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성 ‘적색 코드’ 사건과 중국이 보여준 ‘디지털 정부’의 미래

왕허
2022년 06월 30일 오후 5:08 업데이트: 2022년 07월 1일 오전 9:14

중국은 여러 분야에서 미국과 유럽을 추월하려 한다.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은 그중 하나다. 인터넷, 빅데이터, 실물 경제를 융합하고 디지털 정부 발전을 강조한다. 중국 국무원은 지난 23일 ‘디지털 정부 건설 강화에 대한 지도 의견’을 발표하기도 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 디지털 정부가 되면 뭐가 좋을까? 공산주의 체제 내 어용 전문가들은 “새로운 과학기술 혁명과 산업 변혁의 추세에 제때에 적응할 수 있다”고 찬사를 내놓는다. 그러나 디지털 정부는 양날의 검이다. 과학기술 혁명을 선도한다는 장밋빛 전망 반대 쪽 끝에는 국민을 획기적으로 감시하는 디지털 독재가 도사리고 있다.

최근 발생한 허난성 ‘적색 코드’ 사건이 디지털 독재가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줬다.

허난성에서는 지난 4월부터 은행 부실대출 사건이 터졌다. 피해는 고스란히 예금주들에게 돌아갔다. 허난성 춘쩐(村鎮)은행 지점 4곳에서 총 2만5593명의 고객 계좌가 동결됐다. 피해 규모는 최소 20억4300만 위안(약 3960억원)이다.

당황한 일부 예금주들은 허난성 성도(省都)인 정저우 지점으로 향했다. 그들은 대도시 지점에서는 예금을 인출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정저우에 진입하자 ‘건강 코드’가 갑자기 적색으로 표시됐기 때문이다.

‘HDC 코드’ 또는 ‘건강 QR코드’라고 불리는 건강코드는 중공 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 이후 중국에 거주하거나 체류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설치가 의무화된 스마트폰 앱이다. 앱 설치후 건강정보를 입력하면 적색, 황색, 녹색 중 한 가지 색깔의 코드를 지방정부에서 발급해준다.

적색은 ‘위험’으로 전염병 확산 고위험군에 해당돼 14일간 격리되고 이동이 금지된다. 황색은 ‘주의’로 7일간 격리된다. 녹색은 ‘건강한 상태’로 격리 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적색·황색 코드를 받은 사람은 녹색으로 바뀌어야 이동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예금주들이 정저우를 벗어나자 적색이었던 건강코드가 다시 녹색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예금주들은 소셜미디어에 이 사실을 알렸고, 온라인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온라인에서는 ‘건강코드’를 임의로 변경해 예금주들의 이동을 제한한 것 아니냐며 조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여론의 압박이 거세지자, 지난 22일 허난성 정저우의 공직자 사정기관인 기율감찰위원회는 공식 소셜미디어 채널을 통해 ‘적색 코드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춘쩐은행 예금주 중 1317명이 적색 코드를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정저우 주민은 446명, 다른 지역 주민은 871명이었다. 871명이 정저우에 진입했을 때 적색 코드로 발이 묶인 셈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당국이 건강코드 앱으로 주민들의 건강 상황은 물론 위치정보까지 면밀하게 추적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위치정보를 추적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춘쩐은행 예금주라는 특정 집단에 한정해 특정 지역을 드나드는 것까지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하면서 이동 제한까지 걸어버린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충격을 나타냈다. 한 네티즌은 “전자발찌를 찬 셈”이라고 자조했다.

감찰위는 이번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과거 비슷한 사건에서 늘 나오던 변명인 ‘장비 오작동’, ‘기술적 문제’ 대신 ‘조직적 행위’라고 인정했다.

책임자 실명까지 밝혔다. 정저우시 공산당위원회 정치법률위원회 부서기 겸 코로나19 방역본부 사회통제부 부부장 펑셴빈(馮獻彬), 허난성 공산주의청년단 정저우시 위원회 서기 겸 코로나19 방역본부 사회통제부 부부장 장린린 등 두 사람이 독단으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발표됐다.

