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새 성경을 쓰게 될까…종교·신앙 겨눈 AI 혁명

T.J. 머스카로 (T.J. Muscaro)
2023년 06월 29일 오후 2:26 업데이트: 2024년 01월 31일 오전 10:34

지난 9일 독일 바이에른 북부 도시 퓌르트에 위치한 세인트 폴 성당에서는 300명의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인 챗GPT가 준비한 설교가 진행됐다.

성당 안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는 남성 2명과 여성 2명의 영상이 번갈아 비쳤다. 이들은 AI가 그려낸 가상 인물로 AI가 준비한 대본에 맞춰 입을 벙긋거렸고 스피커에서는 약 40분에 걸쳐 설교와 기도, 찬송이 흘러나왔다.

이 ‘이벤트’는 뉘른베르크와 퓌르트에서 열린 개신교 대회에서 진행된 수백 건의 행사 중 하나였다. AI 예배를 기획한 비엔나대학교의 신학자 요나스 짐머라인(29)은 “설교의 98%는 챗GPT가 준비했다”면서도 “종교 지도자를 AI로 대체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작년 11월 공개 이후 세계적 선풍을 일으킨 챗GPT를 계기로 AI 기술을 종교 분야에까지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계경제포럼(WEF) 고위 자문위원이자 이스라엘 출신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인 유발 하라리(47)는 “(AI가) 새로운 성경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라리는 지난 5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과학학술행사 ‘프론티어스 포럼’에 참석, ‘AI와 인류의 미래’를 주제로 진행된 대담에서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는 지시받은 만큼 성경을 인쇄했지만, 새로운 페이지는 단 한 장도 만들지 못했다”면서 “그러나 AI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AI를 이용해 ‘성경 다시쓰기’를 함으로써 더욱 많은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게 할 수 있다는 그의 발상은 수천 년에 걸쳐 전 세계 종교계에 확립된 종교의 권위에 대한 전례 없는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지난 6월 9일(현지시간) 독일 바이에른주 뉘른베르크 인근 도시 퓌르트의 세인트 폴(성 바오로) 성당에서 진행된 개신교(루터교) 예배에서 인공지능(AI) 챗봇 챗GPT가 설교와 기도, 찬송 등을 수행하고 있다. | AP/연합

동성애자이자 무교자(無敎者)인 하라리는 AI를 통해 “‘초인적 지능’에 의해 작성된 책을 얻게 됨으로써 종교적 ‘꿈’을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많은 세계적 종교가 자신들의 경전이 초월적 존재의 영감으로 탄생했다고 주장해 왔으나, AI를 통해 그것을 주장이 아닌 진짜 현실로 만들 수 있다는 제안이다.

여기에는 성경을 비롯한 종교 경전을 초월적 존재, 신의 개입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단순한 신화, 이야기로 여기는 하라리의 평소 소신이 깔려 있다.

그는 “AI가 대중을 위해 올바른(correct) 종교를 전달할 수 있다”며 “몇 년 안에 실제로 올바른 종교가 나올 수 있다. AI가 쓴 경전을 기반으로 한 종교를 생각해 보라. 그것은 몇 년 안에 현실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종교계에서는 이를 ‘기존 종교나 경전은 올바르지 않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주장이라고 지적한다.

AI 설교…사람들 “생각보다 잘 작동”, “묘한 불쾌감”

독일에서 AI 설교를 기획한 신학자 짐머라인은 자신의 실험을 통해 “AI가 교회의 일상 업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예배 순서를 진행하거나 기도문을 읊는 정도의 일을 보조하는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짐머라인은 챗GPT를 이용해 설교를 작성한 과정에 관해 “우리는 교회 모임에 참가하고 있으며 당신은 설교자다. … 교회의 예배는 어떤 모습일까”라고 질문하고 마지막에 기도, 축복, 시편이 포함되도록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에 따르면 AI 설교를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대부분은 AI가 설교한다는 소식을 듣고 호기심에 참석했는데, 이들 중 일부는 휴대전화로 열심히 촬영했지만 어떤 이들은 비판적인 태도로 보였다. 챗GPT가 선창하는 주기도문을 따라 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었다.

