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경원 풀었는데 물가는 오히려 떨어진 중국 경제 미스터리

강우찬
2024년 02월 22일 오후 5:09 업데이트: 2024년 02월 22일 오후 5:09

‘통화량 팽창=인플레이션’ 경제학 공식 안 통해
가계 소비능력은 하락…그 많은 돈 어디로 갔나

중국의 지난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대비 0.8% 감소하는 등 경제 디플레이션 위험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시진핑 정부가 2022년과 2023년에 모두 약 54조 위안(9972조원)의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는데도 경제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중국 경제가 현 정권이 동원할 수 있는 어떠한 대책에도 약발이 먹히지 않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지난 8일 중국 국가통계국은 1월 CPI는 전년 대비 0.8% 감소(마이너스 0.8%)했다고 밝혔다. 이는 2009년 9월 이후 14년 만에 기록한 최대 하락 폭으로 로이터통신 시장 전망치 마이너스 0.5%를 밑도는 수치다.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 공산당이 정권에 유리하도록 정부를 통제해 통계 데이터를 조작하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일”이라며 “실제 상황은 더욱 심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품목별로 보면 CPI 하락을 주도한 것은 식품 가격이다. 1월 식품 가격은 전년 대비 5.9% 하락했다. 그중 돼지고기, 생야채, 과일 가격이 각각 17.3%, 12.7%, 9.1% 떨어지며 주요 하락 요인이 됐다.

돼지고기는 중국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식재료다. 돼지고기 가격을 잡지 못하면 정권이 흔들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돼지고기 가격이 치솟는 것도 문제이지만, 떨어지는 것은 다른 의미로 큰 사건이다. 생활경제 위축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중국 전문가 리닝은 “중국 CPI의 전년 대비 감소세는 작년 초부터 시작됐다”며 “1월 감소 폭의 급격한 증대는 디플레이션 우려를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상하이의 정육점 | EPA/연합뉴스

리닝은 “더욱 심각한 지표는 통화량”이라며 “중국 공산당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약 54조 위안의 위안화를 신규 발행했는데도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 신호가 잡히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중국의 광의 통화량(M2)은 12월 말 기준, 2023년 292조2700억 위안, 2022년 266조4300억 위안, 238조2900억 위안이었다.

2022년에 28조1400억 위안의 돈을 풀었고, 이듬해에도 25조8400억 위안을 새로 발행했다. 모두 53조9800억 위안에 이른다. 한국돈 1경147조 원의 엄청난 자금이다.

28조 위안은 같은 기간 미국, 일본, 유럽연합(EU)의 통화 공급량에 맞먹는 규모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의 약 70%에 그친다. 그런 상황에서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는데도 이 기간 중국은 주가나 부동산 가격이 거의 오르지 않았고 물가마저도 오르지 않았다.

미국에서 중국 정치·경제 분석가로 활동하는 루위안싱( 陸遠行)은 “중국 공산당의 공식 발표는 중국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져 있다는 것을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팩트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루위안싱은 16일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흔히 중국 정부가 부인하는 것은 대개 진실”이라며 중국 경제가 하락하면서 디플레이션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반적인 서구의 경제학적 개념으로는 더는 중국 경제를 해석할 수 없게 됐다”며 “현재의 중국 경제는 공산주의 정당이 장악한 독재 정부 관리하에서의 독특한 경제 형태”라고 진단했다.

그에 따르면, 일반적인 경제학적 관점에서 통화량 증가는 인플레이션, 통화량 감소는 디플레이션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통화량 증가 이후 오히려 CPI 감소 등 디플레이션에 가까운 현상이 관측되고 있다.

이를 두고 루위안싱은 “공급된 유동성이 실물경제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고 금융시스템 내에서만 돌고 있다”며 이를 “금융의 공회전”이라고 평가했다.

