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기간 反중공 시위대 폭행한 친중파, 배후 밝혀질까

강우찬
2023년 11월 24일 오후 3:32 업데이트: 2023년 11월 24일 오후 3:32

친중파, 美 경찰 앞에서도 공산당 반대 시위대 공격
현장서 ‘검은 옷’ 남성 포착…통일전선 조직원 추정

시진핑 미국 방문 기간에 친중파와 반중국공산당(중공) 시위대 사이에 벌어진 난투극의 배후로 미국 내 중공의 통일전선 조직이 지목됐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이들은 친중파가 먼저 주먹을 휘둘렀다며 “검은 양복 차림의 남성이 사건 전 모종의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했다.

지난 1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회의장에서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시진핑을 환영하는 친중파와 반대하는 시위대 사이에 크게 세 차례의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첫 번째 충돌은 낮 12시 15분께, 친중파가 반중공 시위대의 현수막을 강제로 뺏으려 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 현수막에는 1989년 톈안먼 광장에서 일어난 학살의 원흉은 중공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현지 매체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익명의 목격자를 인용해 “친중파가 시위대를 먼저 공격했다”며 이 목격자가 현수막을 지키려는 시위대를 돕다가 유리병에 머리를 맞아 피부가 5cm 정도의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친중파는 시진핑의 얼굴과 함께 ‘중공 바이러스’라고 적힌 팻말도 철거하려 했다고 매체는 전했다.

두 번째 충돌은 오후 2시를 조금 앞두고 발생했다. 1차 충돌 이후 경찰에 의해 제지를 받은 친중파가 또 한 번 반중공 시위대에 접근해 공격을 가한 것이다. 이번에도 친중파가 먼저 공격하고 반중공 시위대가 방어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다.

2023년 11월 16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인근에서 시진핑을 풍자하는 인형옷을 입은 남성을 친중파 집회 참석자(오른쪽 검은 후드티 차림)가 공격하려 하자, 경찰과 사설 경호원이 이를 제지하고 있다. | JASON HENRY/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목격자에 따르면, 반중공 시위 참가자 한 명은 10명 넘는 친중파에 둘러싸여 마구 얻어맞았다. 폭도로 변한 친중파는 중공의 오성홍기 깃대를 창처럼 사용하며 중공 시위대를 공격했고, 반중공 시위대를 바닥에 짓눌러 머리를 밟고 목을 조르기도 했다.

세 번째 싸움은 약 10분 후쯤 벌어졌고 회의장 주변 보안요원들이 개입해 인간 바리케이드로 양측을 분리한 후에야 진정됐다.

반중공 시위대는 “시진핑은 독재자”라고 외쳤고, 친중파는 “중국 국기를 (반중공 시위대에) 빼앗겼다”며 욕설을 퍼부으며 대립했다. 앞선 두 차례에 비해 물리적 충돌의 강도는 약해졌으나 험악한 분위기는 계속됐다.

목격자들은 “시위대도 그냥 맞고만 있진 않았지만, 세 차례 싸움 모두 친중파 측이 먼저 주먹을 날렸다”고 말했다. 반중공 시위 참가자들도 “그쪽(친중파)이 먼저 공격했다”고 말했다. 반면, 친중파 시위대는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거부했다.

다음 날인 17일에도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반중공 시위대는 샌프란시스코를 통해 귀국하는 중공 총서기 시진핑을 향해 미국을 상징하는 물품을 들고 마지막 ‘배웅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친중파로 보이는 청년들이 공격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민주화 단체인 중국 민주당 전국위원회 집행위원장이자 뉴욕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천촹촹(陳闖創)은 “최소 40명의 시위 참가자가 폭행당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40명 중 먼저 공항을 빠져나간 3명은 십여 명의 젊은 괴한들에게 미행당하다가 공격을 받았고, 그중 한 명은 이마가 찢어지고 눈두덩이가 멍드는 등 부상을 입고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APEC 정상회의가 열린 가운데, 시진핑을 환영하기 위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단체로 제작한 듯한 깃발을 들고 시진핑을 환영했다. | X@cunzhuzheng
1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시진핑 ‘배웅 시위’ 후 공항을 빠져나가던 반중국공산당 시위대 중 한 명이 친중파의 공격을 받아 부상을 입고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 X@cunzhuzheng

폭행을 지휘한 ‘배후 세력의 정체’

폭행 사건 이후 소셜미디어에는 현장 사진과 영상 속 인물들을 파악해 사건의 배후를 추적하는 게시물도 잇따르고 있다.

