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硏 “싱하이밍 ‘베팅’ 발언, 중국에 우호적 환경 만들려는 심리전”

이윤정
2023년 07월 25일 오후 6:16 업데이트: 2023년 07월 25일 오후 6:16

尹 정부 대외정책에 불만 표출
대중 경제의존도 언급하며 여론 압박
한중관계 악화 책임 한국에 있다는 프레임 확산

지난 6월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나온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의 ‘베팅’ 발언은 한국 정부의 반발을 야기하며 한중 간 외교 갈등으로 비화했다. 아울러 2016년 사드 사태, 코로나19 팬데믹, 한중 간 문화 갈등 등으로 확산한 한국 내 반중 정서를 자극하며 한국의 대중국 인식을 악화시켰다.

이와 관련해 아산정책연구원은 7월 20일 발간한 이슈브리프 ‘중국의 대한국 압박,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서 싱하이밍 대사의 발언과 관련해 “개인적이고 돌발적인 것이라기보다 다분히 중국 정부와의 공감하에서 나온 의도적인 것”으로 분석했다.

아산정책연구원 차두현 외교안보센터장과 이동규 지역연구센터 대외협력실장이 공동 작성한 보고서는 “향후에도 싱 대사의 발언과 같은 ‘찔러 보기’식의 외교적 압박, 북한 카드를 활용한 한국 내 초조감 유발, 경제보복과 같은 실력 행사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싱하이밍 대사 발언에 나타난 중국의 의도와 계획

보고서는 싱 대사가 한국 국내 상황에 익숙한 점을 고려할 때, 이것이 한중관계의 회복과 발전을 위한 개인적 발언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오히려 발언 내용이 중국 정부나 중국 언론이 그동안 보여줬던 대(對)한국 인식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싱 대사의 발언은 중국 정부가 의도한 일이며 그 기저에 정치∙외교적 계산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싱 대사의 발언을 조목조목 분석했다.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처리할 때 외부 요소의 방해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미국이 전력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 속에서 일각에서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그런 베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다.”

이 발언에 대해 보고서는 “윤석열 정부 취임 이후 중국 내에서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공존했다”며 “중국은 보수 성향의 한국 정부가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미국의 반중 연대에 동참할 것을 우려하는 한편, 한국의 대중 경제 의존도, 여소야대의 국내 정치적 상황 때문에 중국을 의식할 수밖에 없으며 미국에 완전히 경사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전략적 명확성(strategic clarity)’에 기반한 대외정책을 추진하고 있음이 점차 분명해지고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정책 방향을 추진해 나가자, 중국으로서는 확실하게 자국의 불만을 표시해야 한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보이는 현재 행태에 대해 보고서는 “한중관계에서의 힘의 차이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한국이 당연히 수용해야 한다는 희망적 사고가 실현되지 않는 것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지극히 편향된 일방주의”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대중국 무역 적자가 확대되고 있는 문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경제 상황이 좋지 않고 반도체 경기가 하강 국면에 들어서는 등 객관적 원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각에서 탈중국화 추진을 시도한 것이 더욱 주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선 한국의 대중 경제 의존도를 상기시킴으로써 중국의 경제 제재에 대한 불안감을 자극하고 한중 협력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발언으로 해석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기 하강에 대한 우려가 한국 내에 확산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IPEF 및 칩4 참여, 전략물자 다변화 등의 경제정책을 통해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기여하고 한국의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의 토대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싱하이밍 대사는 이것을 탈중국화로 규정하고 한국의 대중국 무역 적자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한국의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중국과 타협하고 현 대외정책의 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전하고 중국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다.

“현재 양국 관계가 많은 어려움에 부딪혔지만, 그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

이 발언은 한중관계의 악화 책임이 한국에 있다는 프레임을 중국은 물론, 한국 내에도 확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프레임이 한중 양국에 확산한다면 그것은 자유민주주의국가이자 경제 대국으로서 한국이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외교정책이 결국 한중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인식을 확대함으로써 한국 정부의 외교정책의 공간을 위축시키고, 특히 중국과의 관계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중국에 우호적 환경 조성하려는 ‘심리전’

보고서는 싱하이밍 대사가 예전과 같이 언론 기고의 방식이 아니라 야당 대표와 만나 이러한 발언을 한 것은 한국의 분열된 여론을 이용해 중국에 유리한 정치환경을 조성하려는 저의가 있다고 봤다.

특히 싱 대사가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등 특정 이슈에 대해 언급하면서 윤석열 정부와 다른 입장을 보인 것에 주목하면서 “보수·진보로 양분된 한국 내 여론 속에서 청중의 정치적 성향을 이용해 중국에 우호적 환경을 조성하려는 ‘심리전’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다”고 짚었다.

보고서는 “이것이 단기적으로 한국 정부와 대다수 국민들의 반발을 야기할 수 있지만, 한국 내 진보 성향의 여론에 동조하는 행위는 장기적으로는 한국이 미국과 같은 초당적 입장으로 중국과의 관계에 접근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하며 국내 정치의 변동에 따라 한국의 대중 정책이 전환될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의도도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중국의 대한(對韓) 압박에 대응하고 상호존중의 한중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한국 정부는 5가지 사항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유민주주의국가로서 다양한 국제 현안에 대해 한국의 입장 명확히 표명 ▲중국의 외교적 결례·압력에 대해 일관적·원칙적 대응 ▲국제사회와 연대 강화로 중국의 압박에 공동 대응하는 네트워크 구축 ▲현재 중국의 대북정책이 중국에도 이익이 되지 않음을 각인 ▲갈등 사안과 별개로 협력적 의제 모색 협력 및 공감대 확대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