IT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는 50대 여성은 처음 시작됐을 때는 호기심과 흥분감이 일었지만 예배가 진행될수록 점차 불쾌함을 느꼈다며 “마음도 영혼도 없었다”고 했다.

그녀는 “아바타는 전혀 감정을 나타내지 않았고, 제스처도 없었다. 빠르고 단조로운 말투로 말했기에 이야기에 집중하기 어려웠다”며 “그러나 AI와 함께 자란 어린 세대들에게는 다르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마트폰 화면에 인공지능(AI) 챗봇 챗GPT 아이콘이 보인다. | The Canadian Press/AP/연합

30대 루터교 목사는 예상보다는 괜찮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신의 교회에 다니는 10대 청소년을 데리고 참석했다는 이 목사는 “이렇게 잘 작동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아직 약간 불안정한 부분도 있었지만 잘 작동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 목사는 “감정이나 영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이는 내가 설교문을 작성할 때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라고 강조했다.

“AI, 친밀한 관계 구축하고 지배력”

하라리는 AI를 통한 성경 다시쓰기, 새로운 종교의 탄생을 예견했으나 동시에 지나치게 빠른 AI 개발 속도에 두려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지난 3월 “GPT-4 이상의 AI 시스템을 개발하는 속도를 지금보다 늦춰야 한다”는 미국 비영리단체 ‘미래의 삶 연구소’의 공개서한에 서명했다. AI가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 사람을 조종하거나 사회를 재구축하는 등 전례 없는 지배력을 갖게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4월에는 한국의 한 출판사가 마련한 온라인 기자 간담회에서 “AI가 사람과 대화하며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며 특히 “자라나는 세대가 AI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 AI는 상품을 구매하게 하거나 다른 종교로 개종시키거나 정치적 신념을 주입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AI가 실수를 범하는 ‘인간 요소(Human factor)’를 배제하여 기술과 산업, 전반 사회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할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소수가 다수의 대중을 지배할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고 분석한다. 여기에는 허위 정보를 퍼뜨려 사람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악의적 행위자 혹은 ‘거짓 선지자’도 포함된다.

미국의 변호사이자 블로거인 제프 칠더스는 최근 뉴스레터 서비스인 ‘서브스택’을 통해 자신의 구독자에게 보낸 글에서 성경 ‘요한 묵시록’에 묘사된 세계의 종말 때 등장하는 ‘거짓 예언자’에 관해 말했다.

미국의 변호사 겸 블로거 제프 칠더스. | 본인 제공

칠더스는 “묵시록 13장에 등장하는 두 번째 짐승은 흔히 ‘거짓 예언자’로 불린다”며 “두 번째 짐승은 첫 번째 짐승의 상에 숨을 불어넣는다. 그리하여 그 짐승의 상이 말을 하기도 하고 자신을 경배하지 않는 사람을 죽게 할 수도 있다. 첫 번째 짐승의 상은 적(敵)그리스도로 여겨진다. 즉 거짓 예언자는 전 세계가 적그리스도를 섬기게 만드는 역할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글에 관해 “많은 사람들이 적그리스도를 정치인 혹은 정치계 인사일 것으로 예상한다. 거짓 예언자에 대해서는 종교계 인물이라는 예상이 많지만, 생명이 불어넣어진 형상 혹은 초자연적인 것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람들은 예수와 무하마드, 붓다에게서 조언을 듣고 싶어 한다. 그런데 역사적 인물들을 빅데이터로 구현한 AI가 등장한다”며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말 그대로 그들을 숭배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실제로 이러한 채팅봇 프로그램 개발은 이미 진행 중이다. 전례 없는 양의 데이터와 엄청난 연산 능력의 슈퍼 컴퓨터를 통해 이미 사라진 역사적 인물의 말투와 사고방식을 모방하는 AI가 등장해 본질적인 문제에 관한 정보를 자체 생산하고 인간에게 제시한다.

