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권수립 70주년 행사 불참한 홍콩 갑부 리카싱의 ‘마이 웨이’

Li Muyang, China News Team
2019년 10월 4일 업데이트: 2019년 10월 7일

중국 공산당 정권 수립 70주년 기념일이었던 지난 1일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홍콩 고위급 대표단 240명을 이끌고 베이징을 방문했다.

홍콩 대표단의 베이징 방문을 앞두고 홍콩 재계를 대표하는 리카싱(李嘉誠) 청쿵(長江)그룹 회장의 참석 여부는 세간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리카싱 회장은 고령을 이유로 장남인 빅터 리를 대신 참석시켰다. 리 회장과 함께 우광정(吳光正) 전 홍콩 주룽창 그룹 회장도 베이징의 초청을 완곡히 거절했다.

리카싱 회장의 불참은 최근 중국 정권에 대립각을 세워온 행보와 맞물려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중국은 홍콩 시위 발생 이후 홍콩의 부동산 업자들에 대한 발언을 이어왔다.

강압적인 ‘토지 기부’ 거부한 리카싱 회장

중국 정권은 홍콩 시위의 근본 원인 중 하나 주택 문제를 지목했다. 중국의 사법·공안 조직인 공산당 중앙정법위원회는 공식 SNS 계정에서 “홍콩 젊은이들이 높은 집값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정부에 분출시켰다”며 “분출 대상이 틀렸다”고 전했다.

중국 관영매체는 “홍콩 시위의 근본 원인은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이라며 “리카싱을 비롯한 홍콩 부동산 재벌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사설에서는 “선의를 베풀라”고 주장했다. 홍콩 정부의 주택공급 확대를 위한 토지수용 정책에 적극 협조하라는 지적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부동산 재벌들은 잇따라 보유한 땅을 내놓겠다며 ‘토지 기부’ 동참을 발표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홍콩 4대 부동산 개발기업 중 하나인 뉴월드(新世界) 그룹은 보유 토지의 17.8%에 해당하는 8만 4000여 평의 토지를 정부와 사회단체에 기부한다고 밝혔다. 기부한 토지의 가치는 34억 위안(약 52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를 이어 순훙카이(新鴻基·SHKP) 그룹도 최근 툰먼 지역의 토지를 정부에 반납하겠다고 발표했다. 헨더슨(恒基兆) 등 다른 그룹도 정부와 협조해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리 전 회장의 청쿵(長江)그룹은 “상하이 자회사를 통해 그동안 계속 기부해왔고, 여러 사회 공익 프로그램을 직접 지원해왔다”면서 이번 ‘토지 기부’에 동참하지 않았다.

홍콩 자치 요구하며 중국 정권 비판 광고

리카싱은 지난달 16일 홍콩 신문 2곳에 전면 광고를 냈다. 그중 하나는 얼핏 보면 폭력 시위에 반대하는 광고로 보이지만 상하좌우에 실린 문구의 첫 글자와 끝 글자를 합치면 “책임은 국가에 있다. 홍콩의 자치를 허용하라”라는 뜻으로 해석됐다. 은연중에 중국 정권을 비판하는 광고로 풀이됐다.

다른 하나에는 당나라 측천무후의 둘째 아들 이현(李賢)이 쓴 “황대 아래 심은 오이, 어찌 또 딸 수 있겠는가(黃台之瓜 何堪再摘)”라는 문장이 실렸다. 형을 죽인 어머니에게 골육상쟁의 결과는 멸망임을 경고하는 내용이다. 홍콩인을 더 이상 압박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풀이됐다.

직접적인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리카싱 회장은 지난달 9일 한 불교 행사에서 홍콩 사태를 언급하며 “젊은이들은 큰 국면을 생각하라”고 조언한 뒤 “중국 집권자는 미래의 주인공들에게 관용을 베풀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중국 공산당 중앙정법위원회는 “범법자에 대한 자비는 범죄 용인”이라며 “리카싱이야말로 홍콩 젊은이들의 절망을 초래한 장본인”이라고 질타했다.

리카싱 회장은 침묵하는 대신 “관용은 결코 방임이 아니며 법적인 형식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맞받아쳤다.

앞서 2014년 우산혁명 때에도 리카싱 회장은 소신 발언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당시 홍콩 정부와 정·재계 고위층은 “홍콩 경제에 큰 손실을 가져왔다”며 우산혁명을 비난했지만, 리카싱 회장은 “양심적으로 말하자면, 영향이 적다”고 말해 당국을 당혹스럽게 했다.

프랑스 공영방송 RFI에 따르면 2012년 중국 지도부가 홍콩 행정장관을 선정할 때, 리카싱 회장은 중국 정부가 렁춘잉을 지지하는 것을 알면서도 탕잉녠을 지지했다. 홍콩 빈과일보는 “이 사건 이후 리카싱이 시진핑 주석과 불편한 관계가 됐다. 베이징에 협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미운털이 박혔다”고 분석했다.

“홍콩 시위는 집값 때문”이라는 중국 공산당의 계산

지난달 30일 ‘포린 어페어스’지에 게재된 컬럼비아대 동아시아연구소 앤드루 나단 교수의 기고문에 따르면, 시진핑은 내부모임에서 “경제 발전은 현재 홍콩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황금 열쇠다. 군대 파견은 정치적으로 죽음의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발언에는 홍콩을 군사적 압박 대신 경제적 수단으로 통제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게 나단 교수의 분석이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중국 소식통의 발언을 인용해 “중국 공산당은 홍콩 상류층이 홍콩시민과 시위대를 지지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고 보도했다. 중국 정권이 홍콩 사태의 원인을 정치적 요인이 아닌 경기 침체와 비싼 집값 등 경제 문제로 보고 있기 때문에, 상류층은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홍콩 시위대는 송환법 완전 철폐 외에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경찰의 강경 진압에 대한 독립조사 ▲체포된 시위대 무조건 석방 및 불기소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등 5대 요구사항을 내세우고 있다. 또한 시민들은 홍콩 반환 이후에도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유지하기로 한 ‘일국양제’ 보장을 중국 공산당에 촉구하고 있다.

홍콩인들은 시위의 원인으로 주택가격 등 경제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중국 공산당이 경제 카드를 꺼낸 것과 관련해 1950년대 ‘지주 비판 투쟁’ 전략과 닮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과거 농민들을 선동해 지주 계층과 대립하게 한 뒤, 지주 수백만 명을 살해하고 토지를 몰수했다. 그러나 당초 약속과는 달리 몰수한 토지를 농민들에게 나눠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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