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인 장기집권 개막…中, 대대적인 숙청 시작된다

석산(石山·스산)
2022년 11월 2일 오전 11:31 업데이트: 2022년 11월 2일 오후 2:42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가 끝남에 따라 중국 공산당 내부의 대대적인 숙청이 불가피해 보인다.

10여 년 전 필자는 워싱턴DC에서 중국에서 온 한 노부인을 만났다. 80세에 가까운 중국 모 대학의 교수였다. 그녀는 나에게 그녀 집안의 역사를 이야기했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놀랍게도 중국공산당 10대 원수(元帥) 중 한 명인 허룽(賀龍)과 의형제였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현지 마방(馬幫)의 두목으로, 산간 지역에서 상인들의 물자를 운송했다. 허룽은 장시(江西)성 난창(南昌)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실패한 뒤 당국의 추적을 피해 후베이(湖北)와 후난(湖南)의 접경 지역으로 도망쳤다. 거기서 다시 혁명을 시작한 허룽은 노부인의 할아버지 집에 9개월간 숨어 지냈다.

허룽은 마방의 엄호 덕분에 왕래할 수 있었고 정보도 원활하게 주고받을 수 있었다. 허룽은 나중에 홍색 집단을 꾸려 다시 공산당 대열을 이끌었다. 당시 노부인의 할아버지가 허룽에게 총 2~3자루를 선물했다. 허룽은 그녀의 할아버지를 끌어들이려 했지만 그녀의 할아버지는 혁명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3개월 후 그녀의 할아버지는 한 찻집에서 독살됐는데, 누군가가 공산당의 소행이라고 귀띔해 줬다.

허룽은 서둘러 돌아와 할아버지 장례를 도왔고, 그녀의 할머니에게 앞으로 무슨 문제가 생기면 자신을 찾아오라는 쪽지를 주었다.

수년 후 공산당이 정권을 잡았고, 그녀의 집은 지주로 몰려 계급의 적이 됐다. 노부인은 1950년대에 베이징의 한 대학에 입학했다. 그녀는 일찍이 공항에서 외빈을 환영할 때 허룽을 본 적이 있다. 노부인은 할머니가 준 쪽지를 손에 쥐고 있었지만 결국 두어 걸음 떨어져 있는 허룽을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뒷날 생각해보니 당시 허룽에게 쪽지를 보여주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허룽도 계급의 적인 그녀의 집안을 도울 수 없었을 것이고, 설사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문화대혁명 시기에 더 비참한 처지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허룽은 목숨을 걸고 공산당의 정권 탈취를 위해 큰 공을 세웠으나 문화대혁명 와중에 반당 분자로 몰려 투옥됐다 옥사했다.

허룽은 의리를 중시하기 때문에 조조(曹操)처럼 은인을 배신하지 않는다고 믿은 할머니는 남편을 살해한 자가 허룽이 아니라고 여겼다. ‘배은망덕’이 공산당의 진짜 본성임을 몰랐던 것이다.

중국 공산당 제20기 1중전회에서 ‘현 황제’가 ‘전 황제’를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퇴장시키는 장면이 연출됐다. 사람들은 과거 18차 당대회 때의 사진을 찾아내 20차 당대회 때의 사진과 비교했다. 당시 시진핑은 후진타오를 겸손한 자세로 대했으나 1중전회 때는 완전히 달라졌다. 후진타오는 18차 당대회에서 당정군 권력을 모두 내려 놓음으로써 시진핑의 집권 기반을 마련해 준 은인이지만, 시진핑은 불과 10년 만에 배은망덕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공산당의 ‘배은망덕’ 사례는 부지기수다.

스탈린은 레닌이 죽은 후 소련 홍군의 총사령관인 레프 트로츠키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소련 공산당의 1인자가 됐다. 스탈린과 트로츠키는 레닌의 오랜 친구들을 모두 처형했다. 이어서 스탈린은 자신을 도와준 은인 트로츠키마저 가만두지 않았다. 트로츠키는 소련에서 추방된 후 멕시코에서 스탈린이 보낸 자객의 얼음도끼에 맞아 죽었다.

흐루쇼프는 스탈린이 가장 아끼는 부하였다. 흐루쇼프가 우크라이나의 한 지역 당서기에서 소련 공산당 정치국 위원(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에 해당)으로 승진한 것도 스탈린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이었다. 하지만 스탈린이 죽은 뒤 소련 공산당 20차 당대회 비밀보고서에서 흐루쇼프는 정치적 은인 스탈린을 통렬히 비판했다.

흐루쇼프는 배신을 당하지 않았을까?

흐루쇼프는 사실 중국 공산당의 가장 큰 은인이었다. 1956년 흐루쇼프는 소련 해군기지인 뤼순(旅順)항을 중국에 반환했고, 1957년 마지막 남은 소련군을 중국 대륙에서 철수시켰다.