그중 하나로 지목된 인물이 미국 아시아계 상인 단체 연합회 주석이자 미국 화교 총상인회 회장 천싼좡(善庄)이다.

중국 푸젠 성량 치심 출신인 천 회장은 1990년 미국에 이민한 후 미국 내 푸저우 량치섬 향우회를 조직했고 1999년 미국 화교 총상인회를 설립해 지금까지 회장을 맡고 있다.

대만 매체 징신원(鏡新聞)에 따르면, 천 회장은 지난 3월 말 경유 형식으로 미국을 방문한 차이잉원 대만 총통 반대 시위에도 참여하는 등 미국 내 친중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평론가 후리런(胡力任)은 지난 18일 에포크타임스에 “지인을 통해 뉴욕 지역에서 화교 커뮤니티 지도자로 활동하는 천싼좡(陳善莊)이라는 인물이 ‘시진핑 환영 알바’를 모집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고 말했다.

이번 친중파 난동의 또 다른 배후로는 미국화인사단연합회 명예주석인 루창(鹿强)이라는 인물도 거론된다.

루 주석은 중공의 통일전선 공작 조직 중 하나인 중화전국귀국화교연합회(中國僑聯) 상하이 지회 회원이자, 현재 로스앤젤레스에서 관광버스 회사를 운영 중인 사업가다.

성도일보, 세계일보 등 중국 매체에 따르면 루 주석은 이번 시진핑의 방미를 환영하기 위해 20대의 대형 버스를 동원해 800여 명의 화교를 샌프란시스코에 실어 날랐고 이들을 위해 5개 호텔에 객실 400개를 마련하며 중공에 대한 충성심을 과시했다.

매체들은 또한 루 주석이 “실탄 총기를 소지한 제복 차림 경호원 10명을 고용했다”며 “현장의 질서 유지를 위한 목적”이라고 전했다.

현장을 촬영한 사진에는 루창이 동원한 사설 경호원으로 보이는 건장한 체구의 외국인 남성들이 검은 양복을 입고 왼쪽 옷깃에는 배지를, 오른쪽 귀에는 무전 수신기를 착용한 모습이 포착됐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과 같은 차림을 한 중국계 남성이 천싼좡으로 추측된다는 점이다. 사진을 본 미국 내 중국계 네티즌은 “천싼좡이 맞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진 속 인물이 천산좡이 맞는다면, 그는 루창의 지시하에 ‘현장 지휘관’으로 활동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APEC 정상회의장 인근에서 검은 양복차림에 같은 배지를 달고 있는 사설 경호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 중 중국계로 보이는 남성은 화교 지도자로 추측됐다. 2023.11.16 | X@supermake2023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APEC 정상회의가 열린 가운데 한 중국계 남성이 반중공 시위대를 지켜보고 있다. 이 남성은 다른 경호원들에 비해 반중공 시위대의 활동에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2023.11.16 | X@supermake2023
한 중국계 네티즌은 이 남성이 미국 뉴욕에서 중국계 커뮤니티 지도자로 활동하는 천싼좡(미국명 존 챈)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 X@mtang2020

실제로 또 다른 사진에는 천싼장이 긴장된 표정으로 반중공 시위대 쪽으로 이동한 후 이들을 지켜보는 모습이 담겼다. 해당 사진은 친중파의 공격이 시작되기 전 촬영됐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반중공 시위대 공격을 모의하는 것 아니냐”는 네티즌 반응도 나왔다.

중국 민주당 전국위원회의 주석인 왕쥔타오(王軍濤)는 “루창과 천싼좡 모두 중공의 지시를 받아 활동하는 화교 지도자들”이라며 “APEC 기간 발생한 폭행 사건은 모두 중공이 조직했다. 중공 영사관 직원들이 직접 지령을 내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각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교민단체, 기업가협회, 우호단체는 봉사와 교류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공산당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통일전선 조직”이라며 경각심을 당부했다.

* 이 기사는 SOH 샌프란시스코 취재팀의 협조를 받아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