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네덜란드, 시진핑 ‘반도체 합작’ 요구 들어줄까

저우샤오후이
2022년 11월 22일 오후 6:55 업데이트: 2022년 11월 23일 오후 9:35

며칠 전에 끝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여러 나라 지도자들을 선별적으로 만났다.

중국이 만날 국가를 선정한 데는 나름의 목적이 있었다. 중국 관영 앙시망(央視網)이 11월 17일 ‘6가지 디테일로 보는, G20 정상회의에서 모두가 중국을 만나고 싶어 하는 이유’라는 기사에서 시진핑이 윤석열 한국 대통령, 마크 루터 네덜란드 총리를 만난 것은 반도체 산업 공급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한중 정상회담 관련 보도에서 시진핑이 “첨단 제조, 빅데이터, 녹색경제 등의 분야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심화하고, 국제 자유무역 체계를 공동으로 수호하며, 글로벌 공급망을 보장하고 경제협력을 정치화·범안보화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중국 관영 매체는 시진핑과 루터 총리의 회담 보도에서도 시진핑이 “중국과 네덜란드는 경제무역 문제를 정치화하는 것을 반대하고 글로벌 공급망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첨단기술 제조업은 업종별로 의약제조업, 항공기 및 우주선 제조업, 전자 및 통신장비 제조업, 컴퓨터 및 사무설비 제조업, 의료기기 장비 및 계기 제조업, 신호화학물질(semiochemical) 제조업 등 6대 업종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은 첨단기술 제조업에 있어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반도체는 스마트폰에서부터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제조업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부품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5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21년 세계 반도체 매출 순위에 따르면 한국 기업은 상위 5개 기업 중 2개를 차지하며 반도체 부문 수출액은 한국 전체 수출의 20%에 육박한다. 시진핑이 이 문제를 거론한 것은 중국이 한국의 최대 반도체 시장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또 전 세계 반도체 소비의 약 4분의 3을 차지할 정도로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이기도 하다.

한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은 20년 만에 13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베이징 당국에 있어서 한국의 반도체 공급망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불문가지다. 하지만 지난 7월 이후 한국의 반도체 수출량이 22.7%나 감소했다. 최근 3년 동안 처음이다. 즉 한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량 감소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8월 9일 ‘반도체와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에 서명했다. 이 법안은 자국 반도체 산업에 527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25%의 세액 공제를 적용하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또한 정부 지원을 받는 기업은 앞으로 10년간 제조시설 확충 등 첨단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에 투자할 수 없도록 했다.

10월 7일 바이든 행정부는 더 강력한 반도체 대중 수출 통제 조치를 내놓았다. 이에 따라 일부 미국 반도체 제조업체는 대중국 반도체 판매를 중단해야 했고, 중국 반도체 회사에서 근무하는 미국인이나 미국 영주권자들도 중국을 떠나야 했다.

이 밖에도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 분야 특장점을 지닌 한국·일본·대만과 함께 반도체 설계에서 생산, 공급까지 아우르는 전략 공동체 ‘칩4 동맹’을 만들었다. 이는 한국 등의 동맹들이 미국의 대중 정책을 따르게 하고, 동맹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과 디커플링을 하도록 압박하는 조치다.

ASML EUV 노광장비 NXE:3350B

한국뿐만 아니라 네덜란드도 세계 반도체 산업의 공급망에서 중요한 고리다. 최첨단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및 심자외선(DUV) 노광장비를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네덜란드 ASML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시진핑이 네덜란드 루터 총리에게 “글로벌 공급망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며 “네덜란드는 개방과 협력에 대한 유럽의 약속을 이행하길 기대한다”고 말한 이유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를 따르지 말고 중국에 핵심 반도체 장비를 공급하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정부는 11월 초 네덜란드에 최첨단 EUV 노광장비는 물론 구형 심자외선(DUV) 노광기도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압박했다.

그러나 시진핑이 G20 정상회에서 루터 총리를 만난 뒤인 11월 19일 네덜란드 대외무역개발협력부 장관은 NPR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을 대상으로 한 수출 규제는 ASML의 독립적 판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ASML은 중국에 사무소 14개, 창고·물류센터 11개, 연구개발(R&D) 기지 2개, 교육센터 1개, 정비센터 1개를 두고 있으며, 직원은 현재 1400명이 넘고 추가로 200여 명을 더 채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ASML은 지금까지 중국에 EUV를 수출한 적이 없다. 현재는 중국에 DUV 노광기만 수출하고 있다. DUV는 7nm 이상의 칩만 생산할 수 있고, 7nm 이하의 칩을 양산하려면 EUV가 있어야 한다.

ASML이 중국에 EUV 노광기를 수출하려면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EUV 광원과 제어 소프트웨어(SW) 기술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고 필요 부품 55% 이상을 미국이 공급하기 때문이다. 하지는 DUV 노광기는 네덜란드와 일본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이기 때문에 중국에 수출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DUV 노광기를 중국에 수출하지 말라고 네덜란드를 설득할 수밖에 없다. 시진핑이 루터 총리를 만난 것은 바로 이 틈을 노린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DUV 노광기의 공급을 일부 차단하게 되면 파장이 만만치 않다고 밝혔다.

한편 11월 9일(현지시각) 독일 정부는 자국의 반도체 제조업체 엘모스(Elmos)의 생산시설과 반도체 제조 설비업체 ERS일렉트로닉의 중국 매각을 금지하기로 했다.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 장관은 “중요 기반시설이나 기술이 유럽연합(EU) 외부로 흘러나갈 위험이 있는, 기업 인수와 관련해서는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11월 16일, 영국 정부는 영국 최대 반도체 제조업체 뉴포트웨이퍼팹(NWF)을 인수한 중국 윙테크테크놀로지의 네덜란드 자회사 넥스페리아에 NWF 인수를 불허한다며 보유 지분 대부분을 매각하라고 명령했다.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대만·미국·독일·영국이 공동 대응을 함으로써 중국은 위기에 빠졌고, 시진핑은 미국의 ‘포위망’에서 돌파구를 찾고자 윤석열 대통령과 루터 총리를 만났다.

윤석열 대통령과 루터 총리가 미국 주도의 연합전선에서 이탈해 독자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친미(親美) 정책을 펼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당시 중국 공산당의 보복을 잊지 못할 것이다. 반도체 수출을 둘러싸고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될 경우 한국은 중국 공산당의 경제 보복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네덜란드의 상황을 살펴보자. 현재 유럽연합에서 대중 무역량이 독일이 1위를 차지하고 네덜란드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네덜란드는 중국 시장을 잃고 싶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지난해 ASML 매출의 17%를 차지할 만큼 ‘큰손’이다. 수출 통제가 DUV로 확대되면 ASML의 수익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은 미국과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EU도 대중 정책을 조정하고 있다. EU는 중국을 5G 등 주요 개발 분야의 ‘경제 경쟁자’이자 ‘정치·체제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중국의 대유럽 투자를 더 강력히 규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2019년 네덜란드 정부는 증가하는 중국 공산당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에 대응하기 위한 ‘중국 전략’을 발표했다. 네덜란드는 이 발표문에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중국 국민’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결정적인 순간에 네덜란드가 미국과 함께할 것임을 밝힌 것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G20 정상회의에서 한국과 네덜란드로부터 반도체와 노광장비를 공급받기 위해 기울인 시진핑의 노력은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다. 첨단 반도체와 장비가 없으면 중국의 첨단기술 산업의 굴기도, 베이징의 대만 침공과 세계 정복 야망도 좌절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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