그 결과, 유동성 공급이 경제 발전을 촉진하는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치상으로는 통화량이 늘어나고 있으나, 실제 시장에 기능을 발휘하는 통화량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는 게 루위안싱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하나는 중국 경제가 시장경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이른바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내세웠지만 핵심은 시장경제가 아니라 수식어인 사회주의였고, 관료들의 통제로 인해 시장경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다른 하나는 부패한 관료 집단이다. 루위안싱은 “대부분의 당 간부, 정부 관료들은 국가나 인민(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나랏돈을 사용하려 한다. 국가 경제를 살리겠다며 공급한 유동성의 일부는 갖가지 수법을 통해 관료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늘어난 통화량, 어디로 샜나?

지난해 중국의 전체 대출은 22조7500억 위안으로 전년 대비 6.8% 증가했다.

이 가운데 주택융자는 4조3300억 위안(약 90조엔)으로 연간 신규대출의 약 19%를 차지했다. 기업 및 공공기관 대출은 17조9100억 위안으로 연간 신규대출의 약 78%였다.

같은 기간 위안화 예금은 25조7400억 위안 증가했으며 이 가운데 가계예금은 16조6700억 위안으로 약 64%를 차지했다.

루위안싱은 중국 가계가 소득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으며, 적극적으로 부채를 줄이고 예금 비중을 늘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중국 공산당이 신규 발행한 통화가 대출 형태로 시장에 공급됐으나 이 자금의 상당 부분이 은행 예금으로 전환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지난해 중국 전체 대출의 80%를 기업과 공공기관이 받아 갔다”며 “이는 주로 중앙 국유기업이나 지방 국유기업 대출인데, 아마도 마땅히 수익을 낼 투자처가 없어 일부를 단순히 예금으로 보관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부패 관리들의 횡령이나 착복, 투자처를 찾지 못한 기업들의 소극적 자금 운용, 가계의 기대수익 감소 등으로 유동성 공급에도 경기 부양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루위안싱은 “중국공산당과 지방정부들은 부동산을 포함한 인프라 건설에 과도한 자금을 투입해 왔고, 인프라 분야는 심각한 과잉과 버블화가 진행됐다”며 “남아도는 아파트와 상가들은 아무런 쓸모없는 철근과 콘크리트의 폐허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투자는 이익을 발생시킬 수 있어야 투자다. 이익을 발생시키지 못하는 투자는 경제를 자극할 수 없고, 투자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일침을 가했다.

2023년 7월 18일 베이징의 한 쇼핑몰에서 한 여성이 매장을 지나가고 있다. | GREG BAKER/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중국 경제 사령탑의 무능도 심각한 문제라고 루위안싱은 지적했다.

그는 “중국 경제는 이미 지난 2년간 심각한 디플레이션을 겪었는데도, 중국 공산당은 여전히 적극적으로 통화량을 늘리고 있다”며 “유동성을 공급하기만 하면 경제성장을 자극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나라 안에 돈은 남아돌지만 실제로는 소비능력이 부족하다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루위안싱은 “막대한 돈이 풀렸지만, 일반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쓸 돈이 없다’는 하소연이 넘쳐난다. 이는 돈이 가계까지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이 없으니 소비하기를 꺼리고, 경제가 돌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며 “공산당 관료들의 탐욕이 중국 경제가 회복되지 못하는 근본적 원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분배가 제대로 되지 않는 점 외에 소비가 부족한 또 다른 주요 원인은 인구 감소다.

리닝은 “중국의 소비능력이 부족한, 감춰진 원인은 인구의 대폭적인 감소”라며 “인구가 줄어들면 경제 규모가 줄어든다. 중국은 그동안 대규모의 경제활동 인구가 무기였고 전 세계 자금을 끌어들이는 요인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 방역당국은 공산당 정권의 안위를 위해 신종 코로나 유행 기간 사망자 통계를 제대로 발표하지 않았다”며 “이제 와서 인구통계를 투명하게 발표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인구 감소를 축소발표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 이 기사는 쉬이양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