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중궁궐로 불리던 청와대 사라지나?

윤석열 당선자 정부서울청사로 대통령 집무실 이전

최창근
2022년 03월 14일 오후 6:12 업데이트: 2022년 03월 14일 오후 6:12

윤석열 당선자 청와대 혁파 공약
정부서울청사에 대통령실 및 보좌진 사무실 마련
백악관 웨스트윙 모델

5월 10일 제20대 대통령 취임을 앞둔 윤석열 당선자의 ‘1호 공약’은 대통령 집무실의 광화문 이전이다. 아울러 ‘옥상옥(屋上屋)’ 식으로 정부 각 부처 위에 군림해 온 청와대 대통령 보좌조직 감축 문제도 실현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구체적으로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 이전, 민정수석비서관실을 비롯한 부문별 수석비서관실 폐지, ‘영부인’ 호칭 변경 및 기존 영부인(대통령 배우자) 담당 제2부속실 폐지 등이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공약은 대선 단골 공약 중 하나이다. 1992년 당선된 김영삼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광화문 청사에 집무실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1998년 취임한 김대중 전 대통령도 광화문 청사를 검토한 바 있다. 2012~2017년 재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때 ‘충청권 수도’를 공약하면서 청와대와 정부 부처의 이전을 약속했다. 하지만 수도 이전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나면서 청와대 이전도 불발됐다.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의 정부서울청사. 중앙행정기관을 집중 수용함으로써 행정능률의 제고와 국민의 행정기관 이용 편의를 증진하기 위해 1970년에 건립됐다. 1997년 정부세종로청사, 1999년 정부중앙청사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2013년부터 정부서울청사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본관에는 국무총리 집무실, 통일부, 여성가족부, 금융위원회 등이 입주해 있다. | 연합뉴스.

5월 퇴임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도 2012년, 2017년 대선 때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 이전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2019년 1월, 광화문대통령시대준비위원회 자문위원을 맡았던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집무실 이전 백지화를 발표했다. 경호와 공간이 문제로 작용했다. 헬기장 등을 갖추고 있는 청와대 집무실만큼의 대체 부지를 광화문에서 찾기 어렵고, 대통령 집무실 근처 100m 내에서는 집회시위가 금지돼 있어 광화문광장 조성 취지와도 어긋난다는 문제가 주원인이었다. 대신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청와대 본관 집무실이 아닌 참모진이 근무하는 비서동 여민1관에 집무실을 마련하여 근무하고 있다. 본관 집무실은 국가 공식 행사, 외빈 접대 등에만 활용하는 형편이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공약이 나오는 이유는 왕조 시대 궁궐과 유사한 청와대의 비효율적인 청사 배치 때문이다. 현재 청와대 본관에는 대통령 집무실, 부속실, 국무회의가 열리는 세종실, 외빈 접대를 위한 백악실과 집현실 등이 있다. 본관에서 약 200m 떨어진 관저에는 대통령 숙소, 임시 집무실, 주방 등이 있다.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모들이 근무하는 비서동(여민관)은 세 개의 건물로 나뉘어 있다.

문제는 대통령이 근무하는 본관과 비서동이 약 500m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비서동에서 본관 집무실까지 도보 10~15분, 차량으로 5분이 소요된다. 본관에 도착해서는 2번의 보안 검사를 통과하고 최종적으로 제1부속실장을 거쳐야 대통령을 면담할 수 있다. 대통령 참모들의 수장인 비서실장조차 대통령을 만나려면 사전 면담 신청을 해야 한다.

청와대 청사 배치도. 본관, 영빈관, 관저, 비서동(여민 1,2,3관) 등이 따로 떨어진 구조로 되어 있어 대통령과 참모진 간 소통을 가로막는 물리적 문제로 지적받아 오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러한 형편 속에서 윤석열 당선자는 “현 청와대 구조는 왕조시대 궁궐의 축소판으로 권위 의식과 업무 비효율을 초래한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윤석열 당선자의 10대 공약에도 포함된다.

이번 주말 출범을 앞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도 청와대 개혁TF(태스크포스)를 설치했다. 청와대 개혁TF는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 옮기는 업무를 전담할 계획이다. 대통령 관저도 현재 청와대 내 관저에서 광화문 인근으로 정할 예정이다.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구중궁궐’에 갇히지 않겠다는 취지다. 종로구 삼청동 국무총리공관과 인근 안전가옥(안가)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윤석열 당선자의 공약이 실현되면 기존 청와대 부지는 국민들에게 개방하게 된다.

차기 대통령 집무실 이전 예정 장소인 정부 서울청사 9층 국무총리실은 화상 회의 등을 열 수 있는 통신 장비와 보안 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기 때문에 대통령 집무실로 바꾸는 데 어려움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청사 내 다른 층을 추가로 리모델링하여 대통령실 소속 보좌진이 근무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기존 국무총리실은 정부 과천청사로 이전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미국 대통령 집무실이자 관저인 백악관 서쪽 구역(웨스트윙) 대통령 집무실 배치도. 대통령과 보좌진의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 소통이 쉬운 구조로 설계돼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도 웨스트윙을 모델로 대통령실 사무 공간을 재편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 중 관건은 경호 문제이다. 이에 윤석열 당선자 측은 “문제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는 후보 시절 당초 공약 발표 현장에서 경호 문제가 지적되자 “충분히 검토했다.”며 “대통령이 어떻게 일하느냐가 중요하고 경호는 여기에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당선자 측의 공약 이행 의지에 주무 부처인 경찰청도 협조적이다. 3월 11일, 경찰청은 진교훈 차장 주재로 대통령 당선자 공약 분석회의를 열고 ‘대통령실 이전 준비 치안대책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했다. 위원장은 경찰청 차장, 실무 총괄은 경비국장이 담당하기로 결정했다. 경찰이 우선 검토할 사항은 대통령 집무실 등에 대한 경비, 그리고 광화문 일대 집회 시위 관리 방안 등이다. 경찰 관계자는 “경비상 어려움은 있지만 여건에 따라 조정은 가능하다”며 “당장의 집무와 일정을 소화하는 데는 큰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더불어 윤석열 당선자의 공약에서 눈여겨 볼 것은 청와대 조직 구조 변화이다. 정부 부처를 관장하는 분야별 수석비서관제 폐지와 더불어 전체 조직을 30% 감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국가안보실을 제외하고 2실장(비서실장·정책실장) 8수석비서관(정무·국민소통·민정·시민사회·인사·일자리·경제·사회), 2보좌관(경제·과학기술) 체제로 구성돼 있다. 윤석열 당선자의 구상대로라면 사실상 정책실이 사라지는 셈이다. 대신 대통령 직속 민관 합동위원회를 설치하여 주요 정책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민관합동위원회 사무실도 대통령집무실과 같은 정부서울청사 내에 마련될 계획이다.

결과적으로 윤석열 당선자의 공약이 이행될 경우 기존 청와대는 물리적·시스템적으로 사라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