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애국주의 교육법’ 제정…“내줬던 자유, 도로 빼앗는 과정”

강우찬
2023년 10월 27일 오후 9:12 업데이트: 2023년 10월 27일 오후 9:12

학생뿐만 아니라 공무원, 직장인 등도 적용
이념, 정치, 혁명열사…공산주의 교육 강화

중국이 ‘중화인민공화국(중공) 애국주의 교육법’을 제정하며 공산주의 사상 통제의 고삐를 잡아 쥐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학교 교육에만 그치지 않는다. 공무원, 직장인, 과학자, 홍콩·마카오·대만 등 다양한 그룹에서 애국주의를 강화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불교, 천주교, 개신교 등 종교단체에서도 중공에 대한 충성 교육을 강화한 점이 눈에 띈다. 그만큼 사상적으로나 이념적으로 공산당이 약해졌음을 방증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애국주의 교육법은 지난 24일 중공의 ‘거수기 의회’로 불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 제6차 회의에서 통과됐으며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이 법은 총 5장 40개 조항으로 구성돼 이념과 정치, 역사와 문화, 국가 상징과 상징물, 헌법과 법률, 국민 통합과 국민 연대, 국가 안보와 국방, 순국선열(혁명열사)과 모범적 인물의 행적 등을 총망라한다.

적용 대상은 국가 교육 시스템을 비롯해 문화·예술 활동, 출판물, 관광에도 통합된다. 중국의 영화시장은 이미 애국주의 영화에 장악된 상태다. 향후 이러한 추세가 엔터테인먼트 분야 전반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중국 문제 전문가들은 이번 애국주의 교육법 제정이 2020년 7월 ‘홍콩 국가안전법’을 시작으로 ‘대외관계법’, ‘반간첩법 개정안’ 등 시진핑 정권이 추진하는 일련의 이념 통제 강화의 일환으로 평가한다.

RFA에 따르면, 미국 텍사스 세인트 토마스대학 국제연구센터 예야오위안(葉耀元) 교수는 “국가안전법 이후 시작된 언론자유 박탈 작업의 한 단계”라며 “다시 말해 ‘이제 시간이 다 됐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이 과거 서방의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눈속임 작전의 하나로 언론 자유를 일부 허용했었지만, 이제 다시 본색을 드러내면서 내줬던 권한을 다시 빼앗아 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중공 간 경쟁의 격화, 제로 코로나 이후 촉발된 ‘공산당 퇴진’ 시위 등 안팎의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공산당이 철저한 사상 통제에 힘을 쓴다는 분석도 나온다.

프린스턴대 중국학 연구소의 천쿠이더(陳奎德) 소장은 “애국주의 교육법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 경기 침체, 국제적 포위 혹은 고립과 관련됐다”며 “중국 공산당에 대한 충성을 끌어올리려면 자국민, 특히 젊은이들을 세뇌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천 소장은 “최근 제정된 중국의 법안들은 매우 모호한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법안이 모호할수록 해석의 여지가 많아 개인의 자유에 대한 제약이 커질 수 있다”며 “애국주의 교육법은 이념 통제를 벗어나는 이들을 처벌할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법 제37조부터 제39조에 따르면 모든 시민 또는 단체는 법안에서 다루는 내용을 모욕, 왜곡, 부정, 비방, 전용, 파괴, 선전 또는 미화를 금지하고 애국애족 정신을 고취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선전·미화를 금지한 것은 지나친 찬양으로 역효과를 내는 이른바 ‘저급홍(低級紅), 고급흑(高級黑)’을 경계한 것으로 풀이된다. 저급홍은 수준 낮은 충성으로 반감을 일으키는 행위, 고급흑은 칭찬하는 척하면서 깎아내리기를 가리키는 중국의 유행어다.

해당 조항에서는 이를 위반할 경우 행정 규제 또는 공안 관리 처벌을 받을 수 있으며, 형사 책임을 질 수도 있다고 했다. 또한 애국교육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지도자나 직원도 징계를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홍콩 민주화 운동가 사무엘 추는 RFA의 서면 인터뷰에서 “애국주의 교육법은 다양한 집단을 겨냥해 통제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며 “이는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이 젊은 세대, 중국인들의 집단 이탈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중국 공산당이 이번 법 제정을 통해 종교 단체를 대상으로 한 애국주의 교육을 강화한 것도 신앙심에 기반한 종교인들의 결집력을 두려워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