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지방정부·대학이 중국과 맺은 협약 파기하는 법안 추진

류지윤
2020년 09월 28일 오전 10:15 업데이트: 2020년 09월 28일 오전 10:54

중앙정부에 거부권 주는 ‘외교관계법’ 제정 박차
스콧 모리슨 총리 “중국 ‘일대일로’ 프로젝트 때문”

“오늘은 호주의 주권을 위해 중요한 날입니다.”

호주 정부가 외국 정부의 침투를 막기 위한 관련법 제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법안에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명확하게 중국을 겨냥한 법이다.

스콧 모리슨 총리는 지난달 27일(현지 시각) ‘외교관계법’ 추진을 발표하며 “오늘은 호주 주권에 중요한 날”이라고 선언했다.

외교관계법(Foreign Relations bill)은 호주 지방정부나 대학 등이 외국 정부와 체결한 협약을 무효로 할 수 있는 권한을 연방정부에 주는 것이 골자다.

모리슨 총리가 이 법을 추진하게 된 것은 ‘일대일로’ 프로젝트 때문이다.

일대일로는 중국 공산당의 글로벌 영향력 확대 공작이다.

참여국에 인프라 건설, 차관을 제공하는 대신 경제·외교·문화적 침투를 강화하는 변형된 통일전선 전술이다.

호주의 대표적인 국방안보분야 국책연구소인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는 지난 6월 중국 공산당의 통일전선 전술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하고 일대일로를 그 주요 사업으로 지목했다.

호주 연방정부 역시 일대일로를 경계해왔지만, 자치권을 지닌 지방정부 가운데 일대일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곳이 하나 있다. 바로 빅토리아 주다.

빅토리아 주의 다니엘 앤드루스 주지사는 지난 2018년 10월 호주 주재 중국 대사와 일대일로 참여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모리슨 총리는 즉각 “앤드루스 주지사가 호주 내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중국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달 31일 호주 ABC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외교관계법’에 대해 설명하며 “중국에 관한 것”이라고 명확하게 밝혔다.

현재 호주 정부는 이 법안을 크리스마스 이전까지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2018년 11월 다니엘 앤드루스 빅토리아 주지사(왼쪽)와 첸징예 호주 주재 중국대사가 일대일로 프로젝트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있다. | 중국 대사관

“일대일로를 외교적 행위로 해석한 것”

호주의 중국계 법학자 주펑(朱峰)은 호주 정부의 ‘외교관계법’ 제정 추진과 관련해 “일대일로 사업 참여 결정은 지방정부의 권한 밖”이라고 풀이했다.

이에 따르면, 외교와 무역은 연방정부의 권한이다. 일반적인 양해각서 체결이라면 지방정부 차원에서 진행할 수 있지만, 일대일로는 외교적 차원의 사안이라는 것이다.

그는 “호주 정부는 빅토리아 주정부는 이런 협정을 체결할 권한이 없고 그 권한은 외교부에 있음을 분명히 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빅토리아 주가 중국과 체결한 ‘일대일로’ 양해각서 외에도 다른 지방정부가 중국과 체결한 합의도 폐기될 수 있다. 다만, 외교 및 주권과 관련된 내용이 담겨 있을 경우에 한해서다.

영국 BBC는 호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주정부가 지난 2011년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와 체결한 합의 역시 ‘외교관계법’에 따라 폐기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공자학원도 ‘외교관계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외교관계법 초안에는 중앙정부의 거부권 행사 대상에 ‘지방정부와 대학 등이 외국 정부와 체결한 협약’이라고 명시했다. 대학을 포함시킨 것이다.

공자학원은 중국 공산당 통일전선공작부 산하 외국 초·중·고, 대학을 상대로 한 공산주의 및 당 선전기관이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8월 공자학원을 ‘외국정부 대행기관’으로 지정해 미국 대학들에 공자학원 운영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호주 스콧 모리슨 정부가 외교관계법을 제정할 경우 공자학원을 비롯해 호주에 진출한 중국 공산당 매체 등 대외선전, 통일전선 공작 기관 모두 그 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