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피아니스트 임미정 “음악의 선한 에너지로 정화하고 싶어”

이연재
2022년 07월 30일 오후 5:00 업데이트: 2022년 07월 30일 오후 6:07

“음악의 선한 영향력, 좋은 에너지가 살랑거리는 바람처럼 각박한 사회를 정화시켰으면 좋겠어요.”

지난 26일 서울 북촌에 자리한 ‘하나를 위한 음악재단’ 사무실에서 임미정 이사장을 만났다. 취재진이 찾았을 때 그는 회의 중이었다.

피아노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옆에 PLZ 페스티벌(Peace & Life zone Festival) 문구가 새겨진 나무판이 보였다.

“이게 보이도록 제 뒤에 놓고 인터뷰하면 어떨까요?” 그는 PLZ 페스티벌을 알리고 싶어 했다.

PLZ 페스티벌은 분단과 냉전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를 ‘평화생명지대(PLZ)’로 변모시키겠다는 목표로 기획된 뮤직 페스티벌이다. 임 이사장은 2019년부터 이 축제의 예술감독을 맡았다.

“강원도의 DMZ 접경지역은 고성, 인제, 화천, 양구, 철원인데, 사실 알고 보면 관광차가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에요. 다만 상징성을 위해서 20%는 민통선 안쪽, 그러니까 군대의 허가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는 곳에서 페스티벌을 진행합니다. 이런 곳은 허가도 굉장히 어렵지만 평소에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보니 청중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어요.”

피아니스트 임미정 이사장은 현재 한세대학교 예술학부 교수이자, 사단법인 ‘하나를 위한 음악재단’의 설립자다. “자신을 소개해 달라”는 말에 그는 “음악의 좋은 에너지를 사회와 나누고 싶은 피아니스트”라고 말했다. 이어 “그 소망을 구체화한 것이 PLZ 페스티벌”이라며 활짝 웃었다.

그리고 잠시 그의 눈과 마주쳤다. 꿈 많은 소녀의 눈이 이러할까.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음악으로 이런 활동을 하는 걸 언제부터 꿈꿨을까’ 생각해봤는데, 굉장히 오래됐던 것 같아요.”

피아니스트 임미정 “나의 꿈은 고아원장”

“70년대 들어서면서 우리나라 부모님들이 조금씩 자녀 교육에 신경을 쓰게 됐죠. 제 부모님도 그러셨어요. 그런데 때마침 앞집에 피아노 선생님이 이사 오셨는데, 부모님이 ‘앞집에 가서 피아노 배워봐라’ 해서 피아노를 시작하게 됐죠. 아주 심플해요.”(웃음)

지금도 피아노를 보면 가슴이 뛴다는 임 이사장은 피아노를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다. “피아노를 바라보면 가슴이 떨려요. 그 자태가 너무 예뻐서요.”

그는 “어릴 적 아버지가 사 주신 쇼팽의 피아노 연주곡 테이프를 듣고 또 들었던 기억이 난다”며 “음악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어릴 적 꿈은 피아니스트가 아닌 고아원 원장이었다. 대여섯 살 때부터 그랬다고 한다.

“피아노를 사랑하는 마음도 컸지만 고아원 원장은 남을 도와줄 수 있으니까 사람이 해야 할 가장 고귀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어려서부터 남을 돕는 것을 중요하게 봤거든요. 좀 이상했죠?”(웃음)

피아니스트가 된다는 것에 일종의 미안함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일반 중학교로 진학했다.

“그때 저는 피아노를 연주하고 싶은 마음과 남을 돕고 싶은 마음이 충돌하고 있었어요.”

그의 재능을 알아본 중학교 1학년 담임의 권유로 서울예고에 갔다. 그리고 뭔지 모를 석연치 않은 마음을 접어 둔 채 피아니스트의 길을 걸었다.

성공한 연주가로 ‘나눔’에 앞장…남북 음악교류하며 깨달음 얻어

미국 유학시절 그는 우연한 기회로 ‘남북 가곡의 밤’ 연주회에서 반주를 맡았다. “미국 내 서울음대 뉴욕 동창회가 주도한 음악회였는데, 실향민들이 많이 오셨어요. 근데 그분들이 제 반주를 듣고 고맙다고 하면서 우시더라고요.”

그날 그가 연주한 곡은 지난 1988년 해금된 작곡가 김순남(1917~미상)의 가곡이었다. 그는 “음악가로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에 정말 기뻤다. 그때만 해도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이 뭔지 몰라 교포들이 사는 곳에 가서 연주를 많이 했다”는 말과 함께 미국에서 생활했던 때를 떠올렸다.

‘남북 가곡의 밤’ 행사가 인연이 돼 그는 2000년 북한으로부터 초청을 받았다.

“뉴스에서 보는 것과 완전히 느낌이 달랐어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남이란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 에너지의 일정 부분을 나눔에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2000년부터 5년간 매번 북한에 가서 연주했어요.”

미국 시민권자여서 그는 비교적 자유롭게 북한 음악가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북한 음악가에게 악보를 받기도 했다. 그는 “남북 사이에 브릿지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미국에서 연주 활동하면서 북한 작품들을 소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임 이사장은 국내에서도 북한 작곡가의 곡을 연주해 눈길을 끌었다. 2005년엔 클래식 연주자로는 이례적으로 평양에서 독주회를 했다.

“북한에 가는 것은 큰 용기를 냈어야 했어요. 왜냐하면 정부에서 가라고 해서 간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결정했으니까요. 많은 분들이 우려하셨죠. ‘나중에 한국에서 활동할 때 굴레가 될지도 모른다’, ‘빨갱이 소리 듣는다’ 이런 소리를 들으니 좀 무서웠어요.”

