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텔로 그려낸 어머니의 사랑… ‘라베르뉴 가족의 아침 식사’

류시화
2023년 12월 20일 오후 10:25 업데이트: 2024년 02월 5일 오전 11:27

파스텔화의 황금기를 이끈 화가, 리오타르
대상에 대한 정확한 묘사와 부드러움을 함께 표현하다

‘터키 의상을 입은 자화상’(1746), 장 에티엔 리오타르. 종이에 파스텔 | 공개 도메인

스위스 제네바 출생의 화가 장 에티엔 리오타르(1702~1789)는 파스텔의 거장이자 초상화를 주로 그린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어린 시절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세밀화와 판화를 공부했던 그는 37세경 당시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로 옮겨 약 5년가량을 보냈다. 그는 튀르키예 문화에 매료되어 18세기 유럽 전반에 오리엔탈리즘을 전파했고 독특한 초상화 양식으로 당시 큰 인기를 얻었다.

파스텔의 거장

‘7세의 마리아 프레데리케 반 리드 애슬론’(1755), 장 에티엔 리오타르. 양피지에 파스텔 | 공개 도메인

파스텔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사용되었지만, 유럽에서는 18세기가 되어서야 대중화되었다. 파스텔은 유화 물감과 동일한 안료를 사용해 제작한다. 파스텔은 물감과는 달리 마르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기에 그 즉각성 덕분에 순간을 포착하는 그림을 그리는 데 자주 사용되었다.

파스텔로 그린 그림은 가루 같은 성질 때문에 깨지기 쉽다. 그러나 가루가 반사하는 빛의 굴절로 그림에 우아함을 더해준다. 또한 파스텔로 그린 작품은 완성된 뒤에도 유화에 비해 보존이 쉬워 그 색감과 채도를 온전히 유지했다.

‘초콜릿 소녀’(1744), 장 에티엔 리오타르. 양피지에 파스텔 | 공개 도메인

리오타르는 이러한 파스텔의 성질을 십분 활용해 초상화를 그렸고, 그가 활동한 시기는 곧 파스텔 회화의 황금기가 되었다. 리오타르는 파스텔의 특징을 활용해, 유화로 그려진 초상화와는 달리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하지만, 뚜렷한 선을 사용해 인물을 정확하고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또한 그는 배경을 과감히 생략해 인물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더불어 인물의 피부와 머리카락, 복장의 색을 과장되지 않으면서 조화롭고 우아한 색채로 묘사해 작품의 완성도를 더했다.

리오타르의 뛰어난 실력으로 탄생한 신선하고 아름답고 섬세한 초상화 양식에 영국과 오스트리아 등의 많은 귀족과 상류층 인물들은 저마다 작품을 의뢰했다. 그의 작품은 당시 꽤 비싼 가격에 의뢰되었다.

사적인 순간을 포착한 화가

리오타르의 작품의 대표적인 특징은 바로 인물의 본성을 그대로 화폭에 담았다는 점이다. 당시 대부분의 초상화는 공적인 자리에 전시될 목적으로 제작되었기에 모델이 된 인물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 인물의 표정이나 자세, 배경, 등을 활용했다. 그러나 리오타르는 모델의 사적인 일상의 순간을 보여주었고, 그러면서도 인물이 처한 상황을 섬세하게 묘사해 성격과 감성까지도 살려냈다.

‘라베르뉴 가족의 아침 식사’

‘라베르뉴 가족의 아침 식사’(1754), 장 에티엔 리오타르. 캔버스에 파스텔. 런던 내셔널 갤러리 | 공개 도메인

리오타르의 작품 ‘라베르뉴 가족의 아침 식사’(1754)는 그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잠시 보았을 때는 평범한 작품으로 보이지만,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리오타르가 인간의 본성까지도 작품에 묘사해 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속에는 한 어머니와 딸이 식탁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고급 비단 소재의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어머니는 식사하는 딸을 세심하게 돌보는 데에 온 신경을 쏟고 있다. 어린 딸은 밤새 머리카락을 말았던 종이를 아직 머리에 달고 식탁에 앉아 있다. 그녀는 과자를 뜨거운 차에 적셔 먹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 어머니는 어린 딸이 미숙한 손짓에 혹여나 화상을 입거나 차를 쏟진 않을까 내심 걱정한다. 그러나 겉으로는 등을 꼿꼿이 세운 우아한 자세를 유지한 채 한 손으로 넘칠 듯한 찻잔과 접시를 안정적으로 잡아주고 있다.

‘라베르뉴 가족의 아침 식사’(1754)의 세부, 장 에티엔 리오타르. 캔버스에 파스텔. 런던 내셔널 갤러리 | 공개 도메인

다정하고 아름다운 모녀의 아침 식사 현장은 차분하고 고요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섬세하고도 작은 움직임이 가득하다. 어린 딸은 찻잔을 직접 들고 적극적으로 식사에 임하고 싶은 본능적인 충동을 참는 듯 왼손으로 테이블을 붙잡고 있다. 어머니는 현실의 어머니가 대부분 그렇듯 아이를 돌보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고 있다. 왼손으로는 딸의 찻잔을 붙잡고 있고, 오른손으로는 주전자를 들어 음료를 더 부어주려 한다.

‘라베르뉴 가족의 아침 식사’(1754)의 세부, 장 에티엔 리오타르. 캔버스에 파스텔. 런던 내셔널 갤러리 | 공개 도메인

사랑을 담아 딸을 보살피는 어머니의 눈 아래에는 옅은 다크서클이 보인다. 잠이 없는 어린 딸이 이른 시간에 어머니를 깨우려 보챘기에 피로가 가시지 않은 듯하다. 그럼에도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와 고급스러운 의상은 어머니의 깔끔한 성향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한 가지 더 흥미 있게 볼 점은 바로 동양적인 소품의 등장이다. 까만 옻칠로 매끄럽게 마무리된 쟁반에 비친 섬세한 중국식 찻잔은 리오타르가 동양 문화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음을 의미한다. 동양풍의 쟁반과 찻잔, 은으로 만든 커피포트와 도자기 찻주전자가 함께 사용되고 있다. 리오타르는 주전자나 찻잔, 쟁반의 빛 반사를 사실적이면서 아름답게 묘사해 초상화 속 인물의 아름다운 모습과 분위기를 한껏 살려준다.

평범함을 비범함으로 끌어올린 화가

리오타르는 사소한 것에도 깊은 관심을 가진 화가였다. 통찰과 관찰을 통해 일상 속 평범한 장면을 비범한 것으로 끌어올렸다. 어머니와 딸의 아침 식사 장면을 담은 이 작품은 인물의 행동과 그 의미를 통해 2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관객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감동을 준다.

로레인 페리에는 영국 런던 교외에 거주하며 에포크 타임스에 미술과 장인 정신에 대해 글을 씁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영상화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