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 주저앉는 대륙, 일어서는 열도…격동의 아시아

강우찬
2024년 03월 4일 오전 11:59 업데이트: 2024년 03월 4일 오후 12:41

일본 닛케이 증시 사상 최고치…잃어버린 30년 극복
중국 증시 자금 일본으로 이동, 동북아시아 시사점은?

지난달 26일 일본 증시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가 3만9185포인트로 마감하며 ‘버블 경제’ 시절이었던 1989년 12월 29일에 세운 사상 최고치인 3만8915포인트를 넘어섰다. 4일 오전에는 장중 4만264선까지 치솟으며 4만대를 돌파했다.

이 수치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일본은 1990년대에 버블 경제가 붕괴되면서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오랜 침체기를 겪어왔다. 그렇다면 일본 경제가 상승 사이클에 진입했다는 의미일까, 이러한 추세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현재와 미래에 어떤 시사점을 주고 있을까, 에포크타임스 전문가들이 진단했다.

닛케이, 경기회복 힘입어 34년 만에 최고치

중화권 시사평론가 리쥔은 “일본 경제가 부활의 신호를 울린 것은 지금이지만, 그 시작은 아메노믹스로부터 비롯됐다”고 말했다.

아베노믹스는 고 아베 신조 전 총리가 2012년 발표한 경제 정책이다. 그는 ▲무제한 양적완화 ▲공공사업 확대 ▲민간 투자를 촉진하는 성장 전략 등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된 경제 정책을 내세웠다.

리쥔은 “아베노믹스 도입 이후 일본의 기업, 주식 시장, 부동산이 서서히 살아났다. 도입 1년 만인 2013년 닛케이지수는 약 8000포인트에 머물렀지만 지금은 3만9000포인트를 웃돌며 34년 전 기록한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경제적 이정표를 세운 것”이라고 평가했다.

JP모건의 수석 일본 전략가는 “이것이 한 시대의 종말, 즉 일본의 디플레이션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니시히라 리에 전략가는 27일 발표된 일본의 1월 핵심 소비자물가가 2%로 추정치(1.8%)를 넘어선 것, 임금 지수가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상승 추세를 보인 것 등을 경기 반등의 신호로 풀이했다.

중국 증시에 실망한 투자자들, 분노의 일본行

일본 증시의 화끈한 상승에는 자국 증시에 분노한 중국인 투자자들도 한몫했다.

리쥔은 “일본 언론들을 종합하면, 올해 1월 이후 대규모 중국 자금이 다양한 펀드를 통해 일본 증시로 유입됐다. 이 자금의 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10배”라고 말했다.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한 증권사 객장에서 한 투자자가 증시 시황판 앞에 팔로 머리를 괸 채 앉아 있다. | 항저우=AFP/연합뉴스

그는 “이는 중국 증시가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었음을 보여준다”며 일찌감치 일본 증시로 눈을 돌려 거액을 벌어들인 투자자 워런 버핏의 사례를 들었다.

리쥔은 “워렌 버핏은 지난해 말 일본에서 1200억 엔(약 1조원)을 저금리로 빌려, 앞서 빌린 1600억 엔(약 1조4천억원)과 함께 총 2800억 엔을 일본 증시에 투자해 최소 약 80억 달러(약 10조원) 이상을 벌어들였다”며 “월가를 비롯해 각국 투자자들이 일본 증시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버핏은 지난 2020년 8월 일본 주식에 투자했다. 당시 적잖은 언론은 중국이 코로나19 백신을 상용화하며 본격적인 경기 회복에 들어갈 것이라며 장밋빛 전망을 쏟아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다들 의아해했던 버핏의 행보는 놀라움으로 되돌아왔다. 그의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가 투자한 일본 무역회사 5곳은 지난 2월 말 기준 수익률 185~402%를 기록했다. 실제로 버크셔는 2019년 하반기부터 일본 주식을 매입했다고 발표했다.

리쥔은 “일본은 주택 가격도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며 “부동산 버블이 터진 후 일본의 주택 가격은 20~30%, 최대 60%까지 하락했으나 (아베노믹스 원년인) 2012년 저점을 찍었다. 도
쿄 주택 가격이 지난 2년간 상승하면서 일본 주택 시장에 투자한 업체들이 수익을 내고 있다. 월가뿐만 아니라 홍콩 대형 펀드, 캐나다 부동산 플랫폼 등이다. 마윈도 일본에서 부동산을 샀다”고 밝혔다.

일본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2020년 이후 중국인들의 일본 부동산 투자는 2019년 이전에 비해 2~3배 증가했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이 일본의 오염 처리수를 비난하고 이에 선동된 중국 네티즌들이 반일불매 운동을 펼쳤지만, 그사이 정작 중국의 고위층 부호들은 일본 부동산을 사들인 것이다.

