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경찰, 中 영사관의 시위대 폭행에 “다수 범죄 확인”

한동훈
2022년 11월 25일 오전 11:33 업데이트: 2022년 11월 25일 오후 12:00

영국 경찰이 지난 16일 중국 영사관 관계자들이 반(反)공산당 시위대를 폭행한 사건과 관련 “다수의 범죄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맨체스터 경찰서는 최근 발표한 성명에서 중대범죄과 수사관들이 폭행 및 공공질서 위반 등 범죄 혐의에 대해 수사 중이라며 이같이 발표했다.

중국 공산당 대회 첫날이던 지난 16일 영국 맨체스터 주재 중국 영사관 앞에서는 홍콩 출신 인사 등을 포함한 30여 명이 “하늘이 중국 공산당을 무너뜨릴 것(天滅中共·천멸중공)”이라는 등의 글귀를 쓴 현수막을 걸고 시위했다.

얼마 후 중국 영사관에서 여러 명이 나와 시위대를 공격하고 현수막을 훼손했다. 이들은 시위대 중 한 명을 붙잡아 강제로 영사관 안으로 끌고 들어가 주먹과 발로 마구 폭행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영국 경찰은 중국 영사관 경내로 들어가 폭행을 중지하라고 경고했으나, 영사관 관계자들은 폭행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망설이던 영국 경찰이 폭행을 당하던 이를 끌어내 구조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맨체스터 경찰은 “처음에 평화적이었던 시위가 왜 격화됐는지 조사 중”이라며 “잠재적인 용의자와 피해자를 특정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이어 “민감한 사건인 만큼 객관적인 조사가 중요하다”며 “필요에 따라서 수사 상황 등 최신 정보를 적절하게 계속 알리겠다”고 전했다.

맨체스터 경찰은 현재 폐쇄회로(CC)TV 영상과 경찰관의 개인 캠코더 영상, 목격자 진술을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에 협조한 시민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이번 사건에 관한 영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온라인 접수창구를 통해 제보해줄 것을 요청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 등에 따르면 폭행을 당한 사람은 홍콩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30대 남성 밥 장으로 사건 후 입원치료를 받고 하루 만에 퇴원했다.

이 밖에도 사건 당시 장씨를 영사관 밖으로 구출해 철수하려던 영국 경찰관 1명이 부상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영국과 중국 사이 외교적 마찰로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정이위안(鄭曦原) 맨체스터 주재 중국 총영사가 연루된 것이 확인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영국 의회 외교위원회 의장인 보수당 의원 앨리샤 컨스는 지난 18일 “이 사건에 정이위안 중국 주재 맨체스터 총영사가 직접 개입했다”며 폭행에 가담한 중국 영사관 관계자를 모두 추방하거나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위대 폭행에 직접 가담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정이위안 총영사 스스로도 시인한 부분이다. 그는 영국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시위대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모욕하는 바람에 장씨의 머리를 잡아당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이위안 총영사를 비롯해 중국 외교부는 이번 사건의 원인이 과격한 시위대와 영국 경찰에 있다고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무법자들이 악의적으로 괴롭히고 중국 총영사관에 불법 침입해 중국인 직원에게 부상자가 발생했다”며 “중국 영사관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영국이 확실하게 책임을 다해 중국 대사관과 총영사관 관계자, 시설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기를 바란다”며 영국 정부와 경찰이 책임을 다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고 탓했다.

재외공관은 국제법상 불가침권이 인정돼 허가 없이 출입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시 사건을 촬영한 영상을 보면, 시위대는 영사관 경내에 진입하거나 영사관 관계자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영국 경찰은 일방적인 폭행을 휘두르는 영사관 관계자들을 저지하고 충돌을 막기 위해 경내에 진입했다.

보수당 이안 던컨 스미스 전 대표 등 영국 의원들은 중국 대사에게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정이위안 총영사 등 관계자 본국 송환 등을 요구해야 한다고 영국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영국 외무부는 영국 주재 중국 대사를 소환해 평화적인 항의행동을 할 권리와 영국 법령을 준수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으며,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증거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약속했다.

제시 노먼 영국 외무부 장관은 20일 “영국 경찰이 맨체스터 총영사관에 있는 중국 당국자들을 기소할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영국은 중국 영사관이 해당 당국자들의 외교특권을 박탈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노먼 장관은 “그렇지 않으면 외교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