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지방당국, 방역규정 위반자 조리돌림…“문화대혁명 떠올라”

김윤호
2021년 12월 30일 오후 1:52 업데이트: 2021년 12월 30일 오후 3:47

방역 수칙을 어긴 사람들은 공개 망신을 당해도 될까? 공산주의 국가에서 내놓은 답안이 국제사회에 파문을 던지고 있다.

지난 28일 중국 SNS에는 전신에 방호복을 입은 4명이 마찬가지로 방호복을 입고 경찰 조끼를 착용한 8명에게 붙들린 채 거리를 걷는 영상이 게재됐다.

이 영상은 인터넷 방화벽을 돌파한 네티즌들에 의해 중국에서 차단된 유튜브에도 올려졌다.

방호복을 입은 이들은 상체 앞뒤에 자신의 얼굴 사진과 이름 등이 적힌 팻말이 걸려 있었다. 방호복에 가려진 얼굴과 신상정보를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주변에서는 많은 사람이 몰려 이들을 구경했다. 경찰 병력이 질서유지를 하기도 했다. 즉 당국에서 마련한 ‘이벤트’라는 의미다.

이 ‘이벤트’는 중국 남부 광시좡족자치구 바이써(百色)시 징시(靖西)현 당국이 개최했다.

경찰에 붙들린 채 얼굴과 신상정보가 공개돼 망신을 당한 이들은 방역 규정을 어기고 베트남으로부터 밀입국한 베트남 남성 2명과 이들의 밀입국을 도운 중국인 2명이다.

중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들은 몰래 국경을 넘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4명 중 베트남 남성 1명이 코로나19 검사 양성 반응을 보여 국경 밀입국에 방역 방해죄 혐의까지 더해졌다.

에포크타임스 취재진이 사실 확인을 위해 29일 광시광족자치구, 바이쓰시 방역당국에 전화를 걸었지만, 모두 모르는 일이라며 징시현에 물어보라고 했다.

그러나 전화 연결된 징시현 방역당국 관계자 역시 밀입국 사건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체포된 용의자 4명 중 확진자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국경을 넘은 밀입국자 가운데 확진자가 나왔다는 사실을 방역당국이 모를 수 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 관계자는 “우리는 질병관리만 한다. 다른 정부 부처에 물어보라”며 “다른 부처에서 통합 관리해야 할 사안”이라고 책임을 떠넘겼다.

또한 징시현에 최근 확진자가 나왔는지 묻는 말에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답변을 회피했다.

중국 광시좡족자치구 바이써시 징시현에서 최근 방역규정 위반자들을 공개 망신주기 했다. | 화면캡처

이날 징시현 현지 주민들은 “공개 망신 주기가 실제로 일어났다”며 “징시현의 툰판(吞盘)마을에서 일어났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수소문 끝에 찾아낸 툰판마을의 한 주민은 “얼마 전 베트남에서 몇 명이 밀입국했다가 붙잡혀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는데 양성이 나와 20일 동안 격리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주민은” 어렸을 적 봤던 거리 망신 주기를 어른이 되고 나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살려고 무슨 짓이든 다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당국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문화대혁명 시절 투쟁을 떠올리게 하는 과격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는 의미다.

중국 온라인에서는 코로나19 규정을 어겼으니 망신을 당해도 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식 공개 망신 주기가 다시 등장한 사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중국 체제 내부에서조차 나오고 있다.

중국 관영매체인 신경보는 29일 논설위원의 기명 기고문을 통해 “사법당국은 1988년 ‘기결수, 미결수 거리 행진을 통한 망신 주기’를 엄격히 금지한 바 있다”며 지방당국이 관련법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이 기고문에서는 또한 “망신 주기 거리행진은 명백한 법치주의 위반”이라며 “방역 역시 법치의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광시 시민 리(李)모씨는 “법치주의를 운운한 신경보 기고문은 순 겉치레”라며 “코로나19 방역으로 전국을 공포 분위기에 빠뜨린 공산당 정권의 방역이 이미 법치를 무시한 문화대혁명식 통치”라고 말했다.

중국 평론가 원샤오캉(文小剛)은 “이번 사건은 지방 당국의 일탈이 아니라, 공산당 통치의 한 단면”이라며 “공산당은 일부 사람을 욕받이로 만들어 대중이 원망하고 분노하도록 조장하고, 이것(원망과 분노)이 특정 집단에 쏠리게 해 정권을 보호하는 일을 수십 년간 해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원 평론가는 “이번 사건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며 “자신 역시 언제든 거리로 끌려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망신 주기에 ‘잘했다’고 박수를 보낸 중국인들이 공산당의 세뇌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