두 사람의 지시를 받아 정저우에 진입한 춘쩐은행 예금주들에게 적색 코드를 부여한 실무자 자오융(趙勇), 천충(陳沖), 양야오환(楊耀環) 등 3명도 이름과 직책이 함께 공개됐다.

당국이 이례적으로 관계자 실명을 밝히며 적극적인 사태 해결에 나선 것은 수천억 원대 예금이 묶인 예금주들의 분노가 폭발할 지경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전처럼 ‘기술적 문제’라는 핑계로 어물쩍 넘어갈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사결과 발표가 진짜 ‘몸통’을 밝혀낸 것인지, 꼬리 자르기를 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과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기술혁신인 ‘디지털 정부’의 지향점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명확히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디지털의 장막 속으로 더 깊게 숨었지만, 국민들은 투명인간에 가까울 정도로 속속들이 들여다보이는 정보의 비대칭이 심화되고 있다.

‘전염병 예방과 확산 억제’라는, 반대할 수 없는 명분으로 도입된 건강코드가 단 몇 명의 컴퓨터 조작만으로 수백 명의 자유를 손쉽게 박탈할 수 있음을 이번 허난성 ‘적색 코드’ 사건은 뚜렷이 보여줬다.

오늘날 중국의 현실은 조지 오웰이 1949년에 펴낸 정치 예언 소설 <1984>에서 예측한 상황을 훨씬 뛰어넘었다. 정부의 감시는 없는 곳이 없으며, ‘빅브라더’는 모든 사람을 지켜보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첨단과학과 팬데믹이 결합한 건강코드로 모두를 감시할 수 있고 모두를 통제할 수 있다.

이번 조사결과를 차분히 들여다보면, 지방당국이 문제로 삼은 것은 ‘적색 코드’ 부여가 아니라, 그 결정을 몇몇이 독단적으로 내렸다는 것이다. 바꿔 말해 독단적인 결정이 아니라면, ‘적색 코드’ 부여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기율위원회도 이번 사건을 “권한 남용”이라고 칭했다. ‘적색 코드’로 이동을 제한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시 공산당 위원회 산하 정법위 부서기 펑셴빈, 공산주의 청년단의 시 위원회 부서기 장린린 두 사람이 정말로 둘만의 결정으로 춘쩐은행 예금주에게 선별적으로 적색 코드를 부여할 수 있었을까.

두 사람은 인구 9천만 명이 넘는 허난성에서 어떻게 춘쩐은행 4개 지점의 예금주만을 정확히 선별할 수 있었을까? 춘쩐은행에서 사전에 예금주 정보를 당국에 제공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춘쩐은행 측에서 먼저 예금주 정보를 넘기고, 정저우 방문을 막아달라고 했다면 이번 사건은 매우 이해하기 쉬워진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조사결과에서 춘쩐은행이나 은행 관계자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산주의 체제하의 중국에서 사건과 가까운 단체나 인물이 조사 결과에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은 역으로 그 단체·인물이 매우 깊게 관여돼 있음을 시사한다. 이 사건이 생각보다 더 높은 고위층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펑셴빈과 장린린은 결과적으로 이번 사건의 책임을 ‘독단적 결정’이란 죄명으로 대부분 뒤집어썼지만, 각각 해임과 강등 등 무겁지 않은 처벌에 그쳤다.

한 중국 네티즌은 “국민이 건강코드를 위조하면 방역규정 위반으로 범죄에 해당해 무거운 처벌을 받지만, 관료가 독단적으로 국민에게 건강코드를 위조 발급하는 것은 가벼운 처벌에 그친다”며 “인위적인 적색코드 발급은 강제구금과 같지만, 책임자들은 형사처벌을 피했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