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의무총감 “외로움, 하루 담배 15개비만큼 해로워”

베스 브레일리(Beth Brelje)
2023년 07월 17일 오후 6:26 업데이트: 2023년 08월 7일 오후 4:16

미국 연방 의무총감 비벡 머시(Vivek Murthy)가 외로움과 고립을 ‘현대 사회의 전염병’이라고 선언하며 공중보건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외로움은 하루 15개비의 담배를 피우는 것만큼 건강에 해롭다”고 강조했다.

최근 비벡 머시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82쪽 분량의 보고서 ‘외로움과 고립의 전염병(Our Epidemic of Loneliness and Isolation)’을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소셜 미디어와 전자기기 사용을 줄이고 가족 및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등 개인의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권장 사항을 제시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외로움은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와 국가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 연구 결과 외로움은 심혈관질환, 치매, 뇌졸중, 우울증, 조기 사망 등 치명적인 질병의 위험성을 높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사회적 고립이 개인에 미치는 영향은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해롭다.

대규모 인구 조사에서 건강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을 추적한 결과, 사회적 연결 정도가 개인의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추적 조사에 따르면 사회적으로 많이 연결된 사람들보다 사회적 단절이나 결핍을 경험한 사람들이 조기에 사망할 위험성이 더 높았다.

비벡 머시는 “개인의 고립은 사회 전체의 생산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며 “흡연, 비만, 약물 중독 등 공중보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자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연결’에 투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외로움이라는 전염병을 없애기 위해 개인과 가족, 학교와 직장, 의료 및 공중보건 시스템, 기업과 정부 및 종교 단체, 지역사회 등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로움에 취약한 유형

비벡 머시의 보고서에 따르면, 일부 유형의 사람들은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감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돼 있다.

여기에는 신체적 또는 정신적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 편부모 가정, 1인 가구, 청년층, 노년층 등이 포함된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특히 주목해야 할 집단은 청년층이다. 외로움을 느낀다고 응답한 청년의 비율은 1976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증가하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또 저소득층이 외로움을 느낄 가능성이 더 높았다. 연소득이 5만 달러(한화 약 6300만 원) 미만인 성인 63%가 외로움을 느낀다고 응답했는데, 이는 연소득 5만 달러 이상인 성인보다 10% 높은 수치다.

그 밖에도 소수 민족, 성소수자, 가정폭력 피해자 등이 사회적 고립감의 위험에 취약한 집단에 속한다.

비벡 머시 미국 연방 의무총감 | 연합뉴스

전통 가치의 약화

1970년대 이후 미국에서는 종교단체·동호회·지역사회 참여도에서 전통적인 가치가 약화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8년 진행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16%만이 지역사회에 강한 애착과 소속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지역사회 연결의 중요한 축이었던 종교 단체 소속 비율도 크게 감소했다. 갤럽, 퓨리서치센터, 전국여론조사센터가 공동으로 진행한 일반 사회 조사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미국 성인의 종교 선호도, 참여도가 꾸준히 감소했다.

1999년에는 미국인의 70%가 특정 종교 단체에 소속되어 있다고 응답한 반면, 2020년에는 그 수치가 47%로 대폭 감소했다.

보고서는 “종교 활동은 건강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고, 공유하는 가치와 신념을 중심으로 소속감을 형성하며 개인에게 의미와 목적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전통적 가족관이 사라지고 1인 가구가 증가하는 현상도 주목해야 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1960년대에는 미국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는 13%에 불과했다. 그러나 2022년에는 1인 가구 비율이 29%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1인 가구의 증가는 정신적 고립감과 사회적 단절을 심화하는 데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보고서는 “사회 구조의 붕괴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고독, 고립, 단절이 개인 간의 신뢰까지 떨어뜨리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소셜 미디어의 폐해

소셜 미디어는 가족 또는 친구와 편리하게 연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수많은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정보 불균형을 해소하는 등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면 만남의 기회를 줄이고, 개인 간 상호작용의 질을 저하해 사회적 단절을 유발한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이는 외로움, 고립감으로 인한 각종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조사 결과, 미국 청소년 및 65세 미만 성인 가운데 약 96%가 인터넷을 사용한다고 응답했다. 65세 이상 성인의 인터넷 사용률도 75%에 육박했다.

18세 이상 성인 3명 중 1명은 ‘거의 항상’ 온라인에 접속한다고 응답했다.

소셜 미디어 이용률은 극단적으로 증가했다. 소셜 미디어를 이용한다고 응답한 18세 이상 성인의 비율은 2005년 5%에서 2019년 약 80%까지 치솟았다.

또 2022년 기준 13~17세 청소년 중 95%가 소셜 미디어를 이용한다고 응답했으며, 그중 절반 이상이 “소셜 미디어를 끊기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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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단절

보고서에 따르면 외로움이나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 중 90%에게는 3명 이상의 친구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서 친구란 완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절친한 사이를 뜻한다.

그런데 2021년 기준, 전체 미국인의 49%는 절친한 친구가 3명 이하라고 응답했다.

보고서는 소셜 미디어 이용률 증가, 사회 구조 붕괴 등으로 기존의 네트워크 규모가 축소되고 사회적 단절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2003년부터 2020년까지 미국인들의 사회적 노출 평균값을 측정한 결과 혼자 있는 시간은 늘어난 반면, 친구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2003년에는 한 달에 평균 142.5시간을 혼자 보냈지만, 2020년에는 166.5시간으로 늘어났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무려 24시간이나 늘어난 것이다.

또한 2003년에는 한 달에 평균 30시간을 친구와 함께 보냈지만, 2020년에는 그 시간이 10시간으로 줄어들었다.

팬데믹의 부작용

보고서는 “우리 중 많은 사람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방식으로 외로움, 고립감을 느꼈다”며 “인생의 중요한 순간이나 행사 등이 취소됐으며 아이들은 친구와 교류하며 얻을 수 있는 값진 경험의 기회를 놓쳤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사람이 집과 직장을 잃었고, 사랑하는 부모와 형제자매를 만나지도 못했다”며 “우리는 이런 상실의 경험을 통해 불안, 스트레스, 우울, 슬픔, 분노, 고통을 겪었다”고 덧붙였다.

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가운데 약 25%는 팬데믹 기간에 가족과의 관계가 멀어졌다고 고백했다.

연합뉴스

사람에겐 사람이 필요하다(People Need People)

사회적 관계는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도 매우 중요하며 더 나아가 지역사회, 국가 전체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비벡 머시는 이 보고서를 통해 사회적 관계의 회복을 위한 권고사항을 제시했다.

그는 “사람들을 서로 연결할 수 있는 지역사회 인프라를 강화해야 하며, 사회적 관계 회복을 위한 공공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스트레스 해소, 정신건강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공중보건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사회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인식 제고도 중요하다”며 “부모는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리고, 자녀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이웃이나 친구에게 정기적으로 연락하며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들과 만나서 시간을 보낼 때만큼은 소셜 미디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기사는 번역 및 정리에 김연진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