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공산당에 굴복하지 않은 국가…리투아니아 의원 “타국에 모범”

강우찬
2023년 08월 14일 오후 3:04 업데이트: 2023년 08월 14일 오후 3:04

중화민국(대만)과의 관계를 강화해 중국 공산당(중공)으로부터 경제적 보복을 받아온 리투아니아가 이제는 중국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중공과 관계를 끊을 경우 경제적으로 몰락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우려와 달리 리투아니아 경제는 2022년 유럽 경제의 전반적인 불확실성과 인플레이션 속에서도 선방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평가가 내려진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20개국인 유로존의 7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5.3% 상승하며 전월 상승률 5.5%보다 상승 폭이 둔화했다. 다만, 식료품·주류·담배 가격은 10.8% 상승해 1년 이상 두 자릿수 상승률을 이어갔다.

리투아니아 통계청이 밝힌 7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7.4%로 유로존 평균보다는 높았다. 하지만, 통계청은 리투아니아가 비교적 인플레이션에 취약한 점을 감안하면 경제 역동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2022년 유로존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3.5%, 리투아니아는 GDP 671억 유로(약 97조6900억원), GDP 성장률2.2%를 나타냈다. 애초 중국의 경제 보복으로 경제가 침체하리라는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이다.

발트해 연안 국가로 인구 300만 명의 소국인 리투아니아는 유럽에서 가장 먼저 탈중공을 실행한 국가다. 2021년 5월 중공이 유럽 주요국과 체결한 경제협력체 ’17+1’을 탈퇴했다. 같은 날 에스토니아 역시 ’17+1’을 탈퇴했다.

리투아니아는 같은 해 11월 수도 빌뉴스에 대만대사관 격인 ‘대만대표처’ 설치를 허용하고 현판에 ‘대만’이라는 이름을 명시했다. 지금까지 외국에 설치된 이 기관의 정식 명칭은 ‘타이베이 대표처’였는데, 리투아니아는 ‘대만’을 직접 쓴 것이다.

중공은 즉각 보복에 들어갔다. 같은 달 리투아니아와의 외교관계를 ‘대사급’에서 ‘대리대사급’으로 격하했다. 리투아니아행 화물열차 운행을 중단하고 이미 중국으로 운송 중이던 수입품 통관도 거부했다. 독일 기업 등 유럽 기업들은 리투아니아와의 협력을 중단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자오리젠 중공 외교부 대변인은 “모든 책임은 리투아니아에 있다”며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으라”고 윽박질렀다. 사실상 중공의 유럽 문제 대변인 역할을 해온 추이훙젠 중국국제문제연구원 유럽연구소장은 리투아니아를 “쥐똥”이라고 비하했다.

중공은 “(리투아니아가) 스스로 반성하지 않는다”면서 발트해의 소국인 리투아니아를 경제적으로 고립시켜 말라 죽게 만들겠다는 위협을 분명히 했다.

리투아니아는 물러서지 않았다. 가브리엘리우스 란드스베르기스 외무장관은 “중국의 권력과 경제력이 크다는 걸 안다. 중국은 정치적 요구가 있을 때마다 힘을 휘두르고 모두 거기 동조한다. 이건 분명 우리가 생각한 세상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리투아니아는 베이징 주재 대사관의 외교관과 가족 등 19명을 긴급 철수시켰다. 중공은 외교관계 하향에 따라 리투아니아 외교관에게 신분증 제출을 요구했는데, 리투아니아는 이를 외교적 면책특권 박탈을 위한 사전 수순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과거 소련에 점령당해 50년간 공산독재에 시달린 리투아니아는 비록 국력은 강하지 못하지만 경제보다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한 역사적 교훈을 깊이 간직하고 전 국민이 이를 공감하는 국가였다.

중공이 예상하지 못한 것은 자유 진영 국가들이 거대 권력 앞에 맞선 약소국을 중심으로 결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먼저 지지 의사를 밝혔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리투아니아 외무장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중공의 압력에도 대만과의 관계를 강화한 리투아니아의 의지를 평가하고 국제 공조로 함께 맞서겠다고 약속했다.

