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공산당 내부 反시진핑 세력 결집…원로 2세 그룹 주도”

강우찬
2024년 01월 9일 오전 10:39 업데이트: 2024년 01월 9일 오전 10:39

해외 거주 中 평론가, 대만 일간지에 기사형 광고 게재
“류사오치 전 중국 주석 아들이 반대 세력 규합” 주장

중국 공산당(중공) 혁명원로 2세 그룹과 군 지도층 인사들을 중심으로 당내 반(反)시진핑 세력들이 힘을 모으고 있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끈다.

사실 확인을 거치진 않았지만, 외부에서 가늠하기 어려운 중공 당내 권력암투 정황을 가늠케 하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지난 3일 대만 자유시보 1면에는 ‘중공(중국 공산당)의 엄중한 정치위기가 대만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라는 글이 실렸다.

오는 13일 총통 선거를 코앞에 둔 민감한 시기에 대만 주요 일간지 1면 하단을 차지한 이 글은 기사가 아니라 ‘정치 광고’였다. 작성자는 호주에 거주하는 중국 출신 자유주의 학자 위안훙빙(袁紅冰)이다.

이 글은 중공의 현재 상황에 대한 파격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

중공 혁명원로 2세 그룹인 태자당 소속 인사들이 ‘시진핑을 권좌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정치적 합의에 도달했으며 합의문에 연대서명까지 했다는 것이다.

지난 3일 대만 자유시보 1면 하단에 실린 광고. | @wangdan1989/트위터

태자당은 공청단, 상하이방(장쩌민파)과 함께 공산당 3대 파벌 중 하나다. 혁명 원로 자제들로 구성돼 있어 ‘훙얼다이(紅二代)’로도 불린다.

이 글에서는 또한 합의문 작성을 주도한 인물이 인민해방군 상장(대장급)인 류위안(劉源)이라고 실명까지 밝혔다. 다만, 합의문 작성 경위에 관해서는 “내부 소식통에게 들었다”고만 전함으로써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진 못했다.

그럼에도 일개 평론가의 주장에 눈길이 가는 것은 시진핑과 훙얼다이 간 갈등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집권 후 반부패를 통해 주로 기득권층의 돈줄을 끊는 방식으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입지를 굳혀 왔다. 그 기득권은 쩡칭훙의 석유방, 리펑의 전력방, 장쩌민의 전신방(통신업계), 덩샤오핑의 부동산·금융방 등이었다. 이는 그대로 태자당의 이익사슬이기도 했다.

태자당은 시진핑이 공산당의 통치를 유지·안정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그를 지원했으나, 점차 그의 칼날이 자신들을 향하는 것을 보고 반발하기 시작했다. 현재 중공의 당내 갈등은 시진핑과 상하이방(장쩌민파), 시진핑과 태자당 간 대립으로 복잡해지고 있다.

반시진핑 세력 결집하는 류위안, 어떤 인물인가

류위안은 인민해방군의 병참부에 해당하는 총후근부 정치위원을 지내고 지난 2016년 퇴역했다. 아직 군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류위안이 전 국가주석인 류사오치(劉少奇)의 아들이라는 사실이다.

류사오치는 마오쩌둥에 이어 1959년 중화인민공화국(공산주의 중국)의 2대 국가주석에 오른 인물이다. 당시 마오쩌둥은 ’15년 안에 (산업 생산력에서) 영국을 따라잡는다’며 대약진 운동(58년)을 일으켰고 그 실패로 발생한 엄청난 재앙의 책임을 지고 결국 물러나야 했다.

온건파였던 류사오치는 국가주석에 오른 후 덩샤오핑과 함께 실용주의에 기반한 개혁을 추진하며 중국 경제를 되살렸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1966년 문화대혁명을 일으켰고 류사오치는 자본주의 노선을 부활시키려는 ‘주자파(走資派)’로 몰려 홍위병의 탄압을 받았고 이후 사망했다. 당시 ‘주자파’는 한국의 친일파와 다름 없는 낙인이었다. 누군가 주자파란 낙인이 찍히면 인민재판을 받아야 했다.

중국 공산당은 마오쩌둥 사망 후 문화대혁명을 “극좌적 오류”라고 평가하며 반성했지만, 현재 시진핑이 마오쩌둥 뒤를 이어 1인 독재를 강화하고 사회 전반에 걸쳐 ‘홍색 문화’ 부활을 추진하는 상황은 반성이 말로만 그쳤음을 입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마오쩌둥에게 제동을 걸었던 류사오치의 아들인 류위안이 시진핑을 막고 나서며 반시진핑 연대의 중심에 섰다는 주장은 중국인들로서는 매우 흥미를 끄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훙얼다이들 연대서명했다는 ‘합의문’ 내용은?

위안훙빙은 중국 외부에서 공산당을 겨냥하는 해외 평론가 중 공산당 수뇌부인 베이징 중난하이 내부 소식에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자유시보 1면 광고에서 류위안과 태자당 인사들이 합의했다는 합의문 내용을 크게 세 가지로 정했다.

하나는 시진핑이 집권 후 10년간 덩샤오핑이 주도한 개혁개방노선을 완전히 폐기했으며 정치·사상·경제 분야에서 문화대혁명 시절로 후퇴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치·경제·사회·외교 전반에 걸쳐 발생한 위기가 국가의 존립 자체를 흔들고 있으며 특히, 시진핑이 국가를 전시체제로 몰아넣고 대만해협에서의 전쟁을 준비하면서 중국인들이 전례 없는 전쟁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른 하나는 개인독재에 따른 폐해다. 시진핑이 독단적 판단으로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힘을 숨기고 때를 기다린다)’를 폐기하고 오만한 태도로 늑대전사 외교를 펼침으로써 선진국으로부터 거부감을 일으켰고 중국을 국제사회에서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질타했다.

마지막으로 합의문은 공산당원들에게 행동에 나설 것을 호소하며 “획기적인 민주정치 개혁”을 주장했다. 시진핑의 권한을 박탈해 더는 중국의 운명을 좌지우지 못 하도록 하고 중국 공산당을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전환하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위안훙빙의 주장에 따르면, 이 합의문에 서명한 인물은 주도자인 류위안을 포함해 덩샤오핑의 장남 덩푸팡(鄧朴方), 후야오방의 장남 후더핑(胡德平), 전 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 천윈(陳雲)의 장남 천위안(陳元), 전 정협 부주석 마원루이(馬文瑞)의 딸 마샤오리(馬曉力), 전 중앙군사위 연합참모부장 뤄루이칭(羅瑞卿)의 딸 뤄뎬뎬(羅點點) 등이다.

이 밖에도 예젠잉(葉劍英), 허룽(賀龍), 쉬샹첸(徐向前), 보이보(薄一波)의 자녀들이 서명했으며, 지난해 지도부가 대거 숙청당한 로켓군 사령관과 리샹푸 국방부장 등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보이보의 자녀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간암 판정으로 가석방된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가 아닌 다른 자녀로 전해졌다.

위안훙빙은 시진핑이 이들을 직접 탄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아버지가 정치적 탄압을 받았던 류위안을 포함해, 이들에게 또 한 번 탄압이 가해진다면 당의 불만도 폭발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이 기사는 닝하이중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