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빈’ 英 배우 “환경? 아직은 전기차보단 내연기관차”

대니얼 Y. 텅
2023년 07월 5일 오후 7:14 업데이트: 2023년 07월 5일 오후 7:14

“배기가스만 놓고 보면 배출 없는 전기차가 맞지만”
“리튬이온배터리 오염 고려하면 내연기관차 더 타야”
언론·전문가 “일부는 사실과 달라…어설픈 견해” 비판

영국의 배우 겸 코미디언이 로완 앳킨슨이 전기자동차(EV) 구매를 늦출 것을 호소했다.

앳킨슨은 1990년대 영국 안방극장을 휩쓴 코미디 시리즈 ‘미스터 빈’을 연기한 인물로 지금까지도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주로 코미디 배우로 알려져 있지만 앳킨슨은 뉴캐슬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옥스퍼드대학에서 전기제어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엘리트이자 자동차 애호가다.

그는 지난달 영국 가디언 기고문에서 “전기차가 언젠가는 지구 환경에 도움이 되겠지만 아직은 그 날이 오지 않았다”며 “지금 타고 다니는 가솔린 자동차(내연기관차)를 오래 타는 것이 환경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앳킨슨은 배기가스만 놓고 본다면 매연을 배출하지 않는 전기차가 환경에 유익하지만, 자동차 생산 전반의 큰 그림을 놓고 본다면 상황이 매우 달라진다고 밝혔다.

그는 스웨덴 자동차 제조사 볼보가 발표한 자료를 인용해 전기차는 생산 과정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내연기관차보다 약 70% 더 많다고 지적했다. 핵심은 거의 모든 전기차에 탑재되는 리튬이온배터리에 있다.

전기차는 비슷한 체급의 내연기관차에 비해 200~300kg 이상 무겁다. 리튬이온배터리의 무게 때문이다. 성인 4~5명을 더 태우고 다니는 셈이다.

다 쓴 리튬이온배터리, 환경에 대한 영향은?

리튬이온배터리는 제조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요구하며, 주원료인 희토류는 채굴과 추출 과정에서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환경규제가 느슨한 중국이 희토류 생산 강국이 된 이유 중 하나다.

이렇게 생산한 리튬이온배터리는 현재 수명이 5년에서 최대 10년 남짓으로 추정된다. 전기차 사용 10년째가 되면 수명이 다한 폐리튬이온배터리 처리 방안이 또 다른 환경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남미 볼리비아 우유니 외곽의 소금평야지대에 리튬 추출을 위해 물을 증발시키고 있다. 2022.3.26 | Claudia Morales/Reuters/연합

테슬라의 모델S가 2012년 6월 출시, 미국 소비자들에게 인도된 점을 고려하면 미국은 올해부터 시작해 2030년까지 600만 개의 전기차 배터리 팩이 폐기물로 배출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앳킨슨은 이 같은 리튬이온배터리의 문제점을 거론하며 “기후위기와의 전투를 선도할 하드웨어를 잘못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기술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전고체 전지, 수소연료 전지, 합성 연료 등의 대안에 관해서는 “장기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겠지만 주류가 되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기술을 넘어선 더 큰 문제점으로 ‘자동차 3년 리스’라는 업계의 비즈니스 모델을 지적했다.

앳킨슨은 “3년 탄 차가 얼마나 훌륭한 상태에 있는지를 생각하면 이 모델은 세계적으로 천연자원의 엄청난 낭비인 것 같다”며 운전자들이 차량 관리법을 익혀 차를 오래 타고 다니면 그와 관련한 폐기물 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내연기관의 환경 문제는 엔진이 아니라 가솔린에 있으므로 가솔린 사용에 따른 환경 문제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차가 정말로 필요하다면 중고차를 사서 필요한 만큼만 차량을 운행하자고도 했다.

앳킨슨의 기고문은 워싱턴 포스트(WP) 등 다수 언론의 팩트 체킹(fact-checking·사실검증)으로 난타를 당했다. 최근 발전된 에너지 분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보인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비아냥도 있었다.

캘리포니아대학 산타바바라 캠퍼스의 기후·에너지 정책 교수인 리어 스톡스는 트위터에 “에너지 전문가도 아닌 90년대의 이상한 영국 유명인이 전기차에 관한 잘못된 정보를 가디언에서 퍼뜨리고 있음을 경애하라, 최고다”라고 꼬집었다.

네덜란드 아인트 호버 공과대학의 에너지 및 전기차 연구자인 오크 헥스트라는 앳킨슨이 중요한 사실들을 선별적으로 언급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앳킨슨은 현재의 배터리에 대해 불평하면서 보다 성능이 좋은 배터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암시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현재의 배터리를 통해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3분의 1로 줄이고 있으며 이는 자신이 연구를 통해 확인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동부 장쑤성 난징에 있는 리튬 배터리 제조사 ‘신왕다’의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배터리를 제조하고 있다. 2021.3.12 | STR/AFP via Getty Images/연합

가솔린·디젤차를 금지하려는 세계적 압력

앳킨슨의 기고문은 선진국 정부를 중심으로 탄소중립을 추진하는 국제적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발표돼 주목을 받았다.

그가 살고 있는 영국은 2030년부터 가솔린차와 디젤차의 신차 판매를 금지하고, 2035년부터는 하이브리드차도 판매를 금지할 계획이다.

수도 런던에는 초저배출구역(ULEZ)이 있어 수소나 배터리차 이외의 차량으로 이 지역에 진입한 운전자에게 하루 12.50파운드(약 2만원)의 부담금 지불하도록 강제한다. 이를 납부하지 않으면 160파운드(약 25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주 당국이 연방정부에 압력을 가해 2035년까지 가솔린차와 디젤차의 신차 판매 금지를 승인하려 하고 있으며, 호주에서는 수도 캔버라를 관할하는 특별자치구 정부 당국도 ‘제로(0) 배출 구역(ZEZ·제로 에미션 존)’ 지정을 검토하고 있다.

유럽 약 100개 도시에는 이미 ZEZ이 설치돼 최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PHEV)’은 이 구역에 진입하면 전기차 모드로 자동 전환한다.

온실가스 배출 저감을 위해 설립된 ‘도시 기후 리더십 그룹(C40)’은 2025년부터 시내 대중교통은 ZEZ 버스만 운영하고 2030년까지는 시내에 ZEZ를 구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