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中 당국이 ‘전국민 간첩 잡기’ 운동을 벌이는 이유

왕요췬(王友群)
2023년 08월 23일 오후 12:09 업데이트: 2024년 02월 19일 오후 3:05

지난달 1일부터 강화된 반간첩법(방첩법) 시행에 들어간 이후 중국 당국은 방첩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틱톡·웨이보·위챗·샤오홍수(小紅書) 등 소셜미디어에는 각종 방첩 영상과 홍보물이 넘쳐난다.

한 홍보물에는 이런 내용이 담겼다.

“간첩은 당신의 주변에 나타날 수도 있다. 그들은 당신과 취미가 맞는 네티즌일 수도 있고, 친밀한 연인일 수도 있고, 당신에게 배달 아르바이트 기회를 주는 친절한 사람일 수도 있다. 이들은 여색으로 유혹하고, 감성적으로 포섭하고, 인터넷을 통해 끌어들일 수도 있다.”

지난 1일, 국가안전부는 위챗 공식 계정에 ‘반간첩은 전 사회의 동원이 필요하다’는 안내문을 올렸다. 이 안내문은 전날 위챗 공식 계정을 개설한 국가안전부의 첫 게시글이다. 이 글에서 당국은 전 국민에게 간첩을 신고하라고 호소하며 포상금을 내걸었다.

이어 11일, 국가안전부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스파이 사건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발표에 따르면 용의자 쩡(曾)모씨는 모 군수업체 직원으로, 미 CIA 요원들과 여러 차례 만나 중국 측 핵심 정보를 대량으로 제공하고 자금을 받았다.

15일, 국가안전부는 위챗 공식계정에 ‘정치 안보는 국가 안보의 근본이며, 4대 속성을 파악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은 2016년에 발생한 국가 안보 사건을 언급했다.

이 글에 따르면 윈난의 모 학교 퇴직 간부인 쑤(肅)모씨는 ‘해외 적대 조직의 핵심 구성원’과 접촉해 무기를 구입하고 중국 내에서 이른바 ‘결사대’를 모집할 계획을 세웠다. ‘중국 벵가지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추진한 이 계획의 목적은 ‘공산당 정권 전복’이다. 그러나 기획 단계에서 발각됐고, 관련자들은 모두 체포됐다.

중국 공산당이 갑자기 ‘전 국민 간첩 잡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는 이유가 뭘까? 필자는 5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 중국 공산당이 전면 붕괴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

지난 7월 1일은 중국 공산당 창건 102주년 되는 날이다. 중국 공산당은 외국의 적대 세력인 러시아 공산당 통제하에 세워진, 외부에서 들어온 당이다. 중국 공산당은 창건 후 28년 동안은 중국의 합법 정부인 중화민국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뒤엎었고, 그 후 74년 동안은 선전선동 도구인 붓대(언론 등), 총대(군경), 칼자루(사법기구)를 통해 일당 독재를 수호했다.

올해 들어 100년 동안 누적된 중국 공산당의 모든 문제가 전방위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는 중공군의 간판 군종인 로켓군의 상세한 정보가 미국에 의해 공개되면서 ‘전략적 억지력’의 밑천이 드러났다.

경제적으로는 최근 역외 위안화 환율이 7.3을 돌파하는 등 위기에 직면했다. 한 재계 인사는 현재 중국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2조 달러대 외화 흑자가 실종됐고 수출은 급락하고 있고 외국인 투자도 거의 없는 상태다. 국내 경제는 시스템적으로 무너지고 있고 대외 관계는 온 세상이 다 적으로 바뀌어 포위하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내막이 드러남으로써 역외 환율 방어전에서 이길 가능성이 전무해졌다.”

문화적으로는 중국 공산당은 이미 타키투스의 함정(Tacitus Trap)에 빠졌다. 타키투스의 함정은 정부나 정권이 국민의 신뢰를 상실해 무엇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국민이 믿지 않고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현상을 말한다.

