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위안화 예금, 한 달 새 180조원 급증…해외 대거 유출 정황

강우찬
2023년 10월 17일 오전 11:26 업데이트: 2023년 10월 17일 오전 11:26

같은 기간, 홍콩 외환보유고는 3조원 이상 감소
전문가 “본토 자금, 홍콩서 달러 환전 후 해외로”

홍콩으로 위안화 뭉칫돈이 유입되고 있음이 확인됐다. 중국 본토 자금이 홍콩을 경유해 해외로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홍콩 금융관리국의 최근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8월 홍콩 은행권의 위완화 예금 규모는 전월 대비 6% 증가한 9625억 위안(약 178조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홍콩의 환율 안정을 위한 외환기금은 358억 홍콩달러(약 6조2천억원) 감소했다.

감소분 가운데 홍콩달러 표시자산을 제외한 금액(홍콩의 외환보유고)은 228억 홍콩달러(약 3조9천억원)로 전체의 63%를 차지했다. 즉 달러표시 자산이 3조 원 이상 빠졌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홍콩에 들어오는 위안화가 급증하는 동시에 달러화가 줄어드는 현상을 두고, 본토에서 들어온 자금이 달러로 환전돼 해외로 빠져나가는 흐름이라고 분석한다. 월간 수조 원대 자금이 중국-홍콩-해외로 유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관리국이 발표한 ‘8월 국경 간 거래’ 위안화 총액은 1조 1212억 위안(약 207조7천억원)으로 전월인 전월(약 189조4천억원) 대비 9.7% 증가했다. 외국과의 위안화 거래가 7월보다 약 10% 늘어난 것이다. 이 역시 외화 유출 흔적으로 풀이됐다.

8월 홍콩달러 및 외화 예금 증가폭과 비교하면 위안화 유입 증가세가 더욱 두드러진다.

위안화가 전월 대비 6% 증가하는 사이, 홍콩달러 예금과 외화 예금은 각각 전월 대비 0.4%, 0.8% 늘어나는 데 그쳤다.

홍콩은 역외(해외) 위안화 최대 결제 시장이다. 역외 위안화 결제의 약 70%를 차지한다.

위안화 환율은 중국 본토를 기준으로 역내, 역외로 나뉜다. 홍콩 및 기타 국가에서 거래되는 역외 위안화는 역외 환율을 형성하며, 이는 중국 중앙은행의 관할권 밖에 존재한다.

반면, 중국 본토에서 거래되는 위안화는 역내 환율이 적용되며 이는 중국 중앙은행의 통제를 받는다.

둘은 구분이 되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역내와 역외 위안화 환율 격차가 커지면, 투자자들이 달러화를 중국 밖으로 이동시켜, 해외에서 낮은 가격에 위안화를 매입한 후 다시 중국에서 달러화로 환전하는 등 수익을 노리는 일도 생긴다.

즉 역외 위안화 환율이 역내 환율 및 중앙은행의 금융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은행계좌를 개설하려고 홍콩을 찾는 중국 본토인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하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홍콩 은행을 이용하기 위해서다.

지난달 7일 오전 9시 은행이 문을 열기 전, 홍콩 캔톤로드(中港城)의 중국은행 지점 앞에는 전날 중국 시안에서 입국한 주(朱)모씨 등 수십 명이 줄을 섰다.

주씨는 “홍콩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기 위해 어제 입국했다”며 “10만 홍콩달러(약 1732만원)를 예치할 예정인데, 홍콩 은행에서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 본토 은행들은 지속적으로 금리를 인하하지만, 홍콩을 포함한 해외에서는 금리를 올리고 있어 예금주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위안화 가치가 하락하는 것도 이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다.

주씨는 “현재 중국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다들 향후 장기간 금리 인상이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그래서 많은 사람이 중국에 있는 돈을 해외로 옮기고 있다. 더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어서다”라고 말했다.

중국인들은 홍콩으로 건너갈 때 한 번에 최대 2만 위안(약 370만원)까지만 현금을 휴대할 수 있다. 주씨를 포함해 홍콩에 계좌를 개설하려는 중국인들은 여러 차례 본토와 홍콩을 오가며 자금을 옮기는 실정이다.

홍콩 금융업계 베테랑인 우(呉)모씨는 에포크타임스에 “중국인들은 중국 공산당 고위층은 홍콩으로 마음대로 거액의 자금을 빼돌리면서 사리사욕을 채우지만, 일반 중국인들에게는 자금 반출을 제한하며 차별을 가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홍콩의 유명 경제전문가인 로카충(羅家聡) 역시 “앞으로 홍콩과 중국 간 자금 이동이 엄격하게 통제될 것이며, 이 경우 위안화의 해외 이동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당국의 통제 이전까지 자금 흐름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위안화의 국제결제 수단화를 추진하는 중국 공산당의 금융 정책도 홍콩의 외환기금이 빠르게 줄어드는 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데이터에 따르면 8월 위안화 국제결제 점유율은 7월 3.06%에서 3.47%로 증가해 새로운 기록을 세우며 세계 5위를 기록했다. 이는 4위인 일본 엔화 3.68%와의 격차가 좁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홍콩의 경제 전문가인 왕젠(王劍)은 “8월 SWIFT 데이터에서 위안화 결제금액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중국 입장에서 그만큼 달러로 결제할 일이 줄어들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이어 “그런데도 홍콩의 외환기금이 감소했다. 동시에 홍콩으로 들어오는 위안화는 급격히 늘어났다”며 “이런 현상에 관해 가능한 유일한 설명은 홍콩을 거친 중국 자본의 해외 유출이 진행 중이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콩 금융관리국은 외환기금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 재정준비금 인출과 시장가격 재평가로 홍콩달러 표시자산이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주가변동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왕젠은 “외환기금에는 외환자산의 투자로 인한 이자수익 증가분도 포함된다. 따라서 이자수익 일부가 상쇄됐음을 감안하면 전월 대비 홍콩의 자금 유출 폭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금 유출의 주된 이유로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인한 중국과의 금리 격차 확대를 꼽았다. 높은 수익을 찾아 자본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로카충은 지난 12일 에포크타임스 기고문에서 미국 장기채권의 수익률이 향후 수십 년 동안 높을 것으로 예상하면서 “그 이유는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으나, 역사적으로 미국 장기채권 수익률은 60년 주기로 상승·하강을 반복했다”며 “현재 상승 주기의 초기 단계”라고 지적했다.

미국 장기채권 수익률 변동 추이 | 그래프 제공=로카충

* 이 기사는 에포크타임스 홍콩지사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