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UN 인권대표, 중국판 ‘포템킨 마을’ 방문

석산(石山·스산)
2022년 05월 30일 오후 2:46 업데이트: 2022년 05월 30일 오후 2:46

지난 23일,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가 중국 광저우(廣州)에 도착했다. 보도에 따르면 바첼레트 대표는 이번 방중 일정에 베이징 방문 스케줄이 없어 25일 광저우에서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와 화상으로 회담을 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딩쉐샹(丁薛祥) 정치국원, 양제츠(楊潔篪)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 왕이(王毅)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등이 배석했다고 전했다. 양제츠와 왕이는 당정 외교라인의 1·2인자로, 모두 시진핑의 최측근이다. 딩쉐샹은 시진핑의 심복 브레인으로, 정치국원 외에도 중앙서기처 서기, 중앙판공청 주임, 중앙국가기관공작위원회 서기, 중공중앙 총서기판공실 주임, 국가주석판공실 주임, 중앙국가안전위원회판공실 주임 등 핵심 요직을 두루 겸하고 있다.

화상 회담 때 딩쉐샹과 양제츠가 시진핑을, 왕이가 바첼레트 대표를 각각 수행했다.  이처럼 중국 공산당의 최고위급 지도부가 배석자로서 외교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관영 매체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은 중국 공산당 치하의 인권이 진보했다고 늘어놓으면서 “인권 문제를 정치화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는 이미 예상했던 바와 같다.

23일 중국 남부 광둥성 광저우에서 만난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와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Deng Hua/Xinhua via AP=연합

바첼레트 대표의 이번 중국행의 주요 목표는 중국 북서부 신장위구르자치구를 방문하는 것이다. 바첼레트 대표는 2018년 취임한 이후 신장 지역의 인권 상황을 조사하게 해달라고 중국 정부에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여러 차례 협상 끝에 중국 정부는 작년 말에 ‘조사’가 아닌 ‘방문’ 명목으로 바첼레트 대표의 중국행을 허용했다.  하지만 협상 결과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전에 발표할 수 없고, 또 코로나 감염 예방을 내세워 ‘폐쇄적 방문’으로 제한했다. 중국 정부가 보여주는 것만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국제 인권 단체들은 이런 방문이 중국 공산당의 인권 침해 실태를 파악하기는커녕 오히려 중국 공산당이 자화자찬하는 쇼에 이용된다고 우려했다. 사실 유엔 인권이사회의 과거 행적을 보면 진실한 결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다.

분명한 것은 바첼레트 대표 일행은 신장에서 일련의 ‘포템킨’식의 쇼를 볼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리 포템킨(Grigory Potemkin, 1739~1791)은 200여 년 전의 제정 러시아 장군이었다. 1774년 제정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한 후 포템킨은 예카테리아 2세의 즉위 25주년을 맞아 여제의 순방을 제안했다.

1786년 여름, 여왕은 왕실 선박을 타고 드네프르 강을 항해하면서 강 연안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마을들, 그리고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마을 사람들, 잘생긴 카자크 소년들과 아름다운 우크라이나 소녀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마을들의 풍경은 낡고 초라한 초가집을 가리기 위해 두꺼운 종이에 그려 놓은 위장막에 불과했다.

곡식 대신 모래를 담은 마대자루를 상점에 쌓아놓고, 기마훈련을 하는 카자크 소년들, 새 군복을 입고 조련하는 병사들, 노래하고 춤추는 마을 사람들, 심지어 튼실한 소와 양들까지 모두 그림 속 엑스트라였다. 포템킨 여제가 선상에서 마을 전경을 시찰하고 떠나면 그들은 밤새 그 그림 세트를 철거해 다음 ‘공연장’으로 옮겨놓았다. 이것이 바로 포템킨이 만들으낸 신기루 같은 ‘포템킨 마을’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속은 것은 아니다. 당시 예카테리나 2세 순방에 동행한 러시아 주재 작센 공국 대표 게오르그 겔빅(Georg Gelbig)은 독일 언론에 ‘이것은 근본적으로 엄청난 사기극이고, 이 아름다운 마을은 그림일 뿐이며, 감독은 어둠의 왕, 횡령자, 뇌물공여자, 왕실의 마차길에서 풍경을 조작한 사기꾼’이라고 폭로했다.

