일전선을 지속하리라는 점은 기억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언론인 출신 평론가 겸 유명 블로거 차이선쿤(蔡愼坤)은 이번 선거는 중공의 선거 개입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마잉주 전 대만 총통이 민진당의 우세를 뒤집기 위해 야권 후보 단일화를 시도했지만 협의가 결렬됐다는 점을 언급했다.

아울러 마잉주 전 총통이 8일 독일 언론과 인터뷰에서 양안관계에 있어 “시진핑을 믿어야 한다”는 발언으로 대만 유권자들 사이에서 논란을 일으켰으며 국민당의 허우유이(侯友宜) 후보조차 선 긋기에 나서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했다.

차이선쿤은 “이번 선거는 중공이 지지하는 인물은 반드시 패배한다는 교훈을 남겼다”며 “현재 대만 정세에서 중공에 우호적인 정당과 인사는 대다수의 유권자들에게서 외면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은 대만해협의 안정을 바란다”

대만 대선 전날인 12일 오전, 미국의 외교수장인 국무장관과 공산당 고위급 간부가 미국 워싱턴에서 회동했다.

이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중국의 차기 외교부장(외교장관) 기용 가능성이 점쳐지는 류젠차오(劉建超) 중공 대외연락부장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블링컨 장관은 중공 측에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대만 선거를 대만 해협을 불안정화시키는 구실로 삼지 말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펑 교수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개입 중인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새로운 전장이 열리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다.

그는 “대만은 기본적으로 현상유지 노선을 걷게 될 것이다. 부총통 당선인 샤오메이친(蕭美琴)은 최근까지 주미 대표를 지냈고 미국과 깊은 교류를 해왔기 때문에 외교적으로 큰 실패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 선거와 대만해협 정세를 ‘글로벌 2차 냉전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게 펑 교수의 견해다.

‘2차 냉전’은 미국이 주도하는 민주주의 진영과 중국이 주도하는 권위주의 진영의 대립을 의미한다. 대만은 중공의 권위주의 체제 확장을 봉쇄하는 민주 진영의 최전선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펑 교수는 “외교와 민생 부분에서 라이칭더 당선인의 정책은 문제가 없어 보인다. 어려운 것은 중공의 도전에 직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라이칭더가 시진핑이 고조시키고 있는 대만해협의 전쟁 위협에 어떻게 대처할지, 그의 위험 관리 능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며 “하지만 이념적 관점에서 민주주의 진영이 대만을 지지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고 평가했다.

펑 교수는 만약 전쟁이 발생하면 미국이 어디까지 지원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미국도 올해 11월 대선을 앞두고 있고, 자국 내에는 고립주의(타국의 내부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방침) 사상이 만연해 있다. 만약 대만해협에서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거나 중공이 경제봉쇄를 가한다면, 대만 지도자들은 국제사회의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차이선쿤은 이번 선거 결과 기존 양안관계를 재편하고 특히 대만의 ‘탈중국화’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그는 “미-중 관계, 미-대만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민진당 재선을 앞두고 중공이 전쟁을 일으킬 것인지, 일으킨다면 시점은 언제가 될지 지켜봐야 한다”면서 “러시아-우크리아나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중공이 대만에 무력 개입할 경우 발생할 비용과 대가의 전망치도 크게 올라갔다”고 밝혔다.

차이선쿤은 중공은 앞으로도 대만을 계속 괴롭히는 선택을 하겠지만 쉽게 무력을 사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봤다.

청년층 민심 이탈….라이칭더 정부 숙제

이번 대만 대선에서는 제3세력인 민중당의 커원저(柯文哲) 후보가 돌풍을 일으켰다. 그는 민진당과 국민당 지지층 일부를 끌어들였고 특히 국민당에서 이동한 지지자들이 많았던 것으로 분석됐다.

차이선쿤은 “커원저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 다크호스로 떠올랐고 추후 대통령직에 다시 도전할 가능성이 있다”며 “지금까지 등장했던 다른 제3세력처럼 빠르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동안 영향력을 유지하며 민진당과 국민당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펑 교수는 민진당 정부하에서 청년층의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청년들은 집을 살 여력이 없다. 임금은 집값 상승을 따라잡지 못하고, 민진당으로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힘이 부족하다”며 “청년들이 국민당에 희망을 보지 못했으면서도 민진당이 아닌 정치 신인 커원저에게 표를 던진 이유”라고 말했다.

펑 교수는 라이칭더 정부가 집권 이후 청년층 경제난 해결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라이칭더는 광부의 아들로 민생 문제를 직접 겪은 인물”이라며 “청년 취업 문제, 집 문제, 기업 특혜 논란, 산업 발전 등 산적한 과제 속에서도 청년들의 고충을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민주주의 국가들 선거에 본보기”

올해는 세계 약 70개국이 주요 선거를 앞두고 있어 ‘선거의 해’로 평가된다. 두 사람은 새해 초 치러진 대만 선거가 민주주의 국가들에 참고가 될 것으로 관측했다.

펑 교수는 “민주주의 국가들은 각 정당들이 진영 논리에 빠져, 국익보다 당리당략을 우선시함으로써 정치의 질을 떨어뜨리고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스스로 잃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는 민주주의 국가들에 경종을 울리는 일이자, 중공 등 전체주의 세력이 선거에 개입할 여지를 내준 대목”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대만이 중공의 선거 개입을 극복하고 유권자들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지도자를 선택하도록 한 것은 다른 민주주의 국가의 선거에 큰 격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 NGO 단체인 프리덤하우스가 발표한 2023년 ‘국가별 자유도 순위’에서 대만은 100점 만점에 94점으로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차이선쿤은 이를 언급하며 대만의 민주정치가 역사는 짧지만, 오랜 역사를 지닌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도 배우고 연구할 가치가 있다면서 이번 대만 선거가 남긴 교훈을 두 가지로 정리했다.

하나는 선거권 연령을 만 20세 이상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20세 미만은 유권자들은 이성보다 감정에 근거해 판단하기 쉽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대만의 종이 투표 시스템이다. 대만은 투표일에 신분증을 가지고 투표소에 가야만 투표할 수 있다. 미국은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고 우편 투표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선거는 편리하고 빠르지만 유권자 사기 등 허점이 많다는 게 차이선쿤의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