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 헝다 그룹은 왜 미국으로 달려갔나…中 권력암투

한동훈
2023년 08월 31일 오후 8:04 업데이트: 2023년 08월 31일 오후 8:06

당국 조사 발표 다음날 뉴욕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
평론가 “미국에 빼돌린 反시진핑 세력 자산 보호”

중국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恒大·에버그란데)그룹이 파산 위기에 몰린 배경에 시진핑 진영과 쩡칭훙 파벌 간 권력 암투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재미 중국 평론가 왕요췬은 에포크타임스 중문판 기고문에서 시진핑이 부동산 경기 침체를 감수하고 헝다그룹을 숙청한 것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자신의 권력을 지키는 일이다.

왕요췬은 지난 16일 중국 금융당국이 헝다그룹 주력 계열사인 헝다부동산을 상대로 조사를 벌인다는 소식이 공개된 바로 다음 날 헝다그룹이 미국 뉴욕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한 사실을 지목하며 “그룹을 살리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시진핑은 2012년 집권 후 첫 임기 5년간 반부패 운동을 통해 호랑이(고위 부패관리), 파리(하급 부패관리), 여우(해외 도피사범) 사냥을 벌였다. 이는 당내 최대 라이벌인 장쩌민-쩡칭훙 파벌을 숙청하기 위한 작업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이들 파벌은 소위 ‘상하이방’으로 불리며 장쩌민-쩡칭훙 파벌이 마지막까지 장악했던 분야는 중국의 사법, 공안계통이었다. 준군사조직인 무장경찰까지 거느린 이들의 막강한 세력은 시진핑 정권의 최대 위협이기도 했다.

시진핑은 집권 2기인 2017년부터 2022년까지는 주로 사법, 공안계통과 정치기관을 대상으로 한 반부패에 집중했다. 이를 통해 장쩌민-쩡칭훙 파벌이 장악하고 있던 권력을 점차 빼앗는 한편 이들의 자금줄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왕요췬은 “이 기간, 장쩌민은 이미 쇠약해졌기 때문에 양측의 대결은 사실상 시진핑과 쩡칭훙 사이의 싸움이었다”며 헝다그룹이 무너진 것은 이 그룹이 쩡칭훙의 주요 후원자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부동산 대형 개발업체 헝다그룹 쉬자인(許家印) 회장. | 에포크타임스

헝다그룹, 장쩌민 파벌 비호하에 성장

헝다그룹 쉬자인 회장은 허난성 농민 가정 출신으로 장사꾼, 철강회사 직원, 영엽사원 등 다양한 직업으로 생계를 잇다가 1994년 무역회사 사장의 제안으로 부동산 업계에 뛰어들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당시 평수가 큰 주택 위주의 아파트 시장에서 작은 면적과 저렴한 가격, 빠른 시공을 내세운 부동산 개발로 회사에 큰 이익을 가져다주며 창업의 기반을 다졌고 1996년 광둥성 선전에서 헝다그룹을 세웠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쉬자인 회장은 장쩌민 파벌과 아무런 접점이 없는 지역 부동산 개발업자였다. 그런 그가 쩡칭훙 일가의 후원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동종 업계 지인이 다리를 놔준 덕분이었다.

이 인물은 부동산 개발업체 런허(人和)상업 다이융거 회장으로, 그는 쩡칭훙 아들의 호주 부동산 구입에 자금을 대고 그의 며느리에게 그룹 주식 40%를 넘겨주는 등 적극적으로 구애를 펼치고 있었고, 자신만으로 모자라 쉬자인 회장도 또 다른 ‘물주’로 쩡칭훙 일가에 소개했다.

마침 쉬자인은 홍콩 연예계에서 ‘홍콩 부호 클럽’으로 불리던 홍콩문화산업연합총회의 이사였는데, 이 모임에는 홍콩 주재 중국 문화부 특별감사관으로 부임했던 쩡칭훙의 동생 쩡칭화이도 포함돼 있었다.

몇 가지 인연이 얽히면서 쉬자인 회장은 쩡칭훙 일가를 적극적으로 후원했고 당시 최고 권력을 장악한 장쩌민-쩡칭훙 파벌은 헝다그룹에 각종 특혜를 주어 중국 굴지의 부동산 개발업체로 성장하게 했다.

특히 쩡칭훙 일가의 ‘흰 장갑(白手套)’인 쩡칭화이가 전폭적인 지원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흰 장갑은 중화권에서 ‘검은돈을 세탁해 하얗게 만드는 하수인’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얼굴마담 정도의 의미다.