일본, 금융은 강세지만 내수 등 실물경제는 ‘아직’

대만의 유명 경제학자 우자룽은 “일본의 디플레이션 시대가 끝나고 인플레이션 2%대로 돌아왔지만 아직 내수가 되살아났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우자룽은 “주식 시장, 부동산 시장 등 금융 관련 지표들은 강세를 보이고 있으나 실물 경제에서 아직은 내수가 충분히 강하지 않다. 일본의 물가상승은 수입물가 상승 탓”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교토의 유명 관광지인 400년 역사의 니시키 시장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걷고 있다. | 로이터/이세이 카토 /연합뉴스

그는 “이는 일본이 여전히 양적완화를 유지하는 이유”라며 “일본 정부는 금융 부분의 강세가 국내 소비·투자·고용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시간을 벌려 한다. 그래서 일본 중앙은행이 통화정책 정상화를 주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통화정책을 정상화하면 지금의 낮은 엔화가 절상될 것이고 수입물가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해소된다”며 “기시다 내각은 국가 경제가 전반적으로 건전성을 회복해 선순환에 돌입할 수 있는 시기를 보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자룽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에서 일어선 일본의 경제 발전 과정은 이후 아시아 주변국에서 모델이 됐다며, 특히 중국을 중심으로 이를 설명했다.

그는 “우선 자본주의 발달 과정을 간략히 정리하겠다”며 “자본주의가 처음 번성했던 시기는 영국의 산업혁명 시기로 영국의 자본주의 시절 기업들은 모두 가족기업이었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라고 운을 뗐다.

이어 “이 모델이 미국으로 확산됐지만 합리성과 개인의 선택을 중시하는 미국에서는 2세나 3세가 경영권을 이어받게 하는 게 쉽지 않아, 전문 경영인을 중심으로 자본주의를 발전시켰는데, 이것이 바로 미국식 모델이다”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이러한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에 한 가지 변화를 더했다. 바로 ‘그룹’이다.

우자룽은 “미국의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1개의 회사이지만, 일본은 대규모 그룹 형태로 발전했다. 철강, 신문, 은행 등 많은 산업에서 일종의 비즈니스 동맹인 그룹을 구성했다. 그로 인해 규모의 경제, 어려울 때 서로 돕는다는 이점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약점도 있는데, 경기가 나쁠 때 미국은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일본의 그룹들은 다소 경직적으로 대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개발한 ‘규모의 경제’를 중심으로 한 모델은 한국이 배워 갔고, 대만은 미국과 일본의 모델을 결합했다. 예를 들어 대만 TSMC는 엄청난 규모에도 여전히 1개의 기업이다. 업스트림(후방산업)과 다운스트림(전방산업)이 있지만, 일본의 미쓰이 그룹이나 스미모토 그룹과 달리 누구도 TSMC 그룹이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중국, ‘플라자 합의’ 피하려 환율 방어…미국은 새 카드로 대응

1980년대 전 세계를 호령했던 일본의 수출 경쟁력, 특히 가전제품·자동차·기계는 미국을 휘청이게 했다. 미국은 일본과의 무역 불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일본의 화폐 가치를 올리도록 하는 플라자합의를 추진했고 이는 일본에 버블 시대의 종말을 가져왔다.

우자룽은 “일본은 전쟁 후 재건을 할 때, 다른 모든 개발도상국과 같은 문제에 봉착했다. 인력은 넘쳐나는데 상품을 주문해주는 거래처가 없다는 것이다. 답은 국내 시장이 아닌 해외 시장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일본은 자체 고용과 소득이 미비해 국내 수요가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족, 기업, 정부, 국가까지 자국에서 생산한 것을 자국에서 모두 소비하는 대신 해외에 내다 팔았다. 이렇게 무역흑자와 저축을 달성하는 게 1단계다. 일본의 경제 모델은 수출과 저축에 주력하는 것인데, 이는 상대국 입장에서는 수입이 늘고 마이너스 저축이 된다는 의미가 된다”고 했다.

우자룽은 “이러한 수출주도형 모델이 장기간 운영되자 다른 국가들은 무역적자를 견딜 수 없게 됐고 무역 불균형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일본은 내수를 확대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2단계다”라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이 단계에서 일본은 경제 모델을 수출 주도형에서 부동산 주도형으로 전환하면서 부동산 개발에 주력했다. 당시 부동산의 시장은 빚을 내 집을 사는 형태, 즉 미래 소득을 현재로 앞당겨 사용하는 것이었기에 부채에 의존하는 경제 모델이었다. 부동산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투자가 과잉되면 디플레이션에 빠지는 다음 단계로 이행한다. 지난 30년간 일본이 겪은 장기 침체다.