이뿐만이 아니다. 흐루쇼프는 중국에 156개 대형 프로젝트를 원조했는데, 그중 3분의 1이 방산업체였다. 이 기업들이 있었기에 중공군은 무기를 자급할 수 있었다. 이 방산업체에는 총·대포·탱크·항공기 제조업체는 물론 핵무기를 포함한 일련의 소재 제조업체와 실험실이 포함돼 있었다. 기계 설비를 제외한 모든 기술 이전은 무료였다.

중국은 소련의 원조에 기초해 핵무기 제조에 성공했다. 이 모든 원조는 흐루쇼프가 소련 내부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진행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흐루쇼프를 ‘흐 대머리(赫禿子)’라고 비하했고,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선도자가 되려던 마오쩌둥(毛澤東)은 소련을 ‘소련 수정주의’라고 비난했다.

마오쩌둥은 자신을 추종한 자들조차 봐주지 않았다. 마오쩌둥이 권력을 탈환할 수 있도록 도와준 타오주(陶鑄), 천보다(陳伯達), 린뱌오(林彪) 등 문화대혁명 파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물론 마오쩌둥이 신뢰했던 화궈펑(華國鋒)도 마오쩌둥의 부인 장칭(江青)을 체포했다.

후야오방(胡耀邦)은 문화대혁명 이후 덩샤오핑(鄧小平) 등 중국 공산당 원로들이 정치 무대에 재등장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일등공신 후야오방도 결국 이들 중국 공산당 원로들의 손에 죽은 셈이다.

덩샤오핑이 격대지정(隔代指定·현 지도자가 차차기 지도자를 미리 정하는 권력 승계 방식) 후계자로 후베이성 둥펑(東風)자동차공장 당서기 왕자오궈(王兆國)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왕자오궈는 곧바로 중앙서기처로 직행한 뒤 공청단중앙 서기로 승진했다. 그의 승진은 거의 후야오방이 주도했다. 그러나 왕자오궈는 원로들이 후야오방을 무너뜨릴 때 지나칠 정도로 적극 가담했다. 이 때문에 그는 덩샤오핑의 신뢰를 잃었다.

그 후 후야오방은 자신을 배신한 두 사람을 줄곧 마음에 담아 두었다. 한 사람은 왕자오궈이고, 다른 한 사람은 보이보(薄一波)였다. 후야오방은 보이보의 누명을 직접 벗겨준 적이 있다. 이 두 사람은 후야오방에게 은혜를 입었지만 후야오방 실각을 적극 도왔다.

20차 당대회 이후 중국 공산당은 덩샤오핑 시대 이후 형성된 과두정치에서 시진핑의 1인독재로 회귀하고 있다. 이 과정이 끝나면 대숙청이 시작될 것이다. 중국 공산당 역사에서 이러한 전례가 상당히 많다. 레닌이 죽은 뒤 잠시 과도기를 거쳐 스탈린 1인독재로 바뀐 후 전국적인 대숙청이 시작됐고, 마오쩌둥도 문화대혁명을 거쳐 1인독재 체재를 굳힌 후 대숙청을 단행했다.

시진핑이 18차 당대회에서 집권한 후 그에게 도움을 가장 많이 준 사람은 왕치산(王岐山)이다. 하지만 지금은 왕치산이 가장 위험하다. 왕치산은 오랫동안 중공 관료계에서 종횡무진 누비며 인맥을 폭넓게 형성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위험할 수 있다.

과두정치는 권력을 몇몇 사람이 나누어 가지기 때문에 그들 간에 흥정과 타협이 필요하다. 하지만 1인독재는 생살여탈권을 한 사람이 쥐고 있고 권력 구조의 본질도 다르다.

보편적으로 과두정치 체제는 파벌 간에 실익을 두고 싸운다. 그러나 1인독재 체제에서 독재자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엄청난 불안과 공포가 조성된다. 독재자는 권좌를 지켜야 하고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파벌은 권좌를 뺏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독재자가 대숙청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상황은 중국 역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중국 고대 정치 메커니즘에 적장자가 왕위를 계승하는 전통이 있었던 것도 권력 투쟁의 위험을 제거하고 왕조의 안정을 꾀하기 위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황제(황위 계승자 포함)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으로, 40% 가까이가 제명을 다하지 못했다. 권좌를 놓고 부자간, 형제간에 죽고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지금의 시진핑은 권력의 정점에 있고, 사방에서 찬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닥치고 있다. 얼마나 공포에 떨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시진핑으로서는 모두가 잠재적인 적이고, 모든 사람이 ‘그 자리는 내 자리다’ 하며 권좌를 노리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들은 모두 최고 권력에 근접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모든 공격의 이면에는 두려움이 있다. 권력 상실에 대한 두려움은 반드시 권력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진다. 권력의 중심에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공격의 대상이 될 것이다. 머잖아 중국 백성들은 경제 쇠퇴로 고통을 받겠지만, 매일 두려움에 휩싸여 떨고 있을 사람은 중국 공산당 관리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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