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불러온 기적…‘성녀 크리스티나의 순교’

[시리즈 칼럼] 고전회화는 사람의 내면에 무엇을 남기는가

에릭 베스(Eric Bess)
2021년 03월 2일 오후 1:27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6:15

필자는 때때로 우리가 흔히 일컫는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지곤 한다. 철학자 소렌 키에르케고르는 믿음은 개인들이 절대적인 신(the Absolute)과 절대적인 관계(an absolute relationship)를 맺는 것이라며 찬양했다.

물리적인 증거가 필요 없는, 무언가에 대한 의심할 여지가 없는 믿음. 그런 믿음에는 힘이 있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영적 증거들을 얘기할 것이다. 그것들은 자신의 믿음에 대한 정당성을 확인하는 힘이자, 때론, 우리를 자신의 한계로부터 구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기적을 만들어 내는 힘이다.

사실, 많은 사람이 그들의 믿음을 의심하고 그것에 의문을 제기하지만, 이런 과정 역시 결국 믿음의 성장과 강화를 돕는 일부가 된다. 그러나 이런 확고한 믿음을 갖는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에 그런 믿음을 실천하는 사람들 역시 찾아보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여러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자신의 믿음을 굳건히 지켰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는 바로 성녀 크리스티나(St. Christina)다.

성녀 크리스티나

크리스티나는 3세기에 살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지역의 군수였으며, 쾌락주의 교리를 섬기는 우상 숭배자였다. 그는 자신의 딸이 쾌락주의 사제가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딸을 여러 우상과 함께 방에 가두고 우상을 숭배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크리스티나는 창밖으로 펼쳐진 웅장한, 그리고 조화로운 우주를 날마다 내다볼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그녀와 함께 방에 갇힌, 인간이 만든 우상들 너머에 창조주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게 됐다.

크리스티나는 금식하며 신을 알게 되기를 기도했다. 간절한 기도를 통해 그녀는 자신의 내면에서 깊은 사랑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계속 금식하며 기도하는 그녀에게 한 천사가 내려와 기독교 신앙에 대해 가르쳤다. 하지만 천사는 그녀가 그 신앙을 위해 고통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망설임 없이, 크리스티나는 방안의 모든 우상을 부수고 없앴다. 그녀의 방에서 우상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된 아버지는 그녀에게 물었지만, 그녀는 그와 대화하길 거부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하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내라고 했고, 크리스티나는 그들에게 그녀의 새로운 신앙에 대해 고백했다.

딸의 변화를 알게 된 아버지는 매우 화가 났다. 그래서 그녀의 신앙을 이유로 자신의 딸을 고통받게 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딸을 감옥에 보내기 전에 그녀의 하인들을 처형하고 매질했다.

아버지는 크리스티나를 구타하고 고문해 그녀가 신앙을 저버리도록 하려 했지만, 그가 한 일들은 전혀 소용이 없었다. 그녀가 고문당하고 죽음의 위험에 처할 때마다 천사들이 나타나 그녀를 구했고 그녀의 상처를 치유했다. 마침내 아버지는 크리스티나를 처형하기로 했지만, 그 계획을 실행하기 전날 밤 죽음을 맞았다.

새로운 군주는, 크리스티나의 아버지보다 더 사악했다. 그 역시 크리스티나를 잔인하게 고문했지만, 그녀는 결코 믿음을 잃지 않았고, 고난에서 모두 살아남았다. 더욱이, 그녀의 믿음과 결심은 다른 사람들에게 기독교 신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신임 군수는 그녀가 결코 신앙을 포기하지 않을 것을 확신하고 결국 그녀를 처형했다.

비센테 팔마롤리(Vincente Palmaroli)의 ‘성녀 크리스티나의 순교’, 1895년,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 |Public Domain

‘성녀 크리스티나의 순교’

1500년이 지난 1895년, 스페인 화가 비센테 팔마롤리(Vincente Palmaroli)는 ‘성녀 크리스티나의 순교(The Martyrdom of Saint Christina)’를 그렸다. 팔마롤리는 아버지가 크리스티나를 죽이려 했던 사건 중 하나를 묘사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딸을 무거운 바위에 묶어 깊은 호수에 던지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천사들이 나타나 그녀를 풀어주고, 호수 위에 떠 있게 했다.

