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中, 남미서 ‘군사·감시 주도권’ 급속히 확장

오텀 스프레더만(Autumn Spredemann)
2023년 07월 17일 오후 9:12 업데이트: 2023년 08월 7일 오후 4:51

중국의 군사 및 감시 이니셔티브(주도권)가 남미 전역에서 급속한 확장세를 보이면서 미국에 또 다른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아르헨티나 최남단 티에라 델 푸에고 제도의 구스타보 멜레야 주지사는 법령 3312/22를 통해 중국이 건설, 운영하는 ‘다목적’ 항만 시설을 승인했다. 멜레야 주지사는 “이번 건설의 원활한 진행은 중국 기업들이 아르헨티나 남부에 투자하는 데 있어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법령은 같은 날 주 의회에서 곧바로 통과됐으며, 중앙 정부의 최종 승인만을 남겨둔 상태다.

중국은 이미 아르헨티나 네우켄 지역에 중국군 산하의 우주연구소를 설치해 운영 중이기도 하다.

중국공산당(CCP) 산하 기업인 산시화학공업그룹이 이번 티에라 델 푸에고 항구 건설에 참여한다. 표면적으로는 민간 프로젝트를 표방하지만, 전략적 가치가 있는 모든 자산이 중국공산당의 어젠다를 추진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 국무부는 중국 공산당이 중국 기업들에 회사 자산·기술을 중국군과 공유하도록 강제하는 ‘민군융합’ 전략을 강화하는 데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앞서 지난 3월 로라 리처드슨 미 남부사령부 사령관을 비롯한 미군 고위 간부들은 최근 남미 대륙에서 일어나는 중국의 공격적인 확장세가 미국에 장기적인 위협이 아니라 “지금 이미 일어나고 있는 위협”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3월 8일 열린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리처드슨 장군은 “중국은 항구 건설, 자원 추출, 약탈적 투자 관행을 통해 정부를 조종하고 잠재적 민군 겸용 우주 시설을 건설하는 능력을 키워왔다”고 발언했다.

전 아르헨티나 정부 관계자와 보안 분석가들 또한 리처드슨 장군의 의견에 동의, 티에라 델 푸에고 제도에 건설 중인 중국의 새 항만 시설이 군사 및 감시 용도로 사용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중국은 대서양과 태평양, 다시 말해 서반구와 동반구를 잇는 자연 항로인 마젤란해협 근처에 항만 시설을 짓는다. 세계적으로 중요한 항로에 중국이 직접 접근하고 더 나아가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쿠바 아바나 항구에 입항한 중국 해군 함정을 향해 사람들이 쿠바 국기와 오성홍기를 흔드는 모습|Yamil Lage/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부차적인 이익들

최근 쿠바의 상황을 살펴보면 중남미 국가와 중국공산당의 협약이 통상 어떻게 전개되는지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인민해방군이 전 세계에 군사기지를 만들어 군사 영향력을 확대하고 전 세계 군수보급망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인 중국의 ‘141 계획’에 대한 기사를 게재했다.

보도에 따르면, 쿠바 내 중국과 공동으로 운영하는 감청기지 4곳이 가동 중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처음에는 해당 보도를 부인했던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은 2019년부터 쿠바에 스파이 기지를 두고 있다”며 뒤늦게 사실을 인정했다.

쿠바 태생의 올란도 구티에레즈 보로나트 지역 분석가 겸 작가는 에포크타임스에 “중국공산당 정권과 쿠바 정권 간에 모든 단계의 필수 동맹이 있다고 확신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중국과 쿠바가 군사적으로 협력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보로나트는 양국 간 더 깊은 수준의 안보 관여가 공산주의 쿠바 정부의 권력 및 장악력을 더욱더 굳건히 유지하는 데 힘을 보탤 것으로 믿는다는 입장이다.

보로나트는 “우리는 지난 2021년 7월에 있었던 쿠바 국민들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 당시 중국 기업들이 쿠바 내 인터넷 접속을 차단한 사실을 알고 있다”고 지적하며 “(나는) 쿠바 정권이 자국민으로부터 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을 필요로 한다고 본다”고 했다.

남미에서 쿠바 정권만 자국민과 갈등을 겪는 게 아니다아르헨티나에선 오는 10월 치러질 대선이 다가오면서 현 페론주의 정부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경제 안정에 힘쓰고 있다고 내부 관계자들은 전했다.