‘포템킨’은 이때부터 ‘초라하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상태를 은폐하기 위해 꾸며낸 겉치레’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바첼레트 대표가 폐쇄식 방문 형식으로 신장을 ‘방문’하면,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핵산 검사는 물론 당국의 심사도 거쳐야 한다. 바첼레트 대표가 도로에서 만나는 사람은, 노점상인이든 어린이든, 모두 엄격한 정치심사를 받고 여러 차례 훈련과 리허설을 거쳤을 것이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구소련이 제정 러시아로부터 이어받은 것을 그대로 답습해 ‘포템킨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이 상하이를 방문했다. 당시 차량이 거리를 주행할 때 어느 창문은 열고 어느 창문은 닫는지 명확한 지침이 있었고 거리에 나타난 사람들은 모두 ‘미소 짓는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외교사절단이 이런 속임수를 어떻게 알았겠는가. 미국인의 정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조작은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1972년 2월 21~28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 당국은 중국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른 실상을 감추기 위해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이끄는 국무원이 직접 조작극을 연출했다. 사진은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방중한 닉슨을 영접하는 모습. | AFP=연합

근년 들어 이런 상황은 더욱 발전했다. 수년 전 녹색 페인트를 황토에 뿌려 ‘잔디’로 급조한 기술은 ‘포템킨 마을’ 기법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다시 바첼레트 대표의 얘기로 돌아가자.

미첼 바첼레트 대표는 칠레에서 태어나 60년대 미국 메릴랜드에서 중학교를 다녔고 칠레로 돌아가 대학을 다녔다. 70년대 칠레 군부의 쿠데타로 우파 정부가 들어섰고, 바첼레트는 학생운동에 가담했다가 체포돼 고문을 받았다. 이후 호주와 서독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바첼레트의 부친도 칠레의 장교로 군정부와 친분이 있었다. 그래서 바첼레트는 1979년 칠레로 돌아가 공부를 계속했고 졸업 후 의사가 됐다. 바첼레트는 칠레가 민주주의를 회복한 이후 두 차례나 대통령을 지냈고, 중간에 유엔여성기구 대표도 맡았으며, 지금은 유엔 인권최고대표다.

바첼레트가 군정부에 체포된 적이 있고, 칠레가 민주주의를 회복한 뒤에도 군정부의 인권 박해 청산에 나섰기 때문에 그가 신장에 가서 중국 공산당의 인권 침해를 조사하는 데 희망을 거는 사람도 적지 않다.

신장의 인권 상황은 어떠할까? 신장은 다민족 지역으로, 위구르인 외에도 카자흐인, 회족(回族), 몽골족, 타지크인, 키르기스인 등이 있다. 따라서 신장의 수용소에는 위구르인뿐 아니라 여러 민족이 수용돼 있다. 물론 위구르인이 가장 심한 박해를 받고 있다. 위구르인의 주체는 신장에 있지만 다른 민족의 주체는 대부분 중국 밖에 있다. 회족도 대부분 신장이 아닌 간쑤(甘肅)성 닝샤(寧夏)에 있다.

신장 강제 수용소에 관한 최초의 보도는 필자와도 관련이 있다. 2016년 여름, 자유아시아방송(RFA)은 필자를 홍콩에 파견했다. 그해 연말, 우리의 베테랑 기자가 신장에서 카자흐스탄으로 피신한 일부 카자흐인과 연락이 닿았고, 신장에 있던 카자흐인들이 끌려가 수용소에 감금됐다는 소식을 속속 접수했다.

2019년 5월 31일 촬영된 신장 허톈(和田)시 외곽의 ‘재교육 캠프’. | AFP/Getty Images=연합

당시에는 수용소라는 표현이 없었다. 중국 당국은 당시 이들 소수민족을 위해 ‘법제교육훈련반’을 운영한다고 했다. 이런 수법은 사실 중국 공산당이 파룬궁(法輪功)을 박해하면서 시작됐다. 중국 대륙 곳곳에서는 아무런 범죄도 저지르지 않은 파룬궁 수련자들을 모아 놓고 강제 세뇌를 실시했는데, 이 만행을 벌인 곳이 바로 ‘법제학습반’이나 ‘법제교육훈련반’이었다. ‘훈련반’이라고 했지만 실제는 ‘흑감옥(黑監獄)’, 즉 불법 구금장소다. 여기에는 경찰과 보안 요원뿐 아니라 중국 공산당이 파견한 심리학 전문가도 있고 임시 고용자도 있다. 임시 고용자는 사람을 구타하고 학대하는 일을 담당한다.

