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월드컵 휩쓴 아시아 ‘축구 굴기’에 쏙 빠진 중국

석산(石山·스산)
2022년 11월 27일 오후 5:59 업데이트: 2022년 11월 27일 오후 5:59

11월 20일 카타르 월드컵이 막을 올렸다. 중국 당국은 월드컵이 시작되면 중국이 한동안 조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 국민의 관심이 축구 경기에 쏠리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대형 사건·사고가 잇따라 터지고 집단 시위가 벌어지는 등 소요로 얼룩졌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아시아 참가국 대표팀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르헨티나를, 일본은 독일을 각각 2대1로 꺾었다. 한국은 승리하진 못했지만 강팀 우루과이를 맞아 시종일관 대응한 경기를 펼치며 상대팀을 압박한 끝에 무승부를 거뒀다.

이는 대다수 축구 전문가의 평처럼 ‘이변’이었지만,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며 세계 강국과의 격차를 좁히고 있는 아시아 축구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하나의 ‘현상’이기도 했다.

11월 22일 월드컵 경기에서 사우디가 아르헨티나를 꺾는 이변이 발생했다. 사진은 사우디 선수들이 경기 후 팬들과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 Richard Heathcote/Getty Images
독일을 상대로 역전골을 넣은 뒤, 뒤엉켜 기뻐하는 일본 선수들 | 연합뉴스

아시아 축구가 동반 상승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여기에 중국은 포함되지 않는다. 중국 축구팀은 이번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아시아·태평양 6개국 가운데 사우디·일본은 이겼고, 한국은 비겼고, 카타르·호주·이란은 패했다. 이란은 경기에서는 비록 졌지만 전 세계적으로 존경을 받았다. 이란 선수들의 인간적인 태도와 용기 때문이었다.

21일 이란 국가대표팀은 잉글랜드와의 경기 시작을 앞두고 이란 국가가 나왔을 때 제창을 하지 않고 침묵했고, 골을 넣은 후에도 평소와 같은 골 세리머니도 하지 않았다. 선수들의 이 같은 행동은 이란의 반정부 시위에 대한 지지로 풀이된다.

이란 선수들이 21일 카타르 칼리파 국제경기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B조 1차전 잉글랜드와 경기를 앞두고 그라운드에 나왔다. 이들은 국가가 나오자 제창하지 않고 침묵했다. | 연합뉴스
이란 축구팬이 21일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B조 잉글랜드와 경기에서 ‘여성, 삶, 자유, 마흐사 아미니’ 등이 적혀 있는 걸개를 들고 있다. | 연합뉴스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는 이란의 최고 스타 사르다르 아즈문(Sardar Azmoun)은 자신의 입장을 여러 차례 소셜미디어를 통해 밝혔다. 그는 인스타그램 프로필 사진을 검은색으로 바꾸고 “나는 이란 여성들이 영원히 같은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며 “용감한 이란 여성들, 언젠가 전 세계가 당신을 존중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란의 최고 스타 사르다르 아즈문(Sardar Azmoun)의 인스타그램 프로필 | 인스타그램 캡처

아즈문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최악의 경우 국가대표팀에서 쫓겨날 것이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다. 이란 여성들의 머리카락을 위해 희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란 정부는 그를 대표팀에서 내쫓지는 않았다. 이란 대표팀의 포르투갈 출신 카를루스 케이로스(Carlos Queiroz) 감독은 출정 기자회견에서 “선수들은 규정을 어기지 않는 한 각자의 의사표현을 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잉글랜드와의 경기를 앞두고 이란 대표팀 감독이 모든 선수에게는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란 대표팀 주장 에산 하지사피(Ehsan Hajisafi)는 언론에 “우리 나라가 처한 상황이 바람직하지 않고, 우리 국민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이란의 모든 유가족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22)가 히잡 착용에 관한 이슬람 율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의해 구속된 후 몇 시간 만에 사망한 사건이 전국적인 시위의 기폭제가 됐다. 몇 달 사이 시위는 이슬람 공화국의 종교적 신권(神權) 통치체제를 무너뜨리자는 운동으로 번졌다.

21일 일부 이란 팬들은 관람석에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의 국가를 불렀고, 한 관중은 이란 내에서 시위할 때 흔히 볼 수 있는 ‘여성, 삶, 자유’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고, “영예는 없다”고 외치는 이란 팬들의 함성도 울려 퍼졌다. 모두 이란 시위대가 이란 정권과 보안군을 비난하는 구호였다.

인권단체에 따르면 2개월 동안의 시위 끝에 이란의 수십 개 도시에서 약 1만5000명이 체포되고 수백 명이 사망했다.

음악가, 예술가, 언론인 등 이란의 유명인들이 시위대를 지지하고 나섰다. 이란의 유명 여배우 헹가메 가지아니(52)는 인스타그램에 정부의 시위대 진압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고 히잡 착용을 거부하는 영상을 올렸다가 몇 시간 뒤 이란 보안군에 체포됐다.