그는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고 했다. “모든 일에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경험도 하니까요.”

임 이사장은 북에서 돌아온 뒤 음악 나눔을 준비했다.  2005년 ‘하나를 위한 음악재단’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때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겠다는 계획이 없었고 일단 사단법인 형태로 만들었어요.”

국내외 여러 교향악단과의 협연, 전국 순회 독주회, 국제 피아노 대회 심사위원 등 피아니스트로서 바쁜 활동 중에도 그가 꿈꿨던 ‘음악을 통해 좋은 에너지와 선한 영향력을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하나를 위한 음악재단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설립했나요.

“처음엔 음악의 선한 에너지를 녹여내고 싶다는 추상적인 가치로 시작했어요. 그래서 먼저 세 가지를 정했죠. 그때 영감을 받았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 좋은 가치예요. 첫 번째는 남북이 하나다. 두 번째는 이 지구상에 생명체가 하나다. 우리가 자연환경을 파괴하면 우리 스스로에게 해를 주는 거니까 생명체가 하나다. 그리고 세 번째로 저는 항상 음악을 연주하다 보니 제 안에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영적 존재가 있다는 걸 느끼거든요. 단어로 표현하기가 참 애매한데 표현을 안 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이 존재를 느낀다고 생각해요. 미움이나 증오, 어떤 편견이 없는 아주 순수한 존재를 혹자는 궁극의 지성 혹은 영혼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이 순수한 존재의 나와 사회를 살아가는 내가 하나다. 이 세 가지 가치를 위해 음악이 쓰였으면 좋겠다 해서 이 세 가지 가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사업들을 하기 시작했어요.”

임 이사장은 재단을 통해 나눔을 실천했다. 2005년 8월 도라산 역사에서 음악회를 열고 북한 어린이에게 피리를 보내기도 하고 보육원, 달동네, 몽골학교 등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음악 교육 아카데미도 열었다.

탄자니아 초등학교 음악 프로그램. | 하나를 위한 음악 재단 제공

-10년 넘게 재단을 운영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처음에는 추진한 사업이 망해서 제 개인적인 돈도 많이 없앴어요. 너무너무 어려웠어요. 하지만 제가 음악만 했다면 몰랐을 경험들을 많이 하다 보니 철이 들었다고 할까요? 총체적으로 사회를 이해하는 데 많이 도움이 됐습니다.”

-현재 재단에서 추진 중인 사업은 무엇인가요?

“지금 PLZ 페스티벌이 진행 중이고요. 음악교육을 위한 연구활동과 국내외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하나 있는데요. 저 개발 국가에는 학교 안에서 정식으로 음악을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되도록이면 학교 안에 시스템을 만들어 음악 전문가를 키우고 그 전문가들이 그 지역에 있는 저소득층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그런 형태의 모델을 독려하고 있어요. 어제(25일) 인도 푸네에 있는 UBS(Union Biblical Seminary) 신학대학에 음악 아카데미를 열었어요. 강한솔 피아니스트와  송종원 기타리스트 등 우리나라 음악 전문가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글로벌 협력 프로그램입니다.”

고성 명파해변에서 열린 2021 PLZ 페스티벌에서 연주하고 있는 임미정 이사장. | 하나를 위한 음악 재단 제공

비무장지대에 흐르는 평화의 선율

임 이사장은 나눔의 일환으로 2019년 강원도에 PLZ 페스티벌을 제안했다. 양구 펀치볼 일원에서 진행된 ‘2018 PLZ 이니셔티브’를 문화운동 형태로 발전시킨 것이다. 그는 “전 세계에  평화와 생명의 메시지를 음악으로 전해보자는 뜻으로 페스티벌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올해 PLZ 페스티벌은 지난 24일 제진역에서 열렸다. 이날 임 이사장은 300여 명의 청중 앞에서 북한의 작곡가 전권이 편곡한 ‘아리랑 변주곡’을 연주했다. 그는 재단 활동을 하면서 음악가로서 얻는 것이 많다고 했다.

“피아니스트가 왜 피아노 연주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해서 에너지를 낭비하냐고 걱정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사실 음악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활동들이 제가 연주를 할 때 무대에서의 표현을 굉장히 풍요롭게 만들어요. 옛날보다 연습량이 많지 않아도 영감이 좀 더 많아져서 피아노 앞에 앉으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피아니스트로서 계획이 있으신가요. 

“제 표현입니다만 음악을 연주할 때 생각과 소리가 연결되는 것을 느껴요. 그러다 보니 저는 피아노를 칠 때 소리만 내는 것이 아니라 제 안의 영적인 에너지도 함께 담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에 그 에너지가 진하게 배어 나올 때가 있어요. 그때는 마치 무아지경 혹은 우주에서 유영하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묘하게도 연주가 끝나고 피드백을 받으면 그 지점에서 청중들이 울었다든가 특별했다든가 하는 말을 하거든요. 그건 현란한 테크닉으로 연주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인 것 같아요. 그래서 PLZ 페스티벌이 자리 잡으면 그런 연주를 좀 더 많이 하고 싶습니다.”

제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음악이 좋아서 시작하다 보니 너무 음악 안에 갇혀 살기 쉬워요. 저는 제자들이 음악과 더불어 사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최대한 경험을 많이 하자. 꼭 음악계와 관련되지 않더라도 다양하게 자원봉사도 해봐라’라고 권하기도 합니다. 그래야 음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거든요.”

임미정 ‘하나를 위한 음악 재단’ 이사장: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아드 음대(석사)와 뉴욕주립대(박사)를 졸업했다. 1997년 샌안토니오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만장일치로 1위를 차지했으며 아메리칸 심포니 등 유명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다. 현재는 ‘하나를 위한 음악재단’의 이사장이면서 한세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