여기까지 설명한 우자룽은 “중국 공산당은 경제발전계획을 수립하면서 이러한 일본식 경제 발전 모델을 철저히 연구했고 그대로 모방했다. 미국이 일본과의 무역 불균형을 엔화 절상으로 바로잡은 것에도 주목했다. 중국 학자들은 중국이 수출 주도형 경제로 성장하면 훗날 미국이 중국에도 일본과 똑같은 방식으로 무역 불균형 해소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하고 이에 대해 철저히 대비했다”고 했다.

위안화와 달러 지폐 | 자료사진=EPA/연합뉴스

그는 “중국 공산당의 경제학자들은 위안화 절상에 단호하게 저항했고 환율 문제나 환율 정상화 압력에 대처하는 데 많은 경험을 축적했다. 그러나 일본처럼 화폐 절상을 하지 않았는데도 부동산 시장 포화에 이어 디플레이션에까지 빠진다는 것은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고 밝혔다.

우자룽은 “중국은 실물 경제 부문에 대한 철저한 연구 없이 금융 부문의 환율 압력에만 대처했다. 그런데 미국이 예상치 못한 카드를 꺼냈다. 관세부과를 비롯해 새 전략을 구사하고 나선 것이다. 중국 공산당 경제학자들은 이에 대처할 전례를 찾지 못했고 그 이후에는 보는 바와 같다”고 지적했다.

잘나가던 중국이었지만, 공산당 총서기 시진핑이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를 끝내고 ‘중국몽’을 외치면서 미국의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고 그 후 거듭된 압박에 현재의 경제난에 빠지게 됐다는 이야기다.

중국과의 관세전쟁을 시작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였고, 트럼프 행정부의 전방위적인 대중 공격 배후에는 중국계 미국인 마일스 위(余茂春·위마오춘)가 있었다. 미국의 대중국전략 ‘총설계사’로 불리는 위마오춘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정책을 ‘불신하되 검증하라(distrust but verify)’로 요약한 바 있다.

‘불신하되 검증하라’, 이는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 국무장관이 “자유세계가 새로운 폭정에 대해 승리”하기 위해 가져야 할 접근법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위마오춘은 폼페이오 전 장관의 중국 정책 브레인이기도 했다.

일본의 부상, 미-중 갈등 둘러싼 지정학적 영향과 관련

우자룽은 미국이 중국을 가둔 ‘새 전략’의 하나로 반도체 포위 전략을 사례로 들며, 이는 일본 자동차 업계의 생존전략을 연구·모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기업들은 플라자 합의로 엔화가 절상되자, 생산 비용을 줄이기 위해 동남아시아로 생산 기지를 이전했다. 일본 자동차 업계는 수출경쟁력 유지에 중점을 두면서 필리핀에는 부품, 말레이시아에는 제조, 태국에는 전체 자동차 조립 부문을 이전하는 식으로 전체 공정을 나눠 각국에 배분했다.

결과적으로 모든 참여국에 이익이 돌아가지만, 어느 나라도 단독으로는 일본과 경쟁할 기술력과 산업기반을 갖출 수 없게 된다. 일본과 경쟁하는 대신 생산기지에 전념하면서 이익을 취하는 것이 더 손쉽기 때문이다. 일본 자동차 업계는 추월당할 걱정 없이 생산라인을 확대할 수 있다.

우자룽은 “미국은 이러한 시스템을 반도체 산업에 적용했다. 광학기술은 네덜란드, 특수 화학 소재는 일본, 메모리는 한국, 파운드리와 패키징 및 테스트는 대만에 분담했다. 대신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반도체 설계 및 생산 장비는 미국 본토에 남겼다. 그 결과 반도체 산업에서 미국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국가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에포크타임스 중국어판 편집장 궈쥔은 “최근 일본의 부상은 지정학과도 관련 깊다”고 말했다.

궈쥔은 “19세기 말~20세기 초 일본의 근대화는 주로 영국과 미국의 지원에 의존했다. 영·미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러시아의 확장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는 “러일 전쟁에서 일본은 영국 전함과 영·미 해군의 정보에 크게 의존해 승리했고 영국과 미국은 전후 일본을 경제적으로 지원했다”며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의 재부상은 냉전 기간 미국이 소련과 중국 공산당을 가두는 데 일본이 가림막 역할을 해줘야 했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과 중국 공산당이 긴장 완화 기간에 접어들면서 일본의 역할은 크게 줄어들었고, 이는 일본 경제가 침체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그런데 이제는 미국과 서방에 있어 일본의 전략적 중요성이 다시 한번 커졌다. 중국 공산당에 대응하기 위해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 경제의 부상은 일본의 인프라와 기업들의 혁신이 가져온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중 대결의 또 다른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동북아 지역의 지정학적 변화가 경제적 측면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며 “자유를 보장하는 체제와 공산독재 체제 간 대립이 뚜렷해지면서 선택의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고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