이란의 유명 여배우 헹가메 가지아니가 반히잡 시위 탄압을 비판하는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 헹가메 가지아니 인스타그램

또 다른 유명 여배우 카타윤 리아히(60)도 19일 히잡 착용을 거부하는 동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는 이유로 이날 이란 당국에 체포됐다.

이란에서 정부에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시위대를 지지하다 체포된 예술가, 유명 배우, 음악가, 화가 등이 200여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젊은 예술가들도 다수 포함됐다. 이란의 유명 래퍼 투마제이 살레히(Toomaj Salehi)가 시위를 지지하는 노래를 작곡했다가 붙잡혀 테헤란 교도소에 수감됐다.

이란은 어떤 나라인가?

이란의 옛 이름은 페르시아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을 가진 국가 중 하나다. 이란인은 아리안족으로 인도를 침공한 초기 아리안족과 관련이 깊다. 이란은 아리안족과 셈족의 경계이기도 하다. 중세 이란의 가장 큰 재앙은 몽골 철기병이 페르시아를 지배했을 때 인구의 90%가 사라졌고 고대 페르시아의 수리 공학 시스템과 농업도 거의 파괴됐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이란 팔레비 왕조가 세워지면서 현대화가 추진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란은 중립적이었지만 독일을 동정했다. 이 때문에 미·영·소 3국이 이란을 점령했다. 1943년 12월 1일 이란 테헤란에서 미국·영국·소련 3국이 회의를 열고 카이로 회의의 연장선상에서 전후(戰後) 질서를 확립했다.

이란 국왕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는 전후 친미 정책을 선택했고 중동에서 가장 친미적인 국가 중 하나로 떠올랐다. 1970년대 중동에서 가장 세속화된 나라였던 이란은 풍부한 석유를 발판으로 경제가 가장 발달한 나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다수 후진국의 현대화 과정과 마찬가지로 이란도 독재와 부패의 전철을 밟았다.

이란과 미국의 관계도 매우 흥미롭다. 이란의 석유는 기본적으로 영국의 석유회사 BP(British Petroleum)가 개발했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란은 석유산업 국유화를 진행하면서 미국 회사에 경영권을 넘겼다. 팔레비 국왕이 미국을 더 믿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란 내부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팔레비 국왕은 망명을 선택했다. 그는 이집트로 도주했다가 이후 세계 여러 나라를 떠돌았다. 이후 암에 걸려 미국에 치료받으러 갔고, 이란 이슬람 혁명파들은 미국에 팔레비 국왕의 인도를 요구했다. 미국이 응하지 않자 이란 혁명수비대는 주(駐)이란 미국대사관을 점거하고 66명의 미국 외교관과 민간인을 억류했다. 미국은 보복에 총력을 기울였다. 미국은 1980년 이란과의 국교를 공식 단절했고, 이란의 재산 80억 달러를 동결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위기가 조성되는 데 있어 미국의 잘못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란이 북쪽에 있는 소련의 인도양 진입로를 막는 것은 미국에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당시 철권 독재 통치를 하던 팔레비 왕이 공산주의 세력뿐만 아니라 국내 반대파를 탄압하는 것도 지지했다. 이 때문이 이란에서는 인권침해 사건 상당수가 CIA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1979년 11월 4일 시작된 인질극은 1981년 1월 20일까지 444일간 계속됐다. 양국 관계는 이때부터 적대적으로 돌아섰고 줄곧 풀리지 않았다. 미국에 있어 이란 인질 사건은 베트남전 이후 미국의 또 하나의 역사적 아픔으로 남아 있다. 미국과 이란은 지금까지도 외교관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팔레비 왕은 백색혁명을 추진했다는 이유로 이란에서 쫓겨났다. 하지만 미국 카터 대통령이 인권 침해를 문제 삼아 지지를 철회한 것도 팔레비가 축출되는 데 적잖은 작용을 했다. 이에 팔레비는 매우 분노하며 “미국인들이 나를 배신했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1979년 이란은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면서 미국과 단교하고, 과거 팔레비 2세 국왕의 현대화 과정을 되돌려 폐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와 반대로 중국은 같은 해 미국과 수교하면서 마오쩌둥 노선을 버리고 개혁·개방을 시작했다.

지금 이란 국민들은 일어나 ‘정교합일’의 폐쇄적인 사회에서 비교적 개방적인 사회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이에 반해 중국 본토는 개혁개방에서 폐쇄적인 사회로 돌아가고 있다.

이번 월드컵 1차전에서 이란은 졌지만 이란 선수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인권을 지지하는 강단(剛斷)을 보여 존경을 받았다. 아시아 국가들의 축구는 부상하고 있지만 중국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은 그 대열에 끼지 못했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이 두 가지 실상을 목격한 14억 중국 국민의 감회는 남달랐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민족이 굴기했지만, 진정한 굴기는 물질적 부상이 아니라 민족 정신의 부흥이었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민족 정신을 말살하고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면서 축구 굴기를 꿈꾸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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