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최신폰, 美 반도체 봉쇄 뚫었나…“체제선전용 무리수”

강우찬
2023년 09월 8일 오후 2:13 업데이트: 2023년 09월 8일 오후 2:13

구세대 장비로 생산…수율 낮아 경제성 없어
“‘미국 봉쇄 돌파했다’는 상징성 노린 깜짝쇼”

중국 화웨이의 최신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에 7나노 공정으로 생산한 프로세서(AP)가 탑재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제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화웨이는 지난달 29일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의 방중에 맞춰 이 제품을 깜짝 출시했다.

미국의 ‘반도체 기술 봉쇄’를 당한 중국은 올해 3월까지만 해도 기술 수준이 14나노 공정에 머물고 있었는데 불과 반년 만에 10나노 공정을 뛰어넘어 한 번에 7나노까지 거리를 좁힌 것이다. 현재 반도체 선두주자인 삼성과 대만 TSMC는 3나노에서 수율 경쟁 중이다.

중국 언론들은 이번 소식을 전하며 “미국의 기술 봉쇄에도 굴하지 않고 반도체 기술 개발로 돌파구를 마련했다”, “미국에 대한 승리”라고 추켜세웠다.

일부 한국 매체들도 이러한 중국 언론의 평가를 그대로 국내에 실어나르고 있으나, 중국 문제에 정통한 대만의 전문가들은 이를 일종의 무리수로 평가하고 있다.

아직 혼자 일어설 단계가 아닌데도 체제 선전을 위해 중국 정부가 막대한 자금을 수혈해 억지로 일으켜 세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반도체 생산 핵심인 ‘수율’ 낮아…실효성 없는 기술”

미국 상무부는 지난 2019년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화웨이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자국 기업에 화웨이와의 거래를 규제했다.

이러한 미국의 대중 반도체 기술 봉쇄에는 ‘반도체 기술 강국’ 네덜란드도 동참했다. 네덜란드 기업 ASML는 전 세계에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7나노 이하 반도체 회로 생산에는 이 장비가 필수다.

하지만, 이번에 출시한 화웨이의 ‘메이트 60 프로’의 프로세서에는 중국 SMIC가 생산한 7나노 공정의 ‘기린 9000s’ 칩이 사용됐다. 이 칩은 EUV가 아니라 한 세대 전 장비인 심자외선(DUV)을 이용해 생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경제연구원의 정보통신분야 류페이전 선임연구원은 “DUV를 사용한 SMIC의 7나노 생산 공정은 수율이 매우 낮아 생산원가 높고 향후 생산 능력을 확장하기도 어렵다”며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기업들이 5G폰을 양산하려면 부품을 우회 구매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류 연구원은 또한 “현재 미국은 기술, 소재, 장비 그리고 인재까지 제한하고 있다”며 “중국은 이러한 요소를 모두 우회 조달하고 생산마저도 우회적으로 해야 해 효율이 떨어지고 경쟁력이 없다”고 평가했다.

화웨이는 지난달 ‘메이트 60 프로’ 출시하면서 자사 온라인몰에 한정 수량만 판매했다. 아직 부품 수급이나 SMIC의 7나노 반도체 생산이 양산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중국 기업들이 낮은 수익성이나 원가 경쟁력에 관계없이 향후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금을 받아 이전 세대 장비를 이용한 반도체 기술 개발을 계속 시도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앞서 지난달 22일 블룸버그는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를 피해 비밀리에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로부터 300억 달러(약 39조 9800억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받았다고 전했다. 수율이 낮더라도 정부 자금으로 반도체 생산을 밀고 나가겠다는 취지로 관측된다.

대만 국방안보연구원 쑤쯔윈 군사전략소장은 “7나노 공정에 성공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율인데, 중국은 수율을 공개하지 않았다”며 “화웨이의 신제품 출시는 실효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미국의 봉쇄를 돌파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체제선전 의도가 큰 것으로 보인다”고 파악했다.

“미국 관리들의 잇단 중국 방문, 규제 철폐 아냐”

류 연구원은 러몬도 장관을 비롯한 미국 관리들의 중국 방문으로 미중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에 대해 고개를 저었다.

그는 “미국 관리들의 방중은 단지 소통 채널을 재가동하기 위함일 뿐”이라며 “실제로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은 구조적인 문제로 정치·군사·경제·과학기술 분야에서의 갈등을 해소할 방법이 없다”고 단언했다.

중국이 패권을 추구하고 미국이 현재의 지위를 지키려 하는 한 일시적 완화는 가능하지만, 갈등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지난 6월 베이징을 찾은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와 만나 “중국은 패권을 추구하는 강대국의 옛 방식을 답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미중 갈등은 패권 다툼이라는 것이 국제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실제로 러몬도 장관은 방중 기간 중국 정부의 고위 관리들과 만나 양국 경제 현한을 논의했으나 핵심 이슈에서 양측 모두 양보하지 않아 아무런 합의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번 러몬도 장관 방중과 관련 “미중 관계를 정상적으로 되돌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대만 국방안보연구원 쑤쯔윈 소장은 “중국의 생산 능력은 미국의 제재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며 “경제 침체라는 요인이 더해지면서 갈수록 퇴보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 이 기사는 닝하이중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