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재무장관 특보, 중국계 아내 때문에 임용 취소

강우찬
2023년 09월 9일 오전 11:04 업데이트: 2023년 09월 9일 오후 3:30

중국 국적, 장인·장모 핀란드 자주 방문
보안당국 “중국의 침투에 이용당할 우려”

핀란드 재무장관의 특별보좌관이 중국계 여성과 사실혼 관계임이 밝혀져 보안심사에서 탈락하고 임명이 취소돼 핀란드 정계에 파문이 일고 있다.

현지 매체 일따레흐티(Iltalehti)에 따르면, 지난달 말 리카 푸라 재무장관의 언론담당 신임 특보 야리 쿠이만마키(Jari Kuikanmäki)가 핀란드 정보기관인 보안정보국(SUPO)의 보안심사에서 결격 사유가 드러나 결국 임명이 취소됐다.

신문은 “자체 조사한 결과, 장관 특보 임명이 공식화된 후 취소된 것은 핀란드 사상 처음”이라며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유명 방송 프로듀서 겸 언론인 출신인 쿠이만마키는 지난 6월 말 푸카 재무장관의 언론담당 특보로 임명됐으며, 채용 당시 국무총리실에 제출한 신원 보고서에는 중국계 여성과 혼인신고 없이 사실혼 관계에 있다는 점이 기재되지 않았다.

그러나 7월 중순 보안정보국의 신원조회 및 대면 보안심사에서 사실혼 관계에 있는 여성이 중국에서 태어난 핀란드 귀화자이며, 그녀의 부모가 여전히 중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밝혀졌다.

신문에 따르면, 대면 보안심사에서 쿠이만마키가 이를 직접 진술하진 않았으나 보안정보국 조사원이 답변을 종합해 추론한 후 별도 절차를 거쳐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들 세 사람이 최근까지도 중국과 핀란드를 활발히 오가고 있었다는 점 역시 주요 결격사유로 지적됐다. 이들이 중국 당국의 핀란드 정계 침투 및 영향력 확대 공작에 이용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당초 특보 임명 발표는 보안심사 통과 후 이뤄져야 했으나, 쿠이만마키이 보안심사 전인 7월 초 푸라 장관의 소속 정당인 핀란드당(구 ‘진정한 핀란드’)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으며 이 자리에서 신임 특보로 소개되면서 사실상 특보 임명이 공식화됐다.

핀란드 재무장관 겸 원내 제2 정당인 핀란드당 당대표 리키 푸라(Riikka Purra). 2023.7.13 | JOHN THYS/AFP via Getty Images/연합

핀란드당은 올해 4월 총선에서 46석을 차지하며 원내 두 번째 정당으로 올라섰고, 현재 국민 연합당(48석)이 주도하는 4개당 연립정부에 참여하고 있다. 반이민, 반유럽연합(UN) 정책을 내세우는 보수정당이며, 푸라 재무장관이 당 대표로 재임 중이다.

핀란드 정부는 장관급 인사의 특보 임명 시 1차 서류심사에 이은 신원조회 및 보안심사를 의무화하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는 보안심사에서 불합격된 사례가 거의 없어 쿠이만마키 자신을 포함해 다들 이를 형식적인 절차로 여겼기에, 심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특보 임명을 공식화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현지 매체 일따레흐띠는 전했다.

쿠이만마키는 일따레흐띠와의 인터뷰에서 “아내가 핀란드에서 10여 년간 함께 살면서 핀란드 국적을 취득했고 범죄 이력도 없다”며 “아내가 중국과의 연결고리가 있다고 해서 (남편인) 내가 특보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번 사건은 공산주의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침투 공작에 대해 이전보다 부쩍 예민해진 유럽의 경계심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이 각국에서 정보기관을 포함해 정관계, 민간기구 등 다양한 경로로 스파이 활동을 벌이며 자유세계를 상대로 침투 공작을 벌여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 9월 스페인 소재 국제 비정부기구(NGO)인 ‘세이프가드 디펜더스’를 통해 중국 지방 공안당국이 ‘교민 서비스’를 내세워 세계 30개국에 100여 곳 이상의 불법 경찰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는 폭로가 제기된 바 있다. 이후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에서 실체가 확인됐다.

중국의 침투 공작에 참여하는 대상은 외교관이나 공직자, 정보요원에만 그치지 않는다. 중국 ‘국가정보법’ 제7조에는 “중국 국민이나 조직은 국가의 정보활동에 지지·협력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했다.

또한 “국가는 국가 정보업무를 지지·협력하는 개인과 조직을 보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당 독재체제인 중국에서 국가란 곧 공산당이다. 이 조항은 중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도 중국인 혹은 중국 조직(기업)은 공산당이나 정부의 지시가 있으면 간첩으로 활동할 의무가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문제 전문가 리닝은 “핀란드 정부는 쿠이만마키와 사실혼 관계에 있는 중국계 여성이 핀란드 국적을 취득한 귀화자임에도 쿠이만마키의 특보 임용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 공산당의 교묘한 침투 공작과 그로 인해 핀란드에 초래될 리스크를 고려할 때 임용을 취소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만큼 신중하게 접근했다고 볼 수 있다”고 논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