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수교 140주년, ‘갓 쓰고 미국(美國)에 공사(公使) 갓든 이약이’ 특별전

이연재
2022년 10월 17일 오후 4:32 업데이트: 2022년 10월 20일 오후 4:31

“그중에도 우스운 것은 미국인 중에 시골사람들은 감히 공사 일행인 우리를 가리켜 동양 어떤 나라의 여자라고 하는 것이었다. (중략) 우리 일행은 실내에서 갓을 쓰고 있고 또 입은 의복이 대개 좋은 비단이요, ‘동다리’의 관복이 울긋불긋하여 여자의 의복같이 보이고 또 일행 중에 수염 많은 사람이 별로 없으며 혹 있다 하여도 미국 여자의 수염만도 못한 까닭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를 대할 때도 예의범절을 꼭 자국의 부인을 대하는 것과 같이 하는 일이 많았다.” (별건곤(別乾坤) 제2호 1926년 12월 1일)

1882년 5월 22일 조선은 서양 국가 중 처음으로 미국과 외교 협정을 맺었다. 미국은 조미조약 조항에 근거해 1883년 특명전권공사 푸트(Lucius F. Foote, 1826~1913)를 조선에 파견했다. 이에 따라 조선의 수도 한성(서울) 정동에 미국공사관이 문을 열었다.

하지만 조선은 국내 사정과 청의 간섭으로 주미전권공사 파견을 몇 년간 미뤄야 했다. 고종은 박정양(1841~1905)에게 미국과 친목을 도모하면서 각국 공사와도 돈독한 관계를 맺고 미국의 정세와 사정을 살펴 많은 것을 배워 오기를 당부했다.

초대 주미공사 관원 일행은 조선이 자주국임을 알리고 부강한 국가가 되기 위한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미국으로 떠나는 긴 여정에 올랐다.

1887년 11월 배를 타고 조선을 떠난 일행은 일본과 홍콩, 하와이를 거쳐 1888년 1월 미국 땅을 밟았다. 이후 대륙 횡단 철도를 타고 한참을 달린 뒤에야 이들은 수도 워싱턴 D.C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육지와 바닷길을 모두 합쳐 약 1만 5천400㎞, 주미조선공사 관원들이 거쳐야 했던 59일간의 여정이다.

그리고 1888년, 워싱턴에 주미조선공사관이 세워졌다. 이듬해 이전한 공사관은 1905년까지 약 16년간 외교 활동의 중심 무대가 됐다.

주미공사관원 일행은 1887년 11월 조선을 떠나 배를 타고 일본과 홍콩, 하와이를 거쳐 1888년 1월 미국에 상륙했다. 박정양이 쓴 일기(미행일기)에 자세한 경로와 함께 수로와 육로를 합쳐 39,215리(약 15,400Km)를 이동했다는 기록이 있다. | 에포크타임스

주미조선공사관에서 일한 조선과 대한제국 외교관들이 자주 외교를 위해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전시회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렸다.

한미 수교 140주년을 맞아 열린 이번 전시회에는 올해 5월 국가등록문화재가 된 ‘주미조선공사관 관련 이상재 기록’이 주로 전시됐다.

독립운동가 월남(月南) 이상재(1850~1927)가 1880년대 미국 조선공사관에서 서기관으로 근무하던 무렵 작성한 이 자료는 ‘미국공사왕복수록'(美國公使往復隨錄)과 ‘미국서간'(美國書簡) 등으로 구성돼 있다.

‘미국공사왕복수록’은 공관원 업무편람이다. 미국 정부와 주고받은 문서의 한문 번역본과 외교 활동 참고 사항을 담았다. ‘미국서간’은 이상재가 1887년 8월부터 1889년 1월까지 가족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그 외 초대 주미전권공사를 지낸 박정양과 공사 관원들의 외교 활동을 엿볼 수 있는 유물 35건이 공개됐다.

전시품 중에서는 워싱턴에서 찍은 ‘초대 주미공사관원 일행’ 사진과 수행원이자 서화가였던 강진희가 그린 ‘화차분별도'(火車分別圖) 등이 볼 만하다.

기차가 달리는 풍경을 수묵으로 그린 ‘화차분별도’는 한국인 화가가 처음으로 미국 풍경을 그린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초대 주미공사관 수행원이자 서화가였던 강진희가 그린 화차분별도(火車分別圖). | 간송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아울러 낯선 땅에 도착한 공사 관원들의 좌충우돌 이야기도 엿볼 수 있다.

전통 관복을 입거나 상투에 갓을 쓴 이들의 모습에 미국인들은 서로 사진을 찍겠다고 나섰고, 동양 어떤 나라의 여자가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또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는 모두가 공포에 질려 ‘지진이 일어났다’고 외치기도 했다.

남편과 함께 이날 전시회를 찾은 장미경 씨는 “미국인들이 갓을 쓰고 도포를 두른 박정양 일행을 보고 여자로 오해했던 일화가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초대 미국공사관에서부터 지금의 대사관이 있기까지 전체 흐름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관람객 이호범 씨는 “평소 접할 수 없었던 것들을 보고 경험할 수 있어서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한제국기 우편과 전신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지도인 ‘우전선로도본'(郵電線路圖本), 근대적인 교통수단인 전차의 운행 모습을 담은 사진, 당시 공사관의 실내 분위기를 연출한 부분 역시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집무실처럼 꾸민 전시 공간에는 책상 위에 시계와 붓 등 필기구를 놓고 ‘미국공사왕복수록’과 ‘미국서간’을 뒀다. | 에포크타임스

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가 고립에서 벗어나 근대로 나아가려 했던 시기에 박정양 공사와 이상재 서기관 등 일행의 외교적 노력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12월 13일까지 열릴 예정이며, 문화재청 유튜브(https://www.youtube.com/chluvu)와 국립고궁박물관 누리집(https://www.gogung.go.kr/)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