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넘어선 자비와 희생…희곡 ‘알케스티스’

워커 라슨(Walker Larson)
2024년 02월 2일 오전 9:41 업데이트: 2024년 02월 5일 오전 11:27

“다른 이를 살리기 위해 당신은 죽을 수 있는가?”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이자 그리스 3대 비극 시인 중 한 명인 에우리피데스(기원전 484~기원전 406년 추정)는 기원전 438년에 쓴 희곡 ‘알케스티스’에서 이 같은 질문을 독자에게 건넸다.

‘에우리피데스의 조각상’, 작자 미상 | 공개 도메인

‘알케스티스’는 그리스 신화에 기반한 이야기다. 작품에는 태양의 신 아폴론이 그리스 북동부 테살리아의 왕 아드메투스가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게 되자, 그의 죽음을 다른 이에게 전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드메투스는 자신을 대신해 죽어줄 사람을 찾지만, 번번이 거절당한다. 결국 그의 아내 알케스티스가 그의 요청을 받아들인다.

아내의 희생

그녀가 남편을 대신해 죽음을 맞기로 한 날 밤, 사람의 형상을 한 죽음은 한 손에 칼을 들고 구부정한 자세로 궁전을 향해 천천히 걸어온다. 알케스티스는 남편을 대신해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목욕을 하고 깨끗한 의복과 보석으로 치장하며 몸과 마음을 정숙하게 가다듬은 그녀는 가정의 신 헤스티아의 제단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이들을 생각하며 기도한다.

‘죽음의 천사’(1851), 호레이스 베르네,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 | 공개 도메인

“여신이시여, 이제 저는 지하로 내려가야 하니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간청합니다. 이제 어머니를 잃게 된 제 아이들을 지켜주시기를 바랍니다.”

거대한 슬픔 앞에서도 그녀는 눈물을 보이지 않고 평소와 같은 밝은 얼굴로 사랑하는 이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그녀는 의연한 모습으로 궁전에 있는 모든 제단을 찾아가 화환을 걸고 기도를 드린다. 작가 에우리피데스는 그녀를 죽음 앞에 선 보편적 인간이 아닌, 세상을 초월한 인물로 묘사해 신성하고 엄숙한 모습으로 그려냈다.

‘알케스티스의 죽음’(1780년경), 요한 하인리히 티슈바인 | 공개 도메인

그러나 남편과 함께 쓰던 침실에 작별을 고하는 순간, 그녀는 결국 오열하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이윽고 그녀는 남편의 품속에서 숨을 거둔다.

아드메투스의 약점

알케스티스의 남편 아드메투스는 자기 대신 죽음을 맞이한 아내에 대한 죄책감과 슬픔에 몸부림친다. 그에게는 남자답게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아내를 희생시켰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의 장인인 알케스티스의 아버지는 그에게 뻔뻔하게 운명을 회피했다며 질책한다.

아내의 죽음으로 슬픔과 괴로움에 빠져 있던 아드메투스는 자신의 궁전을 찾아온 영웅 헤라클레스를 융숭하게 대접한다. 상중(喪中)이었지만 그리스인들이 신성한 의무로 여겼던제니아’, 즉 환대를 실천한 것이다. 

비극의 ‘아나그노시스’

희곡의 끝 무렵, 아드메투스는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아내가 없는 삶, 그녀에 대한 죄책감을 품고 살아야 하는 삶은 끔찍하고 비참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얼마나 사악한 존재였는지 자각하는 순간, ‘아나그노시스’를 경험한다. 아나그노시스는 ‘인지’ 또는 ‘자각의 순간’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개념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詩學)’에서 비극의 가장 감동적인 구성요소 중 하나로 여긴 것이다.

‘알케스티스를 위해 죽음과 씨름하는 헤라클레스’(1870년경), 프레데릭 레이턴 | 다드로/CC0 1.0 DEED

아드메투스는 “나는 죽었어야 했는데 운명을 피해 비참한 삶을 끌고 왔을 뿐이다. 이제야 나는 이 사실을 깨달았다”라며 잘못을 뉘우친다. 그는 자신을 비난하는 이들의 손가락질과 모진 말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회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잘못을 절실히 깨닫는 순간, 헤라클레스가 다시 등장해 그에게 큰 반전과 기쁨을 선사한다.

비극에서 희극으로

‘지하세계에서 돌아온 헤라클레스’(1776년), 요한 하인리히 티슈바인 | 공개 도메인

아드메투스의 상실감을 알게 된 헤라클레스는 아내의 상중에도 자신을 환대한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저승에서 알케스티스를 찾아 그의 품에 되돌려 준다. 상상하지 못한 반전에 아드메투스는 매우 기뻐하며 헤라클레스에게 감사를 전한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작가 특유의 낙관주의가 드러나는 장면이다.

희생과 고통에 대한 해답

이 작품에선 고대 문학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알케스티스의 놀라운 헌신과 희생, 겸손함과 용기가 돋보인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전쟁과 죽음고통에 대한 많은 글을 남긴 호메로스(기원전 800~기원전 750년 추정)의 작품에도 희망과 숭고함에 대한 존경은 들어 있지만, 죽음과 삶에 대한 이토록 깊이 있는 접근은 나타나지 않았다. 

주로 그리스 신화에 기반을 둔 당시 문학 작품은 신에 의해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이 다수를 이뤘다하지만 에우리피데스는 이 작품을 통해 희생이 고통을 초월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남편을 위한 알케스티스의 희생은 사랑의 승리로 반전을 이루고,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 같던 결말은 다시 죽음과 고통의 패배로 이어진다. 아드메투스는 희생을 거부한 대가로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크나큰 불행에 휩싸인다.

‘죽음의 법정’(1820), 렘브란트 필, 디트로이트 예술 연구소 | 공개 도메인

고통을 포용한다고 당장 고통이 사라지지는 않지만 심리적, 영적 차원에서는 인내의 만족과 성취를 얻을 수 있다. 일차원적 시각에서 보면 희생은 곧 손해로 이어질지 모르지만, 때때로 희생은 불가능을 이겨내고 새로운 차원의 문을 열어줄 수도 있다.

워커 라슨은 위스콘신에 있는 사립 아카데미에서 문학을 가르치며 아내와 딸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 영문학 및 언어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헤밍웨이 리뷰, 인텔리전트 테이크아웃, 뉴스레터 ‘헤이즐넛’에 글을 기고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