문제는 아르헨티나 정부 발행 수표의 현금화 과정에 중국공산당과의 협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에반 엘리스 미국 육군전쟁대학 전략연구소 연구교수는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아르헨티나에 건설될) 항만 시설이 민간 시설이라 할지라도 그 시설을 운영하는 이들에게는 시설이 창출하는 기회가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엘리스 교수는 중국이 남미 지역에 개입하는 목적은 대부분 경제적인 데 있다면서도 중국공산당이 부차적인 이익과 군사적 목적을 위해 ‘전략적 공간’에서 ‘점점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티에라 델 푸에고의 항만 시설은 전략적·군사적으로도 활용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이와 관련해 엘리스 교수는 “중국은 군사적 옵션을 만들려는 욕구를 숨긴 적이 없다”며 “아르헨티나의 다목적 항만 시설, 쿠바 내 중국과의 공동 운영 감청기지 등이 큰 위협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중국은 확실히 자신들의 힘을 강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국 입장에서는 전략적 옵션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잊힌 프로젝트

아르헨티나 일부 연방하원 의원과 시민단체 회원들은 멜레야 주지사가 승인한 이번 법령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 의사를 제기했다.

시민단체는 멜레야 주지사 외에 다른 내각 관계자들까지 국가 안보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고발된 명단 중에는 아구스틴 로시 아르헨티나 수석장관도 포함됐다. 그 밖에 산티아고 카피에로 외교장관, 호르헤 타이아나 국방장관 등 고위 관료들이 고소장에 이름을 올렸다.

로시 수석장관은 즉각 대응하고 나섰다. 로시 장관은 “티에라 델 푸에고에 중국 항구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기사 보도 시점까지 공식적인 판결은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멜레야 주지사는 중국과의 협상을 철회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또한 산시그룹과 체결한 기존 양해각서(MOU) 공표 과정에서 특별한 입법 승인이 필요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해당 프로젝트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입법 승인과 의회 보고가 요구된다.

비록 정치적 교착 상태에 머물러 있지만, 중국이 추진 중인 아르헨티나 항구 건설 및 운영 프로젝트는 세계의 밑바닥에서 전략적 발판을 마련하려는 중국의 야망을 잘 보여준다.

국제통화기금(IMF)|Yuri Gripas/Reuters/연합뉴스

선택적 애국주의

현재 아르헨티나의 좌파 포퓰리즘 ‘페론주의’ 정권만큼 중국의 열렬한 우방을 찾기는 힘들다. 특히 크리스티나 키르치네르 아르헨티나 부통령은 가장 열렬한 페론주의 지지자다.

자칭 ‘전투적’ 페론주의자인 키르치네르 부통령은 지난 2007~2015년까지 아르헨티나 제53대 대통령으로 재임했다. 재임 기간 키르치네르 부통령(전 대통령)은 재앙과 다를 바 없는 경제 정책으로 오늘날 아르헨티나의 천문학적 인플레이션을 야기한 토대를 마련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지난달 아르헨티나 경제학자 카를로스 페레즈는 2023년 아르헨티나의 인플레이션이 평균 147%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데 반해 GDP는 3.5%까지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는 급락했다. 공식 환율에 따르면 페소화는 아르헨티나의 채무불이행, 외환보유고 감소, 빈곤율 급증 등으로 인해 지난 1년 동안 미국 달러 대비 가치가 절반 이상 떨어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키르치네르 부통령의 지지층은 정치인들, 일반 유권자들 모두에서 여전히 굳건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알려진 ‘키르치네르주의’의 핵심 철학 중에는 중국에 우호적인 성향이 포함된다.

멜레야 주지사는 철저한 키르치네르주의자로 꼽힌다. 전 아르헨티나 정부 관리이자 정치 분석가로 활동 중인 파비안 칼레는 에포크타임스에 “멜레야 주지사의 입장은 매우 친중적”이라고 전했다.

