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공시 의무화, 기업 부담 증가…유연하게 대응해야”

한국금융연구원 보고서

이윤정
2024년 03월 31일 오후 5:21 업데이트: 2024년 03월 31일 오후 6:14

ESG가 자유주의 시장경제 위협” 비판 목소리도
“국제적 추이 보면서 의무화 시기·대상 유연성 발휘해야”

최근 국제사회에서 ESG 공시기준 마련 및 의무화가 앞다퉈 추진되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그에 발맞추되 의무화 시기와 대상에 대해서는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전문가 제언이 나왔다.

한국금융연구원 이병윤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30일 발표한 ‘ESG 공시의 의의와 쟁점 및 전략적 대응 방안’ 보고서에서 “주요국이 ESG 공시를 의무화할 경우 우리도 공시기준은 조속히 마련하되, 의무화 시기와 대상 등은 국제적인 규제환경 변화 추이를 봐가며 유연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는 지난해 6월 지속가능성 공시를 위한 첫 번째 기준서를 발표했으며, 이를 2025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이처럼 최근 국제기구와 주요국을 중심으로 ESG(환경·사회적책임·기업지배구조) 공시 기준 마련·의무화가 속속 추진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국은 대체로 ISSB의 권고안을 기반으로 ESG 공시기준을 만들고 이를 의무화해 가고 있다.

유럽은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CSRD)’을 마련해 올해부터 기업 규모 등에 따라 순차적으로 의무화할 예정이다.

미국의 경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올해 3월 ‘미국 상장기업 기후 관련 정보 공시 의무화 규정’을 발표했고, 이를 2026년부터 순차적으로 의무화한다는 방침이다. 기후공시의 내용은 기후 관련 위험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 및 대응, 탈탄소 전환비용, 온실가스 배출량 등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21년 기업의 기후리스크 등 환경정보 관련 공시를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방안을 발표했으나, 지난해 10월 충분한 준비기간 확보를 위한 기업의 요청과 주요국의 ESG 공시 일정 등을 고려해 이를 2026년 이후로 연기한 바 있다.

ESG는 환경(Environmental), 사회적 책임(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등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를 기업 운영 전반에 반영하는 경영 방식을 의미한다. 특히 환경 요소에서 ‘탄소중립’을 표방하며 ‘기후변화의 시대에 지속 가능한 투자를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국제적 추세로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기후 위기 공포에 기반한 ESG가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위협한다는 이유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증가하고 있으며 한국 사회에서도 ESG에 저항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앞서 지난해 9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국제회계기준(IFRS) 공시기준에서 탄소 배출량 측정 범위가 너무 넓고 적용하기 애매한 부분이 많다는 이유를 들어 오는 2025년으로 예정된 기업의 ESG 공시 의무화 시기를 더 늦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ESG 공시가 의무화되면 기업들은 기존에 하던 재무지표 공시에 더해 비재무지표인 ESG 관련 활동에 대해서도 공시해야 하는 부담을 진다”며 “거기다 탄소 배출을 줄이고 지배구조도 개선하는 등 ESG 관련 지표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하므로 기업 활동에 제약을 많이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업들은 ESG 공시 의무화 시 추가 공시비용 부담뿐 아니라 ESG 관련 기업 활동 개선을 위한 비용 증가를 우려하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기업이 직접 통제하기 어려운 스코프 3 배출량 공시에 대한 반발이 크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만 “주요국이 ESG 공시를 의무화할 경우 이들과 거래 관계에 있는 국내 기업들도 공시의무를 지켜야 해 우리 기업들도 이에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이 선임연구위원은 전제했다.

우리나라도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데다 내수보다는 수출 위주의 국가로서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탄소중립과 기업의 지속 가능성 확보를 위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적극 동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유럽과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이 이러한 방향으로 규제 체계를 확립해 나가고 있어 국제화 시대에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도 이러한 규제에 미리 대비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가 우리 기업에는 실질적인 부담으로 작용하는 데다 특히 제조업 비중이 높고 중소기업이 많은 우리나라 산업 구조에서는 부담이 더 큰 것이 사실”이라는 이 선임연구위원은 “기업 부담 증가 등을 고려해 주요국들에서도 공시 내용, 대상 및 의무화 시기 등에서 유연성을 발휘하고 있으므로 우리도 공시기준은 조속히 마련하되 의무화 시기와 대상 등은 국제적인 규제환경 변화 추이를 봐가며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