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서 방송 재개” 주장한 中 CGTN…알고보니 “백도어 송출”

한동훈
2021년 12월 27일 오후 3:15 업데이트: 2021년 12월 27일 오후 4:19

중국 관영 방송이 영국 당국의 면허 취소에도 영국 현지에서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영국 방송법 규제를 교묘하게 우회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스페인에 등록된 국제 인권단체 세이프가드디펜더(SGD)는 중국 국제텔레비전(CGTN)의 영국 현지 방송 근황을 전했다. CGTN은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 산하 선전기관인 CCTV의 글로벌 채널이다.

이에 따르면 CGTN은 영국의 무료 지상파 서비스인 프리뷰(Freeview)를 통해 영국에서 시청할 수 있다. 영국 BBC 등 50여 개 채널을 제공하는 이 방송을 수신하려면 디지털 텔레비전에 15유로(약 2만원)짜리 전용 셋톱박스만 설치하면 된다.

그러나 실제로 프리뷰 채널을 통해 CGTN을 시청하려면 방법이 좀 복잡하다. 프리뷰 셋톱박스를 설치했다고 모두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프리뷰 채널 264번인 비전(Vision)TV가 나오는 호환기종이어야 한다.

비전TV에 들어가면 다른 채널과 함께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나오는데, 여기서 CGTN을 선택해야 볼 수 있다. CGTN을 선택하면 경고 메시지가 표시된다. “평소 TV에서 볼 수 없는 프로그램과 광고를 보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런 메시지가 붙은 것은 CGTN이 여전히 영국에서 정상적으로 방송할 수 없는 채널임을 시사한다.

‘전 세계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시진핑’을 주제로 한 CGTN 방송 프로그램의 일부가 지난 2월 4일(현지시각) 한 모니터에 표시되고 있다. | Leon Neal/Getty Images

영국에서 퇴출된 CGTN, 프랑스 통해 영국 재진입

영국 방송·통신 규제기관인 오프콤(Ofcom)은 지난 2월 CGTN의 방송면허를 취소했다. 편집권이 방송국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에 있다는 게 이유였다. 영국 방송법에 따르면 방송 콘텐츠에 대한 편집권을 가지고 있어야만 방송면허가 발급된다.

이 결정은 중국 공산당의 프로파간다를 전 세계에 퍼뜨리는 CGTN의 행보에 치명적 타격이 됐다. CGTN은 2019년 런던에 유럽법인을 세운 뒤, 영국 면허를 통해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방송해왔기 때문이다. 영국 면허 취소로 CGTN은 유럽 전역에서 퇴출될 위기에 놓였다. 실제로 같은 달 12일에는 독일에서 송출이 중단됐다.

CGTN은 이 같은 위기를 프랑스를 통해 넘겼다. 영국에서의 퇴출과는 별개로 지난해 12월 프랑스에 신청한 방송면허가 3월 발급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중국 정부나 공산당, CCTV 측이 프랑스 정부와 별도 접촉을 가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영국에서 퇴출돼 유럽시장에서 철수할 위기에 놓이자마자 프랑스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는 점은 매우 공교롭다.

CGTN의 영국 방송 재개를 전한 중국 매체의 지난 8월 20일자 기사 | 화면 캡처

CGTN “영국 방송 재개”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백도어’

올해 8월 20일, 중국 관영매체들은 “CGTN이 영국에서 방송을 재개했다”는 보도를 일제히 쏟아냈다. 영국의 규제를 억눌렀다는 의기양양한 어조가 담겨 있었다.

중국의 인권탄압을 추적해온 SGD는 이와 관련해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고 논평했다. 영국 방송법에 따르면, CGTN의 영국 방송은 여전히 불법이다.

다만, 유럽 거의 모든 국가에 적용되는 방송협약(ECTT)을 통해 CGTN은 영국에서 방송할 권리 일부를 되찾았다.

그러나 영국 IP-TV업계가 한번 방송법 위반으로 퇴출된 채널과는 다시 계약하는 것을 꺼리는 관행을 가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CGTN과 계약하려는 업체가 거의 없다는 게 SDG의 설명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영국 방송계의 분위기 속에서 CGTN을 편성한 무료 지상파인 ‘프리뷰’를 주도하는 기업이 영국 BBC라는 사실이다.

BBC는 영국 당국의 CGTN 퇴출에 격분한 중국 당국의 보복으로 중국에서 면허가 취소됐다.

중국 국가라디오텔레비전총국은 작년 2월 영국 오프콤이 CGTN의 방송면허를 취소하자, 영국 BBC 월드 채널을 방송 금지했다. 방송 가이드라인을 심각하게 위반했다는 이유를 댔다.

BBC는 전 세계에 영어로 방송되는 해당 채널이 중국에서는 국제호텔과 일부 외교공관에만 방송돼 중국 현지인들은 시청하기조차 어렵다며 이번 조치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영국 BBC의 베이징 사무소 | AFP=연합

CGTN 영국 퇴출 주도한 인권단체 “계속 주시할 것”

중국 CGTN의 근황을 전한 국제 인권단체 SDG는 영국에서 CGTN 퇴출을 주도한 단체다. 이 단체는 평소 CGTN을 비롯한 중국 관영방송을 모니터링하며 인권탄압 여부와 방송의 공정성 등을 감시해왔다.

단체 측은 “1만4천명의 직원을 거느린 세계 최대 미디어 CCTV의 자회사인 CGTN 유럽법인은 현재 잘 알려지지 않은 채널에서 IP-TV로 송출하는 데 머물고 있다”며 전했다.

이 소식을 보도한 영국 RX TV는 “중국 관영방송 소유 채널(CGTN)이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백도어를 통해 영국에서 다시 방송하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