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 앞으로 다가 온 대만 대선 ‘시계제로’…여당은 답보 야당은 추격

집권 8년 차 민진당 정부에 대한 피로감도 반영

최창근
2023년 12월 4일 오후 6:50 업데이트: 2023년 12월 16일 오후 9:55

40일 앞으로 다가온 대만 총통‧입법원 선거가 ‘시계(視界) 제로’ 혹은 ‘오리무중(五里霧中)’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집권 여당 민진당 총통 후보 라이칭더(賴淸德) 부총통은 지지율 1위를 고수하고 있지만 지지율 정체 상태이고, 제1야당 허우유이(侯友宜)는 추격하고 있다. 지지율 2위였던 제2야당 커원저(柯文哲) 민중당 후보는 하락세이다.

대만 인터넷 신문 메이리다오전자보(美麗島電子報)가 12월 1일 자로 발표한 최신 여론조사 결과 라이칭더는 37.8%, 허우유이는 29.5%, 커원저는 17.7%를 기록했다. 11월 29일부터 12월 1일까지 대만 성인 1201인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는 신뢰도 95%에 표본오차 ±2.8%이다.

대만 일간지 ‘연합보(聯合報)’가 인용 보도한 대만 갤럽 여론 조사 결과에서는 민진당 라이칭더(총통)·샤오메이친(부총통) 후보와 국민당 허우유이(총통)·자오샤오캉(부총통) 후보 지지율이 각각 31.01%와 30.94%를 기록했다. 민진당과 국민당 후보 진영 간 지지율 격차는 0.07%포인트로 오차 범위 내이다.

앞서 11월 27일 발표된 친중 성향인 ‘중국시보(中國時報)’ 자체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민진당 후보 지지율은 28.3%, 국민당 후보 지지율은 28.2%로 0.1%포인트 격차를 보였다.

여론 조사기관마다, 조사 시기마다 편차는 있지만 국민‧민중 등 야당 지지율 합이 민진당을 앞서고 있고 커원저 지지율이 허우유이로 이동하는 양상은 지속되고 있다. 이를 두고 대만 선거 전문가들은 유권자의 사표(死票) 방지 심리 작용, 전통 국민당 지지율 결집 등을 원인으로 분석했다. 현재 분위기가 지속될 경우 야권 후보 단일화가 이뤄지면 허우유이 국민당 후보의 압승이, 후보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표 쏠림을 통해 허우유이 후보의 승리가 예상된다.

라이칭더 민진당 후보가 지지율 답보 상태를 지속하는 원인으로는 현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의 집권 8년에 대한 피로감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2016년 대만 사상 첫 여성 총통 기록을 쓰며 집권한 차이잉원 총통은 취임 후 지속적인 지지율 하락을 기록했다. 2020년 총통 선거를 앞두고도 ‘재선 실패’ 전망이 우세했지만,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여파 등 중국발 ‘반사이익’을 얻어 재선에 성공했다. 다만, 재선 후 지지율은 40% 전후에서 멈춰 있다.

이 속에서 ‘중간선거’라 할 수 있는 2022년 11월 지방선거에서 집권 민진당은 총 22개 광역지방자치단체장(직할시장‧현장‧시장) 중 5석을 얻는 데 그치는 참패를 당했다. 반면 제1야당 국민당은 수도 타이베이(臺北)시, 인구 기준 최대 지방자치단체 신베이(新北)시, 타오위안(桃園)시, 타이중(臺中)시 등 총 15곳에서 승리하였고, 나머지 3곳은 제2야당 민중당(1석)과 무소속(2석)에 돌아갔다. 선거 결과를 두고 자오젠민(趙建民) 대만 중국문화대 국가발전·중국대륙연구소장은 “유권자들이 차이잉원 정부에 정말로 실망했다. 2020년 대만 총통 선거에서는 차이잉원이 2019년 홍콩의 송환법 반대 시위를 내세워 중국의 위협에 대한 위기감을 조성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번에는 그런 반중 전략이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선거 참패 책임을 지고 차이잉원 총통은 민진당 주석직을 사임했고, 보궐선거에서 라이칭더 부총통이 주석에 선출됐다.

선거 패배 후 국정 쇄신 차원에서 차이잉원 정부는 개각을 단행했지만 이도 유권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많았다. 2023년 1월 26일 자 개각에서 신임 행정원장(국무총리 해당)에는 천젠런(陳建仁)을 임명했다. 이 밖에 행정원 부원장에 정원찬(鄭文燦) 전 타오위안 시장, 내정부장에 린유창(林右昌) 전 지룽(基隆) 시장, 총통부 비서장(대통령 비서실장 해당)에 린자룽(林佳龍) 전 교통부장 등을 임명했다. 해당 인사를 두고 ‘돌려 막기 인사’ ‘보은 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의사 출신의 천젠런은 2016년 5월 출범한 차이잉원 1기 정부 부총통 출신이다. 부총통이 실권을 없다지만 의전서열이 떨어지는 행정원장으로 ‘강등’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이 밖에 정원찬, 린유창은 지방자치단체장 3연임 금지 조항에 걸려 지방선거 출마가 불가능했던 인사였고 린자룽은 2022년 11월 지방선거에서 신베이 시장에 출마했다 낙선했다. 앞서 린자룽은 천수이볜 정부(2000~2008년) 마지막 총통부 비서장을 지낸 바 있다.

설상가상으로 대만 독립과 더불어 민주‧진보‧인권을 가치로 내세웠던 민진당 관련 인사의 ‘미투’ 파문도 있었다. 올 4월 방영돼 큰 인기를 모은 넷플릭스 드라마 ‘인선지인(人選之人): 웨이브 메이커스’에 등장한 미투 사례가 현실에서도 이어졌다. 옌즈파(顔志發) 총통부 자정(資政‧최고 국정 고문)을 비롯한 민진당 소속 정치인의 성추문이 터져 나왔고 차이잉원 총통과 라이칭더 부총통은 공개 사과를 해야 했다. 이 속에서 민진당은 이른바 ‘내로남불’한다는 비판에 직면해야 했고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이어 9월에는 계란 파동이 터졌다. 대만에서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해 계란 공급에 문제가 생겼다. 대만 정부는 브라질로부터 계란을 대거 수입해 공급했지만, 계란의 유통기한이 잘못 표기된 사실이 적발됐다. 이로 인해 유통 중인 계란이 상한 계란인지 멀쩡한 계란인지 여부를 알 수가 없게 됐으며, 시민들 사이에 계란 취식 기피 현상이 빚어졌다. 대만의 생필품 중 하나인 계란의 안전성 파문을 두고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어났고 2023년 8월 취임한 초대 농업부 부장 천지중(陳吉仲)이 취임 한 달여 만에 사임했다.

차이잉원 정부에 대한 불만족 민심은 라이칭더 총통 후보에게 투영되고 있으며, 단일화에는 실패했지만 범야권의 국민당‧민진당 후보 지지율 합이 높은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