칼레는 항만 시설을 둘러싼 논쟁과는 상관없이 아르헨티나 정부가 해당 프로젝트를 승인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아직 프로젝트가 완전히 통과되지 못한 건 아르헨티나 내부에서 제기된 논란 때문이 아닌, 세계은행 및 국제통화기금(IMF)과의 추가 대출 및 상환 연장 협상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올해 3월 국제통화기금은 아르헨티나를 위한 구제금융 53억 달러(한화 약 70조원) 지원을 예정했다. 여기에 아르헨티나 연방정부의 심각한 외환보유고 부족 수준이 사태를 더욱더 악화시키고 있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비롯해 궁지에 몰린 현 페론주의 정권 역시 투자와 경제 원조를 갈망하고 있다.

아울러 중국은 언제나 수표를 쓸 준비가 돼 있다. 정부 문서에 따르면, 중국 국영 군수기업 노린코그룹은 지난 4월 타이아나 아르헨티나 국방장관과 만나 탄약·장갑차 현대화, 개인 보안 장비 등과 관련된 무기 거래를 논의했다.

아르헨티나 국민은 대부분 중국의 항구 운영 프로젝트를 반기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중국군이 아르헨티나 정부 관계자조차 특별한 허가 없이는 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시설을 건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중국군은 이미 아르헨티나 네우켄 지역에 위성 추적 통제소인 우주연구소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칼레는 “아르헨티나에는 이미 중국 군사 기지가 있고, 아르헨티나는 중국 군사 프로그램과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르헨티나 정치인들이 외국의 군대를 자국으로 끌어들이는 것에 관한 대응 방식에 명확한 기준이 없다고 꼬집었다. 칼레는 “(현 페론주의 정권은) 미군 산하 기지일 경우 ‘아르헨티나 주권을 침해하는 일’, 중국군 산하 기지일 경우 ‘환영할 일’이라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키르치네르 지지자들의 애국심은 ‘선택적’이라는 것이다.

티에라 델 푸에고 국립공원|Juan Mabromata/AFP/Getty Images/연합뉴스

하늘의 눈

아르헨티나 최남단 티에라 델 푸에고에 위치할 중국의 항만 시설은 빠르게 확장세를 보이고 있는 중국공산당의 감시 네트워크에도 이점을 제공한다.

극지 궤도에 있는 위성과 통신할 수 있는 기지국·항구를 보유할 경우 지구 전체를 관측하는 데 이상적인 커버리지가 확보된다. 여기에는 적도에 가까운 위도에서 측량하기 어려운 원격 지역도 포함된다. 그뿐만 아니라 커버리지 기반 외 신호 선명도, 전송 능력을 제고할 수 있다.

항만 시설이 오지에 위치해 있다는 점도 또 다른 이점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티에라 델 푸에고는 남극 대륙을 제외한 최남단 육지이자 연중 인구가 15만 명에 불과한 지역이다. 이리나 추커맨 보안 분석가는 에포크타임스에 “이곳은 외딴곳이다. 사람들이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오는 곳이 아니다”며 은밀하게 무언가를 옮기는 데 외딴 항구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 기관의 간섭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중국공산당의 우주연구소 건설도 허용한 바 있는 아르헨티나의 전적을 고려할 때, 새로 지어질 항구를 통해 은밀한 작업이 실시될 가능성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추커맨은 새로 지어질 항구가 주요 화학 물질과 광물에서부터 무기나 마약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옮기는 데 이상적이라고 표현했다.

나아가 아르헨티나의 경제 위기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아르헨티나는 수십 년 만의 기록적인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이 같은 절박한 상황에서 아르헨티나 정부가 중국군에 도움을 요청하는 성급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스리랑카도 아르헨티나와 똑같은 일을 겪었다. 스리랑카 정부가 중국 차관 10억 달러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하자 2017년 중국은 스리랑카 남부 항구 운영권을 99년 동안 넘겨받기로 하고 항구를 장악했다.

이후 지난해 8월 중국 해군 함정이 스리랑카 항구에 입항했다. 인도양의 주요 항로 근처에 위치한 이곳까지 중국 해군이 접근함으로써 미국과 인도는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바 있다.

추커맨은 동일한 ‘부채 함정’ 외교 방식이 아르헨티나나 남미 다른 국가에도 쉽게 적용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그러면서 “아르헨티나에 대한 재정적 통제 측면에서 중국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엘리스 교수 역시 “중국은 항상 매우 광범위하게 그물을 던져왔다”면서 중국이 정치·경제·군사·미디어·학계·에너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측면에서 다른 국가들에 전략적으로 관여,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 기사는 번역 및 정리에 황효정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