이런 수법은 2017년경에 신장에 이식됐다. 2018년 이후 이런 수법은 ‘카피 페이스트’를 이어가면서 규모가 점점 커지고 타격 대상도 갈수록 확대됐다. 그 결과 위구르인은 당국에 거슬리는 말과 행동을 했을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수염을 기르고 히잡을 쓰도, 심지어 집에 ‘코란경’이 있어도 끌려가 ‘직업훈련’을 받는다.

필자는 2019년에 한 위구르인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베이징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였다. 당시 그녀는 60대 중반으로 은퇴한 상태였지만 ‘직업훈련센터’에 잡혀가 어학 및 직업 ‘훈련’을 받았다. 이미 정년퇴직한 사람이 무슨 직업훈련을 한다는 것인가? 베이징에서 대학을 졸업했는데 과연 중국어 교육이 필요할까?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당국의 행태를 보다 못한 이 위구르인 할머니가 ‘시대착오적’인 말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홍콩에 주재하고 있던 우리 기자들은 카자흐 인권단체들이 자료를 지속적으로 보내와 관련 기사를 계속 내보냈다. 당시 RFA 편집장이 우리가 균형 보도를 하지 않았다며 팩트 확인을 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그는 “신장 관련 모든 보도는 현지 당국의 공식 확인이 있어야 한다”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균형 보도가 아니라고 질책했다.

문제는 팩트 체크를 위해 신장으로 전화를 걸어도 통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기자임을 밝히는 순간 신장 당국자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2018년 초경 필자는 신장 수용소 문제가 큰 이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필자는 기자를 카자흐스탄에 파견하게 해달라고 본사(RFA)에 신청했다. 신장에는 갈 수 없지만 카자흐스탄에는 갈 수 있고, 거기서는 카자흐스탄 정부의 감시를 피해 카자흐스탄인을 포함해 신장에서 탈출한 사람들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집장은 필자가 올린 신청을 거부했고, 이어서 신장 관련 소식을 보도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당시 그가 제시한 이유는 RFA 중문부는 중국 본토 소식만 보도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신장 강제수용소 문제는 갈수록 주목을 받고 있었다. 카자흐스탄 주재 중국 대사관은 2018년 7, 8월쯤 화교 상인, 카자흐스탄의 친중공 위구르인·카자흐인 등을 모아놓고 내부 회의를 열고 카자흐 인권단체들을 단호히 보이콧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안전부, 공안부, 중앙선전부, 외교부가 협력해 당시 카자흐스탄에서 불거진 반중 정서를 해소할 것을 제안했다.

그해 카자흐스탄 인권단체는 카자흐스탄 정부에 의해 강제 해산됐고 주요 인물의 컴퓨터가 해킹당해 수많은 데이터·증거가 파괴됐다.

RFA의 위구르어부는 대대적인 추적 보도를 했고, 곧이어 위구르어부 기자 6~7명의 친척과 친구 수십 명이 집단 실종돼 미국 최대 뉴스가 됐다.

물론 2018년부터 미국과 중국 공산당의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신장 강제수용소 이슈는 주류 언론에서도 비중 있게 다뤘다.

RFA 편집장은 뒤늦게 신장 인권 상황 취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일부 주류 언론의 취재원과 소스는 모두 카자흐스탄에서 온 것으로, 과거 우리 중문부의 자원이었다. 당시에는 관리층이 우리의 안전을 고려해 취재를 막았을 수도 있다.

이번에 바첼레트 대표는 신장에 가서 신장의 인권 문제를 조사한 것이 아니라 ‘참관’했을 것이다. 바첼레트 대표는 예카테리나 2세와는 달리 최소한 자신이 중국 공산당이 보여주는 것만 보게 됐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여왕처럼 쉽게 속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첼레트 대표가 중국 공산당의 요술거울에서 어떤 진실을 보았을지는 미지수다. 중국 공산당은 이런 수작을 부리는 데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속인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가짜라는 것을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 과연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해 설립된 유엔 인권기구의 수장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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