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검문 피해 도주하던 10대 사살에 사흘째 과격 시위

한동훈
2023년 06월 30일 오전 11:40 업데이트: 2023년 06월 30일 오전 11:40

시위대, 인종차별·경찰과잉대응 비난…경찰서·시청 습격
마크롱 “총격은 잘못 맞지만, 폭력시위는 안 돼” 자제촉구

프랑스에서 교통 검문을 피해 도주하려다 경찰이 쏜 총에 맞은 10대가 숨진 사건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시위가 전국을 휩쓸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이번 주 화요일인 27일(이하 현지시간)부터 시작된 시위는 3일 연속 이어지면서 폭동으로 번지고 있다. 29일 밤 시위대는 프랑스 곳곳에서 경찰서와 시청, 학교를 습격해 불을 질렀고 경찰은 150여 명을 체포했다.

프랑스 내무부는 시위 차단과 진압을 위해 29일 오전 파리 시내에 경찰 병력 5천 명을 투입하는 등 전국에 4만 명을 배치해 강력한 대응을 예고했다. 숨진 10대를 추모하는 행진이 진행된 파리 서쪽 외곽 낭테르에서는 “나엘을 위한 복수”라는 문구가 포착됐다.

사건은 27일 낭테르에서 시작됐다. 이날 오전 8시 30분쯤 낭테르의 한 도로에서 차를 몰던 나엘(17)은 경찰의 지시에 따라 차를 세웠으나 검문에 불응하고 다시 차의 시동을 건 후 출발했다.

그러자 차량 운전석 옆에 서 있던 두 명의 경찰관 중 한 명이 즉각 소지하고 있던 권총을 발사했고 총알은 나엘의 팔과 가슴을 관통했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차량에는 나엘 외에 2명이 더 탑승하고 있었으며, 한 명은 사건 직후 경찰에 구금됐다가 풀려났고 다른 한 명은 도주했으며 현재까지 행방불명이다.

사건 당시 주변에 있던 한 시민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소셜미디어에 공개한 영상에는 경찰은 차를 세운 나엘에게 접근해 대화를 주고받았으며 한 명은 총으로 나엘을 겨누고 있다가 차가 급발진하자 총을 발사하는 장면이 담겼다.

차는 총이 발사된 후 수십 미터를 달려가다 기둥을 들이받고서야 멈췄으며 구급대원이 현장에 도착해 응급처치를 시도했으나 나엘은 현장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관 2명은 나엘이 위험하게 운전해 도로변으로 차를 세우도록 했으며, 구금하려 했으나 나엘이 거부하고 차를 출발시켰다고 말했다. 이들은 검찰 조사에서 위협을 느꼈으며 나엘이 차로 누군가를 치게 될 것이 우려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사건을 조사한 결과 당시 상황이 무기를 사용할 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반면, 경찰관 측 변호인은 경찰관들이 법률에 따라 행동했으며, 피해자 유족이 이번 사건을 인종차별이라는 정치적 이슈로 비화시키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셜미디어에 공개된 사건 당시 영상 | @Ohana_Fgn/Twitter

변호인은 경찰관들은 나엘을 구금하려 했으나 나엘이 저항하며 30초가랑 버텼고 소셜미디어에 공개한 영상에는 담기지 않았으나, 그에 앞서 나엘은 보행자들을 거의 칠 정도로 위험하게 운전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총을 쏜 경찰관은 나엘의 다리를 겨냥했으나 충돌로 인한 충격으로 가슴을 향해 격발하게 됐다며 “총을 쏘진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운전자를 살해할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나엘의 어머니는 29일 낭테르에서 열린 추모 행사에 참석해 ‘나엘을 위한 정의’라고 쓰여진 티셔츠를 입고 행진 차량 위에 탑승했다. 그녀는 “경찰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내 아들을 죽인 사람, 그 한 명에 대해 분노한다. 그는 내 아들을 죽일 필요까진 없었다”고 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사건 이후 알제리계 가정 출신이었던 나엘에 관해 평소 행실이 좋지 않은 것처럼 묘사하는 내용이 게재되기도 했으나, 그가 사건 당시 운전하던 차량에서는 마약이나 위험한 물건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생전 나엘과 잘 아는 사이였다는 한 청소년 지원단체 대표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마약 거래나 청소년 범죄와는 무관한 아이였으며 사회에 잘 적응하고 직업에 충실할 그런 사람이었다”는 말했다.

그러나 BBC에 따르면 나엘은 2021년부터 지금까지 5번 경찰 조사를 받았으며 지난 주말에도 경찰 조사에 불응했다가 구금된 사실이 드러났다. 오는 9월에는 소년 법원에 출두할 예정이었다. 그동안 주로 차량과 관련된 문제로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은 프랑스 경찰의 인종차별 논란으로 이어지며 격렬한 시위를 촉발했다. 사건이 발생한 낭테르에서는 당일 저녁부터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고 이후 사건 장면을 담은 영상을 본 사람들이 가담하면서 시위는 프랑스 전국으로 퍼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9일 긴급 내각회의를 소집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총격은 용서할 수 없다”면서도 국가기관에 대한 폭력 행사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2023년 6월 30일 프랑스 파리 교외 낭테르에서 프랑스 경찰관에 의해 교통체증 중 사망한 17세 청소년 나헬이 사망하자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 교외 낭테르에서 시위대와 경찰 사이 충돌이 발생한 가운데 한 시위자가 불타는 은행 건물 위에 오르고 있다. 2023.6.29 | Zakaria Abdelkafi/AFP/연합

프랑스 정부는 이번 사건이 지난 20년 전 무슬림 폭동 같은 사태로 번지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2005년 10월 파리 북부 빈민가에서는 10대 소년 3명이 도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순찰자를 보고 달아나다가 변전소에서 감전돼 2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경찰은 순찰차를 보고 도주하던 이들을 용의자로 여기고 추격했으나, 살아남은 소년 1명은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리면 피곤한 일이 생기는 것이 귀찮아 달아났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민자 사회는 거센 시위를 벌였고 프랑스 전역은 3주간의 소요 사태를 겪었다.

마크롱 정부는 올해 상반기 ‘인기 없는’ 연금개혁을 추진하면서 대규모 시위의 긴 터널을 겨우 빠져나오나 싶다가 또 한 차례 늪을 만난 상황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지난해 총선에 패배해 과반 의석을 빼앗긴 야당과 몇몇 극좌 인사들이 갈등을 증폭시켰다고 비난하고 있다.

프랑스 사회가 안고 있는 더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프랑스 정치분석가인 클로에 모린은 미 폴리티코에 그동안 누적된 경찰에 대한 증오, 마약 관련 범죄의 확산, 프랑스에서 공정성을 실현할 기준으로 여겨지는 능력주의가 더 이상 기능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