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교과서에서 “영국 식민지였던 적이 없다” 기술

새로운 공민사회발전 교과서에 영국 식민지 역사 부정

최창근
2022년 06월 16일 오후 4:35 업데이트: 2022년 06월 16일 오후 4:35

홍콩 고등학교 시사교양 과목 교과서에 “홍콩은 영국 식민지였던 적이 없다.”는 기술이 들어간다.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영국 BBC 등 외신들은 6월 11일, 공개된 ‘공민사회발전(公民與社會發展)’ 검인정 교과서 4종에 공통적으로 “중국 정부는 홍콩을 영국에 이양하는 불평등 조약을 인정하거나 홍콩의 주권을 포기한 적이 없다. 홍콩은 결코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었다.”는 기술이 추가 됐다고 보도했다. 대신 해당 교과서에는 영국이 홍콩에 ‘식민 지배력을 행사했을 뿐’이라고 기술하였는데 이는 ‘홍콩 주권을 할양한 적이 없다.’는 베이징 정부의 주장을 반영한 것이다.

중국 정부는 “중국은 홍콩의 주권을 포기한 적이 없으며 홍콩을 영국에 할양한 것은 1800년대 아편전쟁 후 불공정하게 맺어진 조약 때문이었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오고 있다. 교과서에서는 ‘식민지(colony)’와 ‘식민 지배(colonial rule)’의 차이점을 설명하며 한 국가가 외부 영토를 식민지로 칭하려면 그 지역에 대한 통치권뿐만 아니라 주권도 지녀야 한다는 것이라 주장했다. 이들 교과서는 또한 유엔이 중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1972년 ‘식민지’ 목록에서 홍콩을 제외했다는 내용도 넣었다. 새로운 교과서 내용은 홍콩의 학생들에게 ‘중국 정체성’을 심어주려는 중국 정부의 최근 몇 년간의 시도와 일맥상통한다. ‘홍콩은 언제나 중국의 일부였으며 한동안 영국 통치하에 빼앗긴 것’이라는 생각을 주입하려는 것이다.

중국은 제1차 아편전쟁 강화조약인 1842년 난징(南京)조약 이후 영국이 홍콩을 점령한 것일 뿐 홍콩은 언제나 자국의 영토였다는 입장이다. 당시 청(淸) 정부가 영국에 영토 일부를 양도하고 임대한다는 조약을 잇달아 체결했지만 현재의 중국 정부는 이러한 조약들은 강압적으로 체결된 것이며 이러한 조약을 받아들인 적이 없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즉 홍콩 할양은 영국의 강압에 의한 것으로 원천 무효라는 것이다.

1997년 중국 주권 반환 후 홍콩 당국 또한 중국의 견해를 따르고 있다. 홍콩 주권이 중국으로 ‘이양’ 됐다는 표현 대신 “홍콩이 모국으로 돌아왔다(모국 회귀)”고 표현한다. 홍콩역사박물관에서는 홍콩을 ‘영국 식민지’로 지칭하긴 했지만 2020년 해당 표현은 모두 삭제됐다.

홍콩섬 할양을 명시한 난징조약 이후 제2차 아편전쟁을 마무리 지은 1860년 베이징(北京)조약으로 홍콩 중심지인 주룽(九龍)반도와 스톤커터스섬(Stonecutters Island)이 영국으로 추가 영구 할양됐다. 이후 1898년 홍콩조차연장조약(展拓香港界址專條·제2차 베이징조약)에 의거하여 신계(新界)지역이 99년간 영국에게 조차(임대)됐다. 20세기 들어 1984년 체결한 중영공동선언(홍콩반환협정)에 의거하여 1997년 7월 1일 홍콩섬, 주룽반도, 신제 등을 중국에 일괄 주권 반환하였다.

교과서 4종은 중국 정부가 2020년 홍콩보안법을 제정한 이유로 2019년 홍콩에서 벌어진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지목하기도 했다. 2019년 반정부 시위는 홍콩인의 본토 인도를 우려해 범죄인인도법안을 반대하며 벌어진 대규모 소요사태를 의미한다. 한 교과서는 “홍콩보안법은 2019년 각종 불법 행위와 관련한 폭력적 테러 활동 이후 국가안보를 수호하기 위해 제정됐다.”고 기술했다. 다른 교과서는 홍콩보안법이 심각한 폭력적 활동에 대응해 긴급히 제정됐다고 설명하면서 “중국 중앙 당국은 외세의 개입이 이러한 활동에 관여됐고 홍콩 정부는 스스로 이를 해결할 수 없다고 믿었다.”고 표현했다. 또 다른 교과서는 “반대파와 분리주의 단체들이 중앙정부와 홍콩정부에 공개적으로 도전했고 외세에 홍콩 문제에 개입하고 홍콩에 제재를 가할 것을 요청했다.”고 기술했다.

‘공민사회발전’ 교과목은 2009년부터 홍콩 고등학교에서 필수 과목으로 가르쳐 온 ‘통식(通識)’의 바뀐 명칭이다. 교양과정 등으로 번역 가능한 통식은 영어 ‘리버럴 스터디(Liberal Studies)’이다. 홍콩 내 친중 진영에서는 ‘리버럴’이 ‘자유민주주의’ ‘자유주의’를 뜻하는 것을 문제 삼았고 이는 과목명 개칭으로 이어졌다. 교과 과정 개편으로 공민사회발전 과목은 수업 시간이 단축됐고 대신 국가안보, 준법정신, 애국심 교육이 강화됐다. 공민사회발전은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국가 두 체제) 아래 홍콩 △개혁과 개방 이후 중국 △현대 사회의 상호의존과 상호연결 등 3가지 주제를 다룬다. 홍콩 교육국은 2020년 6월 30일 홍콩보안법 시행 이후 ‘통식’에서 이미 ‘3권 분립’이라는 표현과 시위 관련 내용을 삭제하고 시위대가 법을 어기면 법률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또 홍콩 시민은 ‘홍콩인’인 동시에 ‘중국인’이라는 점을 부각했으며, 중국 경제발전이 홍콩 시민에게 큰 기회가 될 것이라는 내용도 담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