“백 년간 보지 못한 대변혁”을 맞고 있는 중국 공산당은 ‘전면 붕괴’ 위기에 처해 있고, 사방은 온통 적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것이 중국 공산당이 ‘정치적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극한 사고’를 견지하는 이유이며, 중국 공산당이 ‘전 국민 간첩 잡기’ 운동에 열을 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 중국 공산당이 ‘강권통치’ 단계에 들어섰기 때문

현재 중국 공산당은 “당정군민학과 동서남북중을 막론하고 당이 모든 것을 영도한다(黨政軍民學, 東西南北中, 黨是領導一切的)”는 구호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는 마오쩌둥(毛澤東)이 주장한 말로, 정부와 군, 민간단체 등 각계각층의 일과 중국 전역의 모든 일을 공산당이 결정권을 갖고 처리한다는 뜻이다.

이 말을 강조하는 것은 중국이 이른바 ‘강권통치’ 시대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또 세 가지 정치적 결정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첫째는 중국공산당의 정책 기조가 1978년 11기 3중전회에서 제안한 ‘경제건설 중심’에서 ‘정권 안정 유지 중심’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시진핑이 전례 없는 ‘3연임’을 결정짓고 중국 공산당 총서기와 국가주석, 중앙군사위 주석으로서 장기 집권에 들어감으로써 마오쩌둥(毛澤東) 이후 가장 강력한 공산당 최고 지도자가 됐다는 점이다.

셋째는 3명의 중앙서기처 서기가 모두 직업경찰 출신이라는 점이다. 국가안전부장을 지낸 천원칭(陳文淸), 공안부장을 겸하고 있는 왕샤오훙(王小洪), 공안부 부부장을 지낸 류진궈(劉金國) 등이다.

◇ 정권 유지에 ‘전 국민 통제’가 필요하기 때문

새롭게 개정된 반간첩법은 간첩행위의 적용 범위를 크게 확대해 ‘국가 안보·이익과 관련된 각종 문건과 데이터, 자료 및 물품의 정탐, 수집, 매수, 불법적인 제공’을 간첩행위로 규정했다. 기존 법률에서 ‘국가기밀’에만 적용하던 범위를 ‘국가이익’이라는 매우 포괄적인 범위로 확대했다.

‘국가 안보·이익과 관련된 각종 문건과 데이터, 자료 및 물품’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중국 공산당의 통치에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 포함될 수 있다.

새로운 반간첩법은 공안부·국안안전부·검찰원·법원 등 중국 공산당의 독재기계에 ‘간첩죄’를 구실로 민중을 박해할 수 있는 ‘만능 도구’를 제공했다.

중국 공산당은 “전 국민이 간첩 잡기에 참여한다”, “간첩이 바로 당신 곁에 있다”고 대대적인 선전선동을 벌이고 있다. 이는 사람과 사람 간의 불신을 조장해 서로를 경계하게 하고, 불만이 있는 상대를 고발하게 한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서로를 불신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지만, 이럴수록 중국 공산당의 정권 유지에는 이롭다.

◇ 공산당 자체의 문제를 ‘국내외 적대세력’에 전가할 필요가 있기 때문

일찍이 맹자는 “무릇 사람은 스스로를 하찮게 여긴 뒤 남이 자신을 업신여기고(夫人必自侮, 然後人侮之), 한 집안은 스스로 자기 집안을 훼손한 뒤에 남이 망가뜨리며(家必自毀, 而後人毀之), 한 국가는 스스로 자기 나라를 망친 뒤에 남이 무너뜨린다(國必自伐, 而後人伐之”고 했다.

내적 원인은 만물의 발전과 변화의 근원이다.

중국 공산당의 망당(亡黨) 위기는 근본적으로 공산당 자체의 문제에 기인한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의 100년 역사를 보면 중국 공산당은 모든 문제를 상대에게 돌리는 것이 하나의 법칙이 됐다.

