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화교단체 회장 “中 총영사는 정권 꼭두각시” 이례적 비판

한나 카이
2024년 04월 4일 오후 2:21 업데이트: 2024년 04월 4일 오후 2:21

중국계 이민자 통제하려는 中 정권에 대한 거부감
공산당의 해외 통일전선 조직 장악력에 ‘누수’ 분석도

미국의 한 화교협회가 뉴욕 주재 중국 총영사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친중(親中) 성향 화교협회들이 중국공산당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비판은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달 18일(현지 시각) 뉴욕에 있는 한 식당에서는 푸젠성 출신 중국계 인사들의 모임인 ‘푸젠동포협회(FCAA)’ 류아이화 회장의 재선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연단에 오른 단체 명예회장 천쉐돤은 “뉴욕 주재 중국 총영사관이 우리 협회를 탄압하고 있다. 이는 매우 불쾌한 일”이라며 “총영사 황핑은 중국 정권의 꼭두각시일 뿐이며, 우리는 그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천 명예회장의 연설 영상은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게시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수십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할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 푸젠성 향우회 지도자가 공산당을 겨냥해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한 사건을 두고 중국계 커뮤니티의 이목이 집중된 것이다.

화교단체, 중국계 향우회 등은 일반적으로 중국 영사관과 긴밀히 협력하며 중국공산당의 지시를 따른다. 중국공산당은 이런 단체를 활용해 해외에 거주하는 반체제 인사들을 탄압하고, 친중 내러티브를 전파하며, 해외에서의 자국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천 명예회장의 이번 발언은 화교협회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통제력이 약화하고 있음을 보여준 일로 평가된다. 중국공산당이 수십 년간 공을 들인 ‘해외 통일전선’이 분열하고 있는 것이다.

복잡한 관계

미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미국 내 중국인의 수는 508만 명을 넘어섰다. 그중 푸젠성 출신이 110만 명으로 가장 많다.

교육 수준이 낮고 영어 구사 능력이 제한적인 이들은 미국에서 생활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중국 영사관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중국 정권은 이 점을 악용한다. 해외에 있는 화교협회를 지원하며, 그 대가로 당의 지시에 따라 통일전선공작(이하 통전)을 펼치도록 하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대만 지도부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화교협회들이 확성기를 들고 대대적인 반대 시위에 나선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이 시위 관련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또한 이런 단체들은 남중국해 영유권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주장을 지지하고, 위구르 인권정책법 통과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파룬궁 박해 국제추적조사기구(WOIPFG)’의 왕즈위안 대표는 에포크타임스 중국어판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몇 년간 중국공산당이 체계적인 대외 선전 전략을 통해 전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시도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전략에는 중국 언론과 화교 미디어를 통제해 선전 도구로 활용하고, 해외의 고위 인사들을 매수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며 “이런 식으로 세계 각국에 자신들의 내러티브를 전파하려 한다”고 전했다.

홍콩의 중국화(化)

뉴욕 시민인 린성량은 에포크타임스 중국어판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총영사관이 나서서 푸젠성 출신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친중 화교 단체를 육성해 왔다”고 말했다.

또한 “이런 단체가 설립되면, 중국 총영사관이 자금을 지원해 정치적 활동을 펼치도록 종용한다”고 덧붙였다.

2020년 7월 1일, 홍콩에서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가 열린 가운데 진압 경찰들이 기자들을 향해 후추 스프레이를 뿌리고 있다. | Dale De La Rey/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199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뉴욕에서 활동하는 친중 화교 단체의 수는 빠르게 늘어났다. 공산주의 중국을 탈출해 미국에 정착한 이민자들은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홍콩 출신의 뉴욕 거주자 케네스는 “중국공산당은 뉴욕에서 ‘홍콩의 중국화’를 위한 선전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 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서양인들은 중국공산당이 어떻게 국가와 도시를 파괴하는지에 대해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홍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면, 그것을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들(중국)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단체를 은밀히 지원하고 조종했다. 이를 통해 미국 내에서 홍콩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했다”며 “이제 홍콩에서는 이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것은 홍콩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다음은 뉴욕이 될 수 있다”며 “중국공산당은 해외 단체들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그 나라나 도시를 ‘중국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탈출구

중국민주당 전국위원회의 왕쥔타오 위원장은 에포크타임스 중국어판과의 인터뷰에서 “일부 화교들은 가족을 만나기 위해 중국으로 가야 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중국 영사관과 협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중국공산당은 이런 권력을 악용해 해외에 거주하는 화교들을 통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중국공산당이 권력을 잃는 순간 그들은 곧바로 입장을 바꿀 것”이라며 “어쩔 수 없이 당의 지시에 따르는 것일 뿐, 진심으로 충성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친중 화교협회의 전 회장인 루동은 “중국공산당은 화교 단체들을 장기 말로 보고 있다. 필요할 때만 쓰고, 그렇지 않을 때는 버린다”고 에포크타임스에 말했다.

그러면서 “화교 단체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이에 중국공산당에 대한 미국의 압력이 커지면, 그들은 중국을 버리고 미국 편에 설 가능성이 높다”며 “중국공산당의 영향력이 점점 약화하자 그들도 스스로 ‘탈출구’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김연진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