유럽연합(EU)도 움직였다. EU는 중공의 경제적 압박이 리투아니아에 국한하지 않는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 부위원장은 “(중공은) EU 일개 회원국의 행동을 가지고 전체 회원국의 무역에 대해 공격한다”며 신속한 대응을 표방했다.

작년 4월 EU 집행위는 ‘EU의 국가 지원 규정’에 따라 중공의 제재를 받는 리투아니아 기업의 자금 조달과 무역 촉진을 위해 1억3천만 유로(약 1900억원) 규모의 지원 계획을 승인했다.

“우려했던 불이익 거의 없었다…대신 경제적 이익”

리투아니아 의회 마타스 마르데키스 의원은 최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공의 경제적 압박을 “탄압”이라고 묘사했다.

마르키데스 의원은 “베이징(공산당 지도부)은 리투아니아 탄압 초기에 대규모로 빠르게 제재를 가해 힘을 과시하는 동시에 대공세를 펼쳐 리투아니아 정부를 물러서게 하거나 심지어 해체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러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리투아니아 경제는 성장하고 있으며, 중공의 제재 이후 1년 반 동안 교역량은 오히려 45% 증가했다”며 “중국은 리투아니아를 통해 자신들을 따르지 않는 국가에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지 보여주려 했겠지만 현실은 그 반대였다”고 말했다.

마르키데스 의원은 “중국에 굴복하지 않더라도 잘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며, 다른 국가들도 모두 이를 목격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리투아니아는 당장 중국과 관계를 개선할 의도가 없다”며 “오히려 베이징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고 있다. 우리 대사관 직원들을 복귀시키고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처럼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호주 역시 중공의 경제적 보복을 받았지만 경제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사례다.

호주 인버레이 인근의 한 농장에서 밀을 수확하고 있다. 2021.1.12 | WILLIAM WEST/AFP via Getty Images/연합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호주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중공 바이러스)의 기원에 관한 독립적인 국제 조사단 파견을 촉구했다가 중공의 무역 보복을 받았다.

스콧 모리슨 당시 총리는 “(중공의) 협박에 굴복하거나 호주의 가치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앤서니 앨버니지 현 총리가 이끄는 중도좌파 성향의 노동당 정부가 작년 5월 출범한 이후 중공은 호주와 고위급 장관 회의를 재개했으며, 올해부터는 호주산 석탄과 목재 구매를 다시 시작했다. 또한 중공 상무부는 이달 초 호주산 보리에 대한 반덤핑 관세 부과를 종료했다.

이러한 변화는 중공의 제재가 호주 경제에 미친 영향력이 미비한 데 반해 중공이 받는 경제적 압력은 높아졌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호주 생산성위원회가 최근 수행한 새로운 모델을 적용한 결과, 중공의 제재가 호주 GDP에 미친 영향은 0.009% 감소에 그쳤다. 일부 기업의 피해가 크긴 했지만, 호주 기업들은 중공을 대체할 새로운 수출시장을 찾아냈다.

 

대만의 민간 연구기관인 ‘대만 싱크탱크’의 둥쓰치 부집행장은 “각국은 국가안보 분야에서 여러 이슈의 배후에 중공이 있으며, 중공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체제를 상대로 침략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우려해 왔다”고 지적했다.

둥쓰치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중공 지도부의 선택은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서는 안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중공 지도부를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을 굳어지게 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한때 중공이 자랑했던 경제력은 상실됐고 내수시장도 상황이 어렵다. 지방정부와 은행은 채무 리스크를 안고 있고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외국 자본은 중국 시장을 떠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각국은 중공과 거리를 두면서 국가안전, 특히 하이테크 분야와 사이버 보안 분야에서의 침투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며 “중공은 경제력이 약해지고 각국의 경계를 사면서 더는 과거와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리투아니아 같은 소국이 중공에 강경하게 대응하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것은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