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대급 통화량에도 인플레 잠잠…“최악 자금난 온다”

강우찬
2024년 04월 2일 오후 4:32 업데이트: 2024년 04월 2일 오후 6:19

중국 공산당(중공) 당국이 1분기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4.8%로 발표하면서, 해외 관측통들은 올해 목표치인 5% 달성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반응을 내놓고 있다.

반면, 중공이 시중에 막대한 자금을 풀었지만, 인플레이션이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자금경색 조짐을 보인다는 점에서 올해가 중국 경제가 최악의 자금난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중공 관영 신화통신은 1일 중국은행 발표 자료를 인용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동기 대비 약 4.8%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 이유에 관해서는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수요 및 국제 무역 심리 회복”, 대내적으로는 “예상보다 양호한 소비와 제조업 투자”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중국은행은 2분기 성장률에 관해서는 약 5.1%로 예상했다. 중국의 올해 GDP 성장률 목표치인 5%를 살짝 상회하는 수준이다. “산업 고도화와 체질 전환이 두드러지면서 내재적 성장 모멘텀이 강화되고 있다”는 예상 근거를 제시했다.

블룸버그는 이날 중국이 설정한 ‘성장률 5%’를 “야심찬 목표”라고 평가하면서, 이번 중국은행 발표에 힘입어 시장에 낙관론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역대급 총통화량에도 물가 상승 실종 미스터리

같은 기간 중국의 소비자 물가는 거의 인플레이션을 나타내지 않았다. 올해 1월 중국의 소비자 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0.8%로 역성장하며 14년 만에 최대치로 하락했다. 시장에서는 디플레이션 우려를 쏟아냈다.

다만 2월에는 0.7%로 반등했고 3월도 0.7%로 전월과 같은 수치를 나타내며 완만한 상승세를 이뤘다. 경제 규모가 5%씩 성장하는데도 물가는 거의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프리랜서 경제평론가 궁성리(鞏勝利)는 많은 돈을 풀고 있는데도 인플레이션이 거의 없는 것에 의문을 나타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에 따르면, 중국의 총통화량(M2)은 2월 말 기준 299조 5600억 위안(약 5경5630조원)이다. 전년 동기 대비 8.7% 증가한 것으로, 달러당 환율인 7.23위안으로 계산하면 같은 기간 미국의 2배에 해당한다.

M2는 국가마다 약간씩 기준이 다르지만, 중국은 통화와 국내 은행 등에 예치된 예금까지 범위에 들어간다. 예를 들어 정기예금이 증가하면 유통되는 돈은 그만큼 줄어들고, 거래와 소비가 감소해 경기가 악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궁성리는 “수년 동안 중국의 M2 성장률은 GDP 성장률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았다”며 “현재 중국의 M2는 지난해 GDP(126조 위안)의 2.3배에 달한다. 미국은 M2가 GDP의 0.76에 그친다. 이를 보면 중국의 통화량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은행 대출로 유동성 공급…통화량 ↑ 빚↑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은 채권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직접 화폐를 공급한다. 반면, 중공 인민은행은 상업은행이나 정책은행을 통해 신용대출을 하는 방식으로 유동성을 공급한다.

신용대출이 증가하는 것은 그만큼 빚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대출을 회수할 수 있거나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 문제가 작다. 하지만, 신용대출 증가 속도가 GDP 성장률을 지속적으로 넘어서면 부채 리스크가 커진다.

궁성리는 “2000년 중국의 M2는 13조 위안이었다. 현재는 23배 증가한 300조 위안이다”라며 “같은 기간 중국의 GDP는 14배 정도 성장했다. 투자가 성장보다 너무 급격하게 증가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현재 중국의 화폐 공급량은 사상 최대치에 달했는데도 중국의 일부 지방정부에서는 자금 부족으로 신규 투자를 전면 제한하고 있다”며 “중국의 자금이 바닥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로이터통신 1월 보도에 따르면 중공 당국은 지방정부와 국영은행에 랴오닝성, 톈진시, 충칭시 등 부채 리스크가 심각한 12개 지역의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거나 연기할 것을 지시했다. 또한 투자효율을 검토해 일정 기준에 미달하는 프로젝트는 투자 규모를 축소하도록 했다.

궁성리는 “지방정부의 과도한 건설 사업이 문제”라며 “자금난에도 불구하고 중앙 당국은 통화량 공급을 주저하고 있다. 중국의 화폐 공급은 곧 부채 증가이기 때문에 이미 지방정부 채무 리스크가 위험한 상황에서 추가 유동성 공급이 어렵다. 올해부터 중국은 사상 최악의 자금 부족에 직면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 국무원 산하 재정부는 2023년 말 지방정부의 부채가 40조 위안(약 7446조원)을 넘어섰으며 같은 해 이자비용만 1조2천억 위안(약 233조원)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의 대부분은 신규 차입을 통해 상환되고 있다. 빚 돌려막기를 하는 상황이다.

재정부는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미 채무불이행 수준에 달했을 것이라고 국제 금융 기관들은 분석한다. 재정부 통계는 지방정부들이 자금 조달을 위해 운용하는 특수법인 ‘LGFV’의 부실을 제외한 것이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는 이를 포함하면 중국 지방정부의 실제 부채 규모가 공식 통계의 2배 이상인 94조 위안(약 1경749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빚으로 이끌어온 성장 모델 한계…전망 불투명

지방정부 부채는 부동산 시장 위기와 함께 중국 경제 회복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된다.

올해 초 두 달 동안 전국 부동산 개발 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9.0% 감소했고, 신규 주택 판매는 29.3% 감소했다. 부동산 개발 기업의 자금 조달도 24.1% 감소했다.

궁성리는 “부동산 개발업체들은 빚을 내서 사업을 한다. 빚이란 건 결국 갚아야 할 돈이다. 현재 중국의 부동산 위기는 부채에 의존한 성장이 한계에 달하며 그동안 누적된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이라며 “미래의 자금을 끌어다가 억누르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군소 개발업체들은 이미 줄줄이 도산했다. 헝다, 비구이위안 같은 큰 업체들도 기존 방식을 탈피하지 못해 문제가 된 것”이라며 “이제는 완커그룹이 자금난을 넘길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밝혔다.

로이터에 따르면 지난달 초 중공 당국은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진 부동산 개발업체 완커그룹에 대한 금융 지원을 강화할 것을 대형은행들에 요구했다. 민간 채권자들에게는 완커와 부채만기 협상에 적극적으로 응하도록 했다.

이는 지난 헝다, 비구이위안 사태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다. 완커그룹이 두 회사와 달리 지분 상당분을 국유자산 감독기관이 보유한 사실상 국유기업이기 때문이라는 게 시장의 견해다. 중공은 중국 전체 경제의 약 70%를 차지하는 민간을 약화하고 30%인 국유기업을 강화하는 이른바 ‘국진민퇴’를 추진하고 있다. 경제 통제력을 높이는 조치로 이해된다.

완커의 ‘덩치’ 역시 중공이 직접 개입하게 된 이유로도 꼽힌다. 광둥성 선전시에 본사를 둔 중국 최대 규모의 부동산 기업으로 지난해 판매액 기준 중국 부동산 분야 2위를 기록했다. 완커그룹이 파국을 맞을 경우 중국 전체 부동산 시장에 더 큰 위기가 닥칠 수 있다.

한편, 지난달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중국의 주권 신용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하며 지방정부 부채와 부동산 리스크에 대한 경고를 보냈다.

* 이 기사는 뤄야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