대만해협의 위기는 ‘대만 독립분자’ 때문이고, 홍콩의 문제는 ‘홍콩 독립분자’ 때문이고, 신장(新疆)의 문제는 ‘신장 독립분자’ 때문이고, 티베트 문제는 ‘티베트 독립분자’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 공산당은 외국 정부와 갈등을 빚으면 잘못은 미국, 일본, 한국 등 ‘외부 적대세력’에 있다고 한다.

중국공산당은 당면한 국내외 모든 문제를 ‘국내외 적대세력’이라는 프레임에 가둘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이 말하는 ‘간첩’은 바로 소위 ‘국내외 적대세력’의 대리인이다. 전 국민이 간첩 잡기에 나서면, 중국 공산당은 자체의 모든 문제를 아주 편리하게 ‘국내외 적대세력’에 전가할 수 있다.

◇ 다시 한번 반대파를 제거하고 지도자 권위를 세울 필요가 있기 때문

100년 동안 중국 공산당 독재자는 반대파를 제거하고 지도자 개인의 권위를 확립하고 대중을 협박하기 위해 ‘간첩 잡기’ 운동을 수차례 벌였다.

1930년대 중국 공산당은 이른바 AB단(AB團·Anti-Bolshevik League)을 잡기 위한 숙청운동을 각 근거지에서 벌였다. 중공군 상장(上將) 샤오커(蕭克)의 회고록에 따르면 이 숙청운동에서 10만 명이 살해됐다.

1940년대 중국 공산당은 옌안 정풍운동(整風運動) 후기의 ‘구조운동(搶救運動)’에서 많은 ‘특무’를 잡았다. 마오쩌둥(毛澤東)의 비서를 지낸 리루이(李銳)는 “옌안 시기 구조운동에서 1만5000명의 간첩을 잡았지만, 실제로 공산당 내부에 침투한 간첩은 1명도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1960년대 문화대혁명 시기에 ‘간첩 잡기’ 운동이 다시 한번 절정에 이르렀다. 중국 공산당을 위해 생사를 넘나들었던 지하 당원들은 거의 ‘특무’로 몰렸고, 그 결과 많은 가정이 풍비박산 났다.

1967년 9월 8일, 중앙문혁소조 고문인 캉성(康生)은 류사오치(劉少奇) 당시 국가주석의 부인 왕광메이(王光美)를 체포하는 보고서를 직접 작성했다. 그는 이 보고서에서 “(왕광메이가) 미국 전략정보국의 특무, 일본과 장제스 비적의 특무”라고 주장했다. 마오쩌둥의 아내 장칭(江靑) 중앙문혁소조 부조장이 이 보고서에 서명했다. 이로 인해 왕광메이는 중국 공산당 고위층이 수감되는 베이징 근교의 친청(秦城)감옥에서 12년 동안 수감됐다.

중국 공산당이 이런 운동으로 숙청한 사람은 대부분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거나 감옥에서 고초를 겪었다. 21세기 오늘날 중국 공산당이 또다시 ‘전 국민 간첩 잡기’를 연출함으로써 역사의 비극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맺음말

중국 공산당은 ‘전 국민 간첩 잡기’ 운동을 국가 안보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장쩌민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대만 면적의 40배가 넘는 중국 영토를 러시아 등에 아무런 조건 없이 넘겼다. 이것이야말로 국가 안보를 해치는 초특급 매국행위로, 간첩행위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장쩌민을 체포하기는커녕 “위대한 마르크스주의자,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 정치가, 군사가, 외교가”라고 칭송했다.

이로 볼 때, 중국 공산당의 ‘전 국민 간첩 잡기’ 운동은 사회 생태계를 악화하고, 각종 갈등을 격화하고, 중국 공산당의 멸망을 가속화하는 촌극에 불과할 것이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