즉 쩡칭화이가 관련됐음은 해당 기업이 쩡칭훙 일가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쩡칭훙-쩡칭화이-쉬자인(헝다그룹)으로 이어지는 자금 흐름은 이렇게 구축됐다고 왕요췬은 설명했다.

호주로 망명한 중국 법률전문가 겸 시사평론가 위안훙빙(袁紅氷) 전 베이징대 법학과 교수는 “헝다그룹 사건이 터졌을 때 베이징 정가에서는 ‘시진핑이 직접 개입했다’는 설이 널리 퍼졌다”고 했다.

위안훙빙은 “이 설에 따르면, 시진핑이 직접 금융당국에 ‘헝다그룹에 대한 대출을 차단하라’고 지시했다”며 “쉬자인은 최대 경쟁 파벌의 자금줄이었다. 헝다그룹 숙청이 쩡칭훙을 겨냥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중국 금융당국의 ‘3도홍선(세 가지 레드라인)’은 매우 유명하다. 이는 헝다그룹 자금난의 계기가 된 정책이다.

시진핑 체제하의 금융당국은 2020년 8월 20일, 부동산 업계를 대상으로 ▲선수금을 제외한 부채비율 70% 이상 ▲순부채 비율 100% 이상 ▲자본금을 넘어선 단기부채 등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이 중 하나라도 해당하면 신규 대출 및 부채 확대를 제한하는 규제책을 발표했다.

헝다그룹은 이 세 가지 기준에 모두 해당하면서 은행 대출이 차단됐고 자금줄이 막히면서 곧바로 자금난에 빠졌다. 일각에서는 ‘3도홍선’을 헝다그룹 맞춤형 규제책이라고까지 평가한다.

쩡칭훙(曾慶紅) 전 중국 국가부주석. | Teh Eng Koon/AFP/연합

시진핑 부동산 안정책, 헝다그룹이 훼방

왕요췬은 쩡칭훙이 헝다그룹 경영에 개입해 시진핑의 부동산 안정 정책을 망쳤을 가능성도 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그에 따르면, 2016년 시진핑 당국은 부동산 시장의 과열 투자 양상을 억누르기 위해 주택을 투기용에서 주거용으로 전환하기 위한 종합적인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헝다그룹은 2016년에 오히려 차입경영을 확대해 유이자부채 비율이 전년 대비 80% 증가한 5351억 위안(약 96조9700억원)에 달했다. 시진핑 당국의 정책 기조에 역행한 것이다.

시진핑은 이듬해 제19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주택은 살기 위한 것이지 투기용이 아니다”라며 과열 투자 억제 방침을 강조했으나, 같은 해 헝다그룹의 유이자부채는 7326억 위안(약 132조원)으로 37% 불어났다.

왕요췬은 “2018년은 중국 부동산 시장이 상승했다 하강하면서 헝다그룹의 부채 비율도 감소했으나 부채액 자체는 500억 위안(약 9조600억원) 증가했고 2019년에는 다시 3000억 위안(54조원)으로 증가폭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반적으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헝다그룹의 경영은 정부 정책 기조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뚜렷했다”며 “이런 대담한 결정은 일개 기업가인 쉬자인 회장 스스로 내렸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쉬자인 회장은 그룹회장인 동시에 헝다그룹 내에 설치된 공산당 위원회의 서기, 즉 당 서기다. 현재 헝다그룹 내 공산당원은 1만2075명, 당 위원회(당위)를 비롯한 당 조직은 1200여 개에 이른다.

왕요췬은 “헝다그룹은 조세회피처로 유명한 케이맨 제도에 법인이 등록돼 있다. 쉬자인 회장은 공산당원으로서 공산당에 충성을 맹세했지만, 막상 파산 사태가 벌어지자 즉시 미국으로 달아났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 뉴욕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회사 구조조정 시간을 벌려는 목적이지만, 실제로는 자신과 쩡칭훙 일가가 해외로 빼돌린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의도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27일 헝다그룹이 밝힌 그룹 총부채는 2조3800억 위안(약 431조원)으로 상하이, 베이징, 선전, 광저우 등 중국 일선도시 4곳의 한 해 공공지출과 맞먹는 천문학적 금액이다.

왕요췬은 “헝다그룹 사태는 중국 공산당 20차 당대회(2022년 10월 16~22일)를 앞두고 벌어진, 수년간에 걸친 시진핑과 쩡칭훙과의 암투였다”며 “시진핑이 이겼지만 엄청난 부담을 안게 됐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시진핑이 헝다그룹 사태를 잘 처리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쩡칭훙이 세력을 추스려 다시 도전할 수 있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