팔마롤리는 성녀 크리스티나를 작품 중심 바로 오른쪽에 배치했다. 그녀는 순결함을 상징하는 흰색 드레스를 입고 있다. 밧줄로 바위에 묶인 채, 그녀는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있다. 황갈색 머리카락 사이로 바람이 불고 그녀는 고개를 약간 숙여 기도하고 있다.

한 천사가 크리스티나의 바로 오른쪽에 보인다. 천사는 크리스티나를 바라보며 그녀가 묶인 무거운 바위에 가볍게 손가락을 대어 그녀와 바위가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한 무리의 천사들이 그 뒤를 따르고, 그들은 모두 크리스티나의 믿음을 축복하며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연주한다.

크리스티나의 왼쪽에는 또 다른 천사가 떠 있는데, 전통적으로 육신의 유혹에 저항하는 순교자의 정신력을 상징하는 종려나무 잎을 하늘 높이 들고 있다.

여기에서 종려나무 잎은 그녀로 하여금 엄청난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하고, 천사와 기적의 세계에 접근 할 수 있게 하는, 그녀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힘’을 축복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믿음의 기적

팔마롤리는 천사들이 성녀 크리스티나를 돕고 축복하는 성스러운 장면을 보여주었다. 천사들이 없었다면, 그녀는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아 익사했을 것이다. 천사들은 불가능한 일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무거운 바위를 가볍게 만들었고 그녀가 가라앉지 않도록 했다.

실로 천사들은 크리스티나를 그녀 자신의 한계로부터 구해줬다. 그녀의 물리적 신체는 몸에 묶인 무거운 바위를 이길 수 없다. 천사의 도움이 없다면 그녀는 죽을 수밖에 없다.

때때로 우리는 감당하기 벅찬 짐을 짊어지게 된다. 이러한 짐들은 일이나 관계, 재정 문제 등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우리의 삶에 보이지 않게 침투해 우리의 영적 삶과 경쟁하는 부적절한 것들을 포함할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은 우리 스스로 감당하기 너무 어렵고 벅찬 것일 수 있으며, 우리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천사들은 그녀의 강력한 믿음 때문에 크리스티나를 도운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크리스티나에게 그녀가 거짓이라고 생각한 일련의 믿음을 강요했지만, 그녀는 확고하게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믿음을 지켜냈다.

믿음이 없었다면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믿음은 그녀가 경험했던 사랑을 더 깊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물리적인 세계를 넘어 천사와 기적의 세계를 열어줬다.

그렇다면, 성녀 크리스티나의 믿음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녀가 천사들에게 도움을 청했는가? 고난을 피하고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는 믿음인가? 아니면, 고난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고 신에 대한 끊임없는 찬양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그녀의 믿음인가?

여기에 이러한 질문의 중요성이 있다. 질문을 통해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서 우리가 정확히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탐구하고 볼 수 있다. 질문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모든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가정한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정말 얼마나 충실할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이 성녀 크리스티나처럼 즉각적이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믿음을 가질 수는 없지만, 믿음은 실천하며 강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믿음이라고 부르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시험하고 실천하고 강화할 수 있을까? 우리는 신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너무나도 순수하고 확고부동해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믿음을 실천할 수 있을까? 그리고 다시 한번 기적이 우리 세상으로 돌아오도록 만들 수 있을까?

예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나타내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은 나와 이것을 보는 모든 사람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과거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으며 미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인간의 경험에 대해 무엇을 제안하는가?’라고 질문할 수 있다.

 * 에릭 베스(Eric Bess)는 현재 비주얼 아트 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젊은 화가 겸 예술전문 기고가다. 고전회화를 중심으로 예술 작품 큐레이션에도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