‘신’과의 대화일까…이미 시작된 AI와의 종교문답

현재 챗GPT를 비롯한 대화형 인공지능 챗봇에는 이미 이러한 기능이 일부 구현돼 있다.

기타(Gita)GPT는 힌두교의 주요 경전 중 하나인 ‘바가바드 기타’를 데이터화해서 크리슈나, 시바, 가네샤, 스리 람, 차나키야 등 여러 ‘신’들과 대화할 수 있는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이슬람교도에게 정신적인 지침을 제공하는 콘(Corn)GPT, 유대교 랍비나 종교지도자처럼 대화하는 로보 랍비(Robo Rabbi)도 있다.

AI 플랫폼은 현재 보유한 데이터의 해석에 기초해 새로운 콘텐츠를 제작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나 솔루션을 제안할 수 있으며, 그 능력이 꾸준히 향상되고 가다듬어지면서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칠더스는 “챗GPT에 세계 종교의 좋은 점은 모두 취하고 나쁜 점은 버린 후 새로운 경전을 만들어 첫 번째 챕터를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챗GPT는 “뭔가 결과물을 내놨다”며 “중요한 것은 이것이 아직 4세대 기술일 뿐이라는 점이다. 5세대 기술이 이미 코 앞에 다가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이미 팬데믹 때 경험했지만 문제는 정보에 가짜나 오류가 섞여 있다는 것”이라며 “우리는 정보 통제를 피하려 소셜미디어를 떠나 텔레그램 같은 암호화된 메신저를 사용했었다. 그러나 모두가 신뢰하는 AI가 등장하면 사람들은 더 강한 통제하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라리 역시 AI 기술이 고도화하면 손쉽게 인류가 통제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지난 5월 포르투갈에서 열린 대담에서 “음모론에서 예상하는 것처럼 사람을 통제하고 조작하려 뇌에 칩을 심을 필요도 없다”며 AI가 언어와 스토리텔링만으로 인간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루살람의 알아크사 모스크. 경찰이 주변 광장에서 경호를 서고 있다. 2021.5.21 | Ahmad Gharabli/AFP via Getty Images/연합

종교 지도자들, 앞으로는 AI와 경쟁해야 할 수도

불교, 이슬람교, 천주교, 개신교 등 모든 종교의 성직자들은 자신의 신앙을 향해 맞서오는 수많은 상황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의 교육과 훈련을 거친다.

때로는 자신의 신앙과 신념을 흔드는 도전을 받기도 한다. 지금까지 그 도전 상대는 같은 인간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하나의 종교가 아닌 디지털화된 모든 종교 자료를 섭렵한 AI 프로그램과 경쟁하게 됐다.

칠더스는 “전통적인 종교는 심각한 시험을 받게 될 것”이라며 “인간이 창조한 존재(AI)와 신학적 문제에서 맞서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플로리다 클리어워터의 3년 차 가톨릭 사제인 코너 펜(30)은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가톨릭 사제 펜 코너 신부. | 본인 제공

펜 신부는 “아직까지 내가 소속된 교구에는 AI와 관련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면서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컴퓨터는 하느님의 신성한 개입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기독교인은 성경이 누군가의 의견이나 현명한 가르침을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감으로 만들어졌다고 믿는다”며 “하느님이 사람이라는 도구를 거쳐 대를 이어 전하도록 한 이야기에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알기를 바라는 뭔가가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AI는 아마도 완전한 새 성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원래 성경처럼 하느님의 영감이 깃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펜 신부는 AI의 효용성 자체를 부인하진 않았다. 그는 “많은 사람이 예수에 대한 정보를 찾고 궁금한 일에 대한 즉각적인 답을 얻으려 AI에 몰릴 것”이라며 종교나 신앙에 대한 관심을 높여주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면서도 “컴퓨터가 어떤 답을 내놓더라도 기독교는 진리의 빛을 발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며 “하느님은 영혼의 깊은 곳에서 우리에게 말씀을 전한다. 이는